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해방일지
내가 내 머리를 자른 것은 오래된 일이다. 중학교 때부터 앞머리 정도는 내가 잘랐다. 그때는 재미였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 적도 많았지만 매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머리는 이게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깔끔하면서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뭔가 매력적이면서 나에게도 잘 어울리는 그런 머리를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미용실에서 내가 하는 말이라곤 정리만 좀 해주세요, 여기에서 길이만 좀 짧게 해주세요, 라는 텅 빈 말 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아니요 손님, 손님은 그런 스타일보다 이런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릴 거예요. 저 믿고 한번 잘라보실래요? 하고 나에게 훅을 날리며 들어와 줄 구원자를 기다려보았지만. 물론 없었다. 그들도 이미 지쳤을 테니.
미용실은 참, 정신없는 곳이다. 문이 열리면 풍겨오는 약품 냄새와 멋들어지는 디자이너들. 예약하셨어요?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머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자르셨어요? 머리 자르고 어디가세요? 왁스 해드릴까요? 온통 내가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들. 밖에서 만났다면 한마디 말도 섞지 않았을 것 같은 손님들. 거울에 비치는 외딴섬 같은 내 모습. 북적이는 소파. 모든 것이 나와 맞지 않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기보다 잘렸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돈 쓰고 시간 쓰고 에너지 쓰고. 남는 것은 없고 버리는 것만 있는 기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미용실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나는 오히려 미용실을 가는 것이 스트레스다. 찾아보니 이런 미용실 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단다. 미용사와 친분이 쌓이는 게 부담스러워서 한 미용실을 오래 다니지도 않았다. 머리를 자르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한마디 하지 못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건 없고 싫은 것만 있었으니까. 나와 이미지가 비슷한 연예인 사진을 들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물론 실패. 머리만 보면 똑같았으니 미용사는 잘못이 없다.
미용실을 최대한 가지 않기 위해 머리를 무작정 기른 적도 있었다. 머리가 길면 길수록 집에서 자르기가 쉬웠다. 그렇게 자르다 자르다 도저히 해결책이 없을 때 마지막 카드로 미용실을 찾았다. 그럴 때면 일부러 머리를 더 짧게 잘랐다. 그래야 오랫동안 미용실에 안 올 수 있으니까. 지금은 동거인의 도움으로 뒷머리까지 자를 수 있으니 미용실을 찾을 일이 거의 없다. 장비는 중요치 않다. 다이소에서 구입한 미용가위와 숱가위면 충분하다. 잘려나간 머리카락들이 내 몸으로 떨어진다. 서걱 서걱 툭툭. 어깨에 수북하게 쌓인 머리카락을 털어낸다. 혼자 자르다보면 좌우 길이가 다르기도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뭔가가 엉성하고 이상하지만, 괜찮다. 오래보아야 이상하다.
이렇게 미용실에서 멀어질수록 스스로나 동거인과는 더 가까워진다. 그 사이를 오가며 어떤 중력의 영향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내 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또 다른 해방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