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평, 그리고 고증
인물평
장각이 이끌었던 황건적의 난은 종교를 매개로 한 중국의 최초 반란으로서 평가되고, 기득권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사상의 입맛에 따라 이념 선전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둘렀던 황건은 단지 피아식별 띠에 불과했으며, 황건을 두르지 않은 민간인은 약탈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기록을 살피자면, 그들의 주요 군수 보급원은 약탈에 의존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를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의 슬로건 역시 그저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도교적 미신에 불과하며, 어떻게 나라를 바꿀 것인지에 대한 비전은 어디에도 없다. 필자가 황건적의 난을 그저 도교 사상을 참칭한 무정부주의적 반란 정도로 보는 이유이다. 역적으로 치부되는 조조조차 둔전제와 같은 국가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둔전제는 당면한 많은 전쟁 앞에, 매번 백성들의 식량과 물자를 차출할 수 없었기에, 병사와 포로들로 하여금 군량을 생산하게 하여, 군의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백성들의 부담을 덜게 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반면, 장각은 그 어떤 방법론도,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으니, 이러한 통치에 대한 철학의 부재는 전술, 전략의 부재로도 이어졌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보급임에도, 전술했듯이 이를 그저 약탈에 의존한 것이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봉기한 오두미도 장로의 경우, 명확한 통치 철학이 있었다. 각 고을마다 식량 배급소를 만들고, 그 배급을 자율적으로 맡기되, 욕심을 부려 음식을 과하게 취하면 귀신에게 화를 당한다고 공표하였으니, 비록 그들이 미적으로 불렸음에도 장로 치세 백성들의 풍속은 아름다웠으며, 각 좨주를 두어 백성들을 교화하는 확고한 교육적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관서 및 관중 일대가 시끄러울 때마다 장로가 통치하는 한중이 주요 피난처가 되었던 이유이다.
장각이 일으킨 농민반란의 가장 큰 의의는 따로 있다. 조정은 황건적이 점령한 각 주의 치소 위주 토벌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각 군 현 단위까지 군대를 보내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봉작을 가진 왕과 군의 태수들은 황건적들에게 납치당하거나 살해되기 일쑤였고, 현령들은 황건적과 내통하거나, 도망가기 바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을을 지키고자 하는 자체 무장 세력들이 곳곳에 난립하고, 황건적의 난이 정리된 이후 군벌화되어 즉각 군웅들에게 흡수되었으니, 군웅할거 시대가 열린 것이다. 더욱이, 황건적의 패잔병들은 각 군웅들의 인적 자원이 되기도 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의 영제 때만 해도 황제의 군대는 막강했던 것으로 보이나, 그 이후의 황제는 실질적인 병권을 잃고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황실과 조정의 중앙 지배력 약화를 야기했다는 관점에서, 황건적의 난은 오늘날 삼국지 컨텐츠의 씨앗인 동시에, 장각은 가히 군웅들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를 비록 군웅이라 할 수 없지만, 군웅 편의 첫 장에 놓은 이유이다.
사실과 허구
주요 역사적 사실들
발해왕 유괴가 참언 받아 자결 (자치통감 한기 권49)
장각이 환자를 무릎꿇리고 부적물로 치료의식 거행 (후한서 권71)
마원의가 중상시들과 내통 및 당주의 밀고로 발각되어 처형 (후한서 권71)
36방 설치 및 소방과 대방의 규모 (후한서 권71)
사도 양사가 황건적 토벌을 상소 (자치통감 한기 권50)
182년 파군에서 일곱 대성이 모반을 일으킴 (자치통감 한기 권50)
주준이 손견을 사마로 삼음 (삼국지 오서 권1)
손견이 황건적을 토벌하다 부상하였으나, 그의 말이 안내하여 구조, 손견은 10일 후 전장 재투입 (오서)
손견이 완성에서 성벽을 기어올라 전공을 세움 (삼국지 오서 권1)
황건적 장만성이 남양태수를 죽이고 남양 점거 (자치통감 한기 권50)
주준이 영천에서 파재에게 패배 (자치통감 한기 권50)
황보숭이 영천 장사현에서 화계로 파재 격파 (후한서 권71)
이후 조조가 합류하여 파재의 잔당 및 팽탈 격파 (후한서 권71)
남양태수 진힐이 장만성의 목을 베고, 황건적 조홍이 그 뒤를 이음 (자치통감 한기 권50)
주준이 조홍, 한충을 차례로 격파 (후한서 권71)
노식이 광종에서 장각과 대치하다가 파직당함 (후한서 권64)
동탁이 하곡양에서 황건적에 패배 (후한서 권72)
장각이 병사하고, 황보숭이 광종에서 장량을 격파 (후한서 권71)
황보숭과 곽전이 하곡양에서 장보 격파 (후한서 권71)
본 소설 속 허구들
소설 내 대부분의 대화 (서사에 맞게 창작 및 재구성)
당대 피휘 문화에 따라 자 또는 존칭을 써야하는 부분을 편의상 이름으로 대체
장각이 심리치료를 행한 후, 몸의 병을 치료한 것처럼 과장된 사실을 퍼뜨림
파재가 일찍이 병서를 읽었다는 설정
파재의 피난민을 가장한 위계 전술
파재가 심리전으로 장사현 내의 황보숭 군을 위축시킴
동탁과 장보의 대결 시 장각, 장보의 협공작전
장각이 꿈에서 복희와 노자를 만나, 대국을 통해 가르침을 얻음
장각의 귀신이 장보에게 나타나 계책을 알려줌
황보숭이 계교에서 매복작전을 사용
완성과 굴신성에 주둔 중이던 한충군은 군량이 소진되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측, 이에 따른 주준의 보급을 끊는 전법
하곡양 전투에서 황보숭이 수계를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