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감상
웹툰 독자 인생 20년. 난 한국 웹툰시장의 흥망성쇠를 목도했다고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꽤나 열심히 웹툰을 사랑해 왔다. 그런 내게 모든 웹툰 통틀어서 가장 미웠던 캐릭터가 있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백은영'을 꼽겠다. 그리고 또 누군가 가장 사랑한 캐릭터가 있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도 '백은영'이라고 말하겠다. 은영이는 소위 말하는 '아픈 손가락' 그 이상의 존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리고 또 동시에 답답해지는 인물이었다.
2018년 12월에 연재를 시작한 웹툰 "집이 없어"는 2024년 9월, 약 5년 8개월간의 긴 연재 끝에 총 269화로 마무리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등학생인 '고해준'과 '백은영'이 낡고 으스스한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옴니버스식으로 풀어냈는데, 집을 잃은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샀다. 탄탄한 스토리텔링 덕분에 이 작품은 대한민국 콘텐츠 문화체육부관광부장관상 외 여러 굵직한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집'은 주택과 같이 살 곳을 뜻하는 동시에 가정, 가족을 뜻하기도 한다. 이 웹툰 속 청소년들은 집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 때문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인물들 하나하나가 다 입체적인 성격과 서사를 가지고 있어서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집이 없어'는 마치 폭력에 대한 교과서와 같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가스라이팅 등에 노출된 아이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백은영은 내게 가장 크게 다가 온 인물이었다.
극 초반부 해준의 배에 칼침을 놓고도 뻔뻔하기만 했던 은영은 독자들의 미움을 한 몸에 샀다. 기숙사에 매일 밤마다 사람을 불러서 시끄러운 파티를 벌이고, 대학생 누나들을 대상으로 양다리를 걸치고, 쓰레기봉투를 복도에다 버리는 모습들은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
불쌍하다고? 안 됐다고?
괜찮아. 나만 그런 게 아니거든. 나만 비참한 게 아니야.
그래서 나는 그 폐가로 간다.
갈 곳 없는 고해준이 빈 집 문을 혼자 여는 걸 보면, 기분이 좋으니까.
- 웹툰 <집이 없어> 中
은영은 해준의 불행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고 말하는 해준을 보는 은영의 표정은 어쩐지 들떠 보이기까지 한다. 그 모습에 독자들은 기함했다. '쟤는 무슨 사연 있는지 몰라도 절대 용서 불가임!' 하는 식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예전의 나는 '인스타그램'을 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기록하고 싶은 사진만 올리고 바로 로그아웃을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따위 알 게 뭐란 말인가. 어차피 SNS에 올리는 순간들은 그들 인생에 찰나의 행복한 순간들일 텐데, 그 전시들을 보는 게 내게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런 사고의 흐름이 제법 쿨하고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 그래, 씨! 난 꼬여서 봄도 싫고 다 싫어, 됐냐? 너 같은 새X도 싫고, 이 집도 싫고, 봄도 싫고, 가을도 싫고, 명절도 짜증 나. 크리스마스도 싫고, 연말도 연초도 다 짜증 나. 인간들 들뜨면 다 짜증 나."
- 웹툰 <집이 없어> 中
은영은 달랐다. 인정했다. 사람들이 꽃구경 가는 봄이 싫고, 다들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구는 게 보기 싫다고. 물론 내가 다른 이들의 일상에 관심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삶에 집중하기도 바빴으니까. 그러나 이런 찌질하고 못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냐고 한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사는 게 버겁고, 지치고, 언제든 다 내려놓고 싶어서 안달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보일 때가 많았다. 가끔은 내가 꿈꾸던 삶의 일부를 현실로 만든 사람들도 보였고, 그들을 보면 움츠러들고 불쾌했다. 그래서 은영을 보면 내 모습 같아서 싫기도 하면서 또 이 아이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을지 가만히 들어주고 싶었다.
