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꿈
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들판에 한가롭게 누워있는 한 사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장각으로, 지식 탐구에 대한 열망은 그 어떤 이보다 높으나, 그에게 관직이란 그저 먹을 수도 없고, 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딱히 매력적이지 않은 수르스트뢰밍 같은 것이리라.
‘덕이란 무엇일까. 그토록 덕이 있다 하는 자들은 왜 모두 질병과 노화로 죽고 사라졌단 말인가. 혹시 그들의 덕이 부족했거나, 덕의 올바른 방향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태평경*1의 연구에 매진한 그는 한가로이 노닐 때 역시 진리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내지 못한다. 생각에 잠겨 있는 장각의 곁에 그의 동생 장량이 헐레벌떡 달려온다.
“형님, 또 한가롭게 놀고 계셨수?”
“그래, 한번 알아보았느냐?”
“말도 마시오. 모반에 연좌된 이들이 줄줄이 처형되었다 하오.”
“유괴*2는 어떻게 되었는가?”
“자결했다 하오”
“역시 예상대로가 아닌가. 일국의 왕도 세치 혀를 감당하지 못하는데, 어찌 관리나 장수가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 무슨 배부른 소리요?”
“답은 여기에 있다, 아우야.”
장각이 옅은 미소를 띠며 장량에게 태평경을 보인다.
“무슨 말이요? 자세하게 좀 얘기해주시오.”
“내 예전부터 이 곳 기주의 인물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유괴 그 자를 보란 말이다. 황실의 씨조차도 일국을 보전키 어려운 법이지 않느냐.”
“그러니까, 뭘 하고 싶단 말이오?”
“칼과 창으로 하나의 거점을 노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라 전체를 들어 엎어야 한다.”
“무엇으로 말이오?”
“믿음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들을 장보가 기다리고 있다. 장보는 장각의 동생이자 장량의 형으로, 일찍이 주역을 읽어 세상의 이치에 관심이 많은 자였다. 장보를 본 동생 장량이 대뜸 말을 꺼낸다.
“형님, 큰 형님께서 저 책 하나로 세상을 뒤집어엎어 버리겠답니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말만 하시니, 형님이 좀 얘기해보슈.”
이에 장보가 장각에게 묻는다.
“형님,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우야, 이전의 상나라는 하늘의 계시와 백성들의 믿음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그러나 그 상나라가 왜 망했는지 아느냐? 하늘의 계시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신공양을 하였고,*3 그로인해 하늘이 노한 것이다. 이후 이 땅이 하늘의 버림을 받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륙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우리가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글귀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을 구할 방도가 있느냐?”
“사람입니다. 사람을 모아야 합니다.”
셋의 이야기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장보는 장각에게 태평경의 가르침을 전파하면서도, 사람들을 감명시킬 만한 스토리텔링을 고심하였다.
“형님, 병을 고치는 게 어떻습니까?”
“내 약초의 지식도 없거늘 어찌 사람의 병을 고친단 말이냐?”
“마음의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잘하는 자들에게 소문을 퍼뜨리게 하면, 형님께서 비록 마음의 병만을 고쳤음에도, 저 멀리 주에서는 죽을병도 고친 위인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날이 밝자, 장각은 그 즉시 동생들을 시켜 각 주에 마음이 피폐해져 미친 자들을 수소문하는 동시에, 냇가의 맑은 물을 받아 종이를 적시고, 이를 말려 부적을 쓴다. 장보와 장량이 환자를 구해오니, 장각은 사람들이 많은 장터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연설을 하기 시작한다.
“이 자는 전쟁에서의 많은 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자요. 허나, 곧 나을 것이오.”
“아니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사람들의 야유 속에 장각은 환자를 무릎 꿇리고 의식을 시작한다.
“너는 죄가 있다. 무슨 죄가 있는지 명명백백 고백해야 나을 것이다.”
“저는 과거 단경 장군의 부곡으로, 수많은 강족들을 토벌하였소. 하나, 그 때 죽인 아녀자들과 아이들의 혼귀가 나타나 매일 괴롭힌다오. 이 일로 군부에서도 사직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소.”
장각은 스스로 쓴 부적에 성수를 뿌리며 환자의 머리에 올리고는 태평경을 외우니, 그 의식은 한 나절이나 계속되었다.
해가 질 무렵, 그 환자의 얼굴이 밝아지니,*4 보던 사람들이 감탄을 하며 묻는다.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죄를 짓지 않으면 되오.”
“이미 죄를 지었으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그 방법을 알고 싶으면 나를 찾아오시오.”
이 소문은 순식간에 각 주에 퍼지며, 소문은 소문을 낳는 법이라, 어떤 주에서는 장각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주에서는 눈 먼 자를 눈 뜨게 하였다고 알려지니, 장각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게 되었고, 어떤 자는 전 재산을 바치기도 하였다. 때로는 장각의 가르침을 받고자 몰려드는 인파들로 인해 깔려 죽는 자들도 있었다.
