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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터리 공작소 Jan 30. 2024

아버지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 Day 5


고등학교로 등교하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이면 6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시골 빨간 버스가 오는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다음 자전거를 세워두고 빨간 버스를 타고 마산시내로 나간 후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학교 아래 큰길에서 내려 산비탈 같은 골목길을 올라가면 등교의 과정을 마치고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면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온 다음...

또다시 시골로 가는 빨간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세워둔 자전거를 또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시작했다.


1학년 첫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식구가 늦잠을 자버렸다.

아침은 아예 못 먹고 대강 옷만 챙겨 입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버지와 나는 버스가 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물론 도시락도 못 싸고....

문밖을 나서자 3월인데 갑자기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남쪽 동네에서 삼월에 왠 날벼락같은 눈벼락인지 하여간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전거 뒷자리에 날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빨간 완행버스가 정차하는 곳이 보일 때쯤 이미 버스는 출발하고 있었다.

버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치는 곳에 눈발이 빛에 반짝이며 하얗게 춤추고 있는 게 보였다. 펄펄 휘날리며...마치 날 잡아봐라 같은 느낌이었다.

버스를 놓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시골의 완행버스라는 것이 구석구석 돌아서 나간다는 것이다.

그 버스는 저산 고개 너머 안쪽 마을에 들러 손님을 태우고 다시 나와서 가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빨간 버스 뒤를 따라 달렸다. 그때 당시 우리 마을은 완전 비포장 시골길이었다.... 87년이었다. 올림픽은 이제 1년 남은...


빨간 버스가 고개 너머 안쪽 마을의 손님들을 태우고 나오기 전에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야 그 버스를 탈 수 있는 것이다. 조그마한 산 사이의 고개 입구부터는 더 이상 자전거를 같이 타고 올라갈 수 없었다. 비탈이 심했고, 아버지는 지쳤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전거에 내 책가방을 싣고서 끌고 달렸다. 나도 옆에서 그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달렸다.

고개 마루를 거의 다 내려와 갈 때쯤 안쪽 마을에 들어갔던 버스가 불빛을 비추며

거의 다 나와 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버스를 놓치지는 않을 거 같았다.

아버지와 나는 버스 정류장 앞에 도착해서 나오는 버스를 쳐다보며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기다리고 있었다.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 


잠깐 숨을 고르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눈이 내리는 하늘은 잿빛으로 어두웠다. 

아버지 머리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그걸 보고 내 머리에도 눈이 쌓였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 

아버진 내게 가방을 건네주었고.... 난 머리에 쌓인 눈을 털고 차에 올라탔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버스의 계단을 한 칸 올라섰다. 그때 난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아버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아들이 지각할까 봐 급하게 나오느라 눈이 펑펑 내리는 줄도 모르고 대강 챙겨 입은 옷가지며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달린 것이었다..... 그리고 한쪽 발에는 아예 슬리퍼가 신겨져 있지도 않았다.... 분명 처음에는 신겨져 있었을 슬리퍼가 없었다.

눈이 뜨거워지면서 아파왔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눈에 힘을 준다. 

고개를 넘으면서 벗겨진 것이었다. 3월 추운 눈 내리는 날 새벽의 비포장 길을 그것도 맨발에 슬리퍼 


그것도 한쪽은 벗겨졌는데도 아들이 버스를 놓치게 될까 봐 벗겨진 신발을 찾아 신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비포장 고개를 넘은 것이다. 차가운 비포장 길에 맨발로 돌멩이를 밟으며 얼마나 발이 시리고 아프셨을지.. 차에 올라타자 눈에서 뜨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눈을 감았다. 그리곤 아버지는 자전거를 맨발로 끌고 고개를 다시 넘어... 내가 늘 세워 두던 곳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쪽은 맨발인 채로 집으로 돌아가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타고 돌아올 수 있도록...... 그날 아버지 머리 위에 하얗게 쌓인 눈과 아버지의 한쪽 슬리퍼가 벗겨진 맨발이... 얼마나 아프고 시렸을까.


나는 버스 층계에서 아버지의 맨발을 본 그날 이후 다시는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40대 초반을 넘어서려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제는 그때 아버지 머리에 쌓인 눈만큼이나 백발이 그의 머리를 덮어 버렸다. 


나와 그는 진짜 1촌이다.


한때 전국을 강타하던 싸이월드 속의 그 많은 가짜 1촌과는 바꿀 수 없는 진짜 1촌.

이제 아버지는 칠순이 넘었고, 아버지가 지구에 던져진 그날로부터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일흔 바퀴 넘게 돌았고, 아버지의 야위어 버린 몸에는 지구가 태양을 일흔 바퀴를 돌아온 거리만큼의 주름이 <자글자글> 아로새겨져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다. 


보라고! 세월은 주름살 같은 거라고. 


따지고 보면 지구는 주름투성이인 혹은 주름투성이가 될 인생들이 가득 쌓인 행성인 것이다. 아버지 아래로 여섯 분의 여동생들, 즉 고모 중에 이미 세분이 먼저 하늘로 가셨다. 더 이상의 주름을 만들지 않게 되신 것이다. 죽는다는 건 이제 몸에 주름을 더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그의 생일이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그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

아버지, 그래도 빈틈없이 주름살 새기며 오래오래 곁에 계실 거죠


사랑합니다. 아버지!


글쓰기 챌린지 Day 5 - 정신없이 바쁜 하루 였다. 나도 아버지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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