긴 시간 독자들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던 은영은 후반부에서야 성장과정, 가정환경이 알려지며 모두에게 '아픈 손가락'이 된다. 은영의 부모는 은영이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을 일삼았고, 그로 인해 쉼터를 전전하다 가출을 반복했고, 마지막으로 기숙사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부모들은 은영이 가출을 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추운 겨울 맨몸으로 아이를 집밖으로 내쫓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해 왔다. 그러다 은영이 집에 돌아올 때면, '밖에서 고생해 보니 집 만한 데가 없지?'라며 본인들의 울타리 같은 철장에 아이를 가두고자 한다. 은영은 집에서 버티기 힘들어서 밖으로 나갔지만, 청소년이 밖에서 생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법이다. 은영은 그렇게 집이 없는 아이가 되어 '문제아, 양아치, 인생 포기한 애, 가출한 애' 등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비수를 꽂는다고 하지, 그걸? 어른들이 겁주듯이 얘기하잖아.
자식이 철없을 때 부모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고. 그리고는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한다고.
그 후로 난.. 그 가슴에.. 부모의 가슴에 커다란 비수를 꽂고 싶다고 종종 생각했어.
내가 불편하고 두려워서.. 평생 나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로 살아가게 될 그런 비수를..
- 웹툰 <집이 없어> 中
태어난 지 고작 십칠 년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인생이 너무 길어.'라는 말을 내뱉으려면 가슴에 얼마나 많은 비수가 박혀야 되는 걸까. '우리라고 날 때부터 부모였던 거 아니야.'라는 말. 처음 들었을 때는 납득이 갔다. 어른들도 서툴 수 있고, 세상에 마냥 완벽한 부모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나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고 보니 점점 더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이를 나와 같은 인격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한다면 부모가 아이에게 그럴 수는 없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그 자체이다. 그런 아이에게 폭력이 가해졌을 때, 그걸 마냥 부모 본인들의 미숙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부모 가슴의 상처와 아이가 받은 상처를 저울질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부모가 아무리 억눌러도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자아를 확장시키며 성장한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정하고 행복한 가정은 TV만 틀어도 너무 쉽게 보이니까. 언어적으로 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아이는 새로운 감정을 만난다. 그때부터 부모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에서 증오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아이의 키가 성인만큼 자라면 생각한다. '어쩌면 이제는 내가 이 사람들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란다고 다 나처럼 되지는 않아.
다른 애들은 아무리 화나도 나처럼 이러지는 않아.
엄마 아빠 때문에 죽고 싶다는 애들 볼 때도 이해가 안 갔었어.
난 항상..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
저 둘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중략)
어렸을 땐 저 두 사람이 제일 무서운 줄 알았는데..
이젠 내가 제일 무서워.."
- 웹툰 <집이 없어> 中
은영의 부는 은영이 본인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자, '네 앞길을 막겠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자신의 소유물이자 마음대로 해도 되는 약자라고 생각했던 제 자식이 조금 컸다고 감히 '반항'을 하니 최선을 다해 망치겠다고 선포한다. 은영은 순간 분노에 휩싸여 술병을 들고 휘둘렀지만 해준에 의해 저지당한다. 방황을 끝내고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모두 물거품 되는 듯한 허탈함, 미성년자이기에 작은 자유조차 부모 손에 달렸다는 무력감, 어쩌면 이 지겨운 굴레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은영을 덮쳐왔을 것이다.
장시간 폭력에 노출되어 자란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들조차 자기 탓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잘 참는데 본인만 이런 거라고, 부모가 제게 말한 것처럼 어쩌면 내가 이상한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폭력 신고를 망설이게 하는 좋았던 기억이 고작 두 팔로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았던 아이 때의 순간일 뿐이면서 말이다. 본인이 잘못해서 혼난 게 아니면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었어서 그런 것일까? 가정폭력으로 신고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큰일이 나지 않는데도, 그 가정을 깬 '가해자'가 되는 게 두려워 망설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정말 자신이 잘못한 게 되니까.
다행히 은영은 해준과의 대화를 통해 천천히 해답을 찾아 나간다. 이제는 뭐가 가장 두려운지 알았기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자 노력하고, 어른이 될 준비를 하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어떻게 저런 부모가 있을까?' 싶어서 놀랍고 충격적이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보다 현실을 잘 담아낸 하이퍼리얼리즘 이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와난' 작가는 무거운 내용을 신파적이지 않게 풀어나가는 굉장한 힘을 보여줬다. 같은 처지에 놓인 청소년들에게는 연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어른들에게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굉장한 힘이 있는 작품이었기에 이 웹툰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하며 웹툰 <집이 없어>와 함께 한 지난 시간들을 떠나보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