신도가 수 만에 이른 장각은 그 기세를 몰아, 그 믿음을 태평도라 일컫고, 근거지를 업으로 옮겨 신도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조정에서도 이러한 장각의 세와 재력을 눈여겨본 자가 있으니, 중상시 서봉이었다. 서봉은 급히 장각에게 사람을 보내 장각이 어떤 자인지 알아보게 하는데, 장각은 서봉의 부하에게 환담과 함께 예물을 주어 돌려보내니, 서봉이 그에 대한 답례로 장각 본인 또는 믿을만한 자를 낙양으로 오도록 초청하였다.
“역시 이 땅 위에 형님만 한 영웅이 없수다. 어찌 말 몇 마디로 이렇게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단 말이오?”
부른 배를 두들기며 잡담을 하기 시작하는 동생 장량을 장각이 한심한 듯 쳐다보며 말한다.
“우리를 찾아온 저 불쌍한 자들을 보아라. 한낱 고기 따위에 즐거워할 겨를이 있느냐?”
“그럼 저 많은 사람들과 재물은 왜 모은 거요?”
“내 이 나라를 뒤엎을 것이다.”
“뒤엎고 나면 어떻게 할 거유? 황제라도 되려고 그러슈?”
“그건 아직 모른다. 일단 나쁜 것이 있으면 들어내고 봐야 할 것 아니냐.”*5
장각은 서봉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마원의에게 낙양으로 갈 채비를 하게 하는 동시에, 낙양에서 행동거지를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각에게 조정의 중상시를 만난다는 것은 그의 계획이 어느 정도 실현 단계에 돌입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므로, 이 시기에 나쁜 소문을 만들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는, 세상이 보기에 태평도는 도참의 가르침을 받아 영생을 바라는 그저 참된 믿음의 집단이어야 했다.
낙양에 이르자, 마중 나온 한 관리가 마원의의 무리를 알아보고 은밀한 곳으로 안내한다.
“중상시께서 이 문 안에서 기다리고 계시오.”
문이 열리자, 화려한 의복에 거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서봉이 그를 맞이한다.
“내 일전의 예물은 잘 받아서 좋은 곳에 베풀었소. 그래, 좋은 일을 하신다고?”
“부끄럽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우리 선생께서는 더 큰 일을 도모해보고 싶어 하십니다. 오직 중상시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서신을 나눈 지가 몇 번인데, 돌려 말하지 마시오. 그래, 내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어디 좋은 곳 왕의 자리 하나면 내 생각해 보지.”
“가능한 일일 겁니다.”
“좋다. 계획을 말해보게.”
“제가 직접 여기 머물며 우리 선생의 전언을 보고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마원의는 낙양에 머물며, 서봉의 비호아래 거사에 필요한 계획을 실행해 나간다. 장각은 마원의에게 관리들을 포섭할 예물을 전달하는 한 편, 근거지를 중심으로 계속 모여드는 신도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믿을만한 자들을 각 주에 파견, 지방 조직의 관리를 힘쓰니, 이제 남은 것은 신도들의 무장화 뿐이었다. 은밀한 무장은 장량이 담당하고, 계책은 장보가 담당하니, 장보는 장각에게 계책을 올린다.
“하나의 큰 군세로 황실을 무너뜨릴 순 없습니다.”
“어찌 그러냐?”
“큰 군세를 한 두 명이 통솔하는 것은 작은 군세 여럿을 여러 명이 통솔함만 못합니다. 더욱이, 그 대병을 감당할 식량을 하나의 땅에서 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여, 형님께서는 이곳에서 거병하시고, 여남과 형주에서 동시 거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남의 파재는 그곳에서 예주를 공략하고, 현재 낙양에 나가있는 마원의에게 은밀히 형주 북부의 신도들을 통솔하게 한다면, 우리는 전국 8개 주, 세 방향으로 적들을 압박하는 형세가 될 것입니다. 더욱이, 낙양에서 내통하기로 한 자들도 있으니, 적들에게 이러한 안팎의 우환은 관중이 살아 돌아와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 말이 옳다. 즉시 마원의와 파재에게 이러한 절도를 전달하라.”
상황은 나날이 장각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니, 각 주의 포섭된 관리들은 장각이 백성들을 교화하여 그들이 도에 따라 질서 있는 삶을 살게 되어 나라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퍼뜨렸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도 장각의 본심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장각은 본격적으로 무장화 계획을 실현하니, 36방을 설치하여 그중 대방은 만여 명을, 소방은 6~7천을 편제하고 각 방은 부곡장에 해당하는 자들에게 통솔토록 하였다. 겉으로 보면 도참의 사상을 따르며 공부하는 신도들의 집단이지만, 이들에게 무기만 쥐어진다면 그 자체로 군사조직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태평경을 손에 쥔 한 청년의 야망이 이렇게 실현되려 하고 있었다.
탁송지주
*1 도교 경전.
*2 발해왕. 모반죄로 몰려 자결하였다. 이후 진왕 유총이 제천송사에서 무사했던 것은, 유괴의 일이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장각 역시 인신공양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태평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장각은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다 하여 명성을 얻었으니, 실제로 장각이 인신공양을 했을 가능성은 적다. 아마 프로파간다일 것이다.
*4 일종의 심리치료를 한 것이다.
*5 태평도의 난은 무정부주의에 가깝다.
*6 당시 각 주와 군에서도 장각 집단의 무장화를 묵인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중상시 서봉과 같은 중앙 정계의 인물뿐만 아니라, 지방의 관리들도 매수하였다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