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다 어찌 감히 말이나 하겠어
얼마 전 받침 하나로 영원히 서글픈 원주 위를 걸을 운명을 만든 내가 여기 앉아 당신이 언제 읽을지 가늠도 차마 못하겠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쩌면 편지라고도 하겠다. 이 편지는 안녕, 하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거 알아, 다 헤아리지도 못할 이유로 당신과 헤어지려 했던 것.
사실 수많은 이성적인 이유들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무너질 수 있어-예를 들면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체온, 우습지도 않게 꿈에 나온 당신의 다정함 같은 것들.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을 쌓아 놓고서 왜 헤어지지 않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받침 하나 뺀 우리말로 답한 적이 있다.
닳았으나, 달았으니 되었지.
서로를 끊임없이 사포질해가면서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 연애 아니겠어. 내가 퍽 대단해보인다는 친구에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 하고 답했다. 나는 몇 번이고 앓고 앓을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래도 내 이야기가 잘못 쓰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문득 한다. 그리고 그 오탈자가 당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당신은 모르지-사람은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무너져내린 마음을 다시 모으려 일어날 수 있는 것.
고맙다는 말을 적지 않는 것은 우리의 불행에 대한 작은 사과다. 서로의 옆에서 영영 더 불행했으면 좋겠다 행복할 수 없다 하더라도-내가 걸을 원주는 아마 그렇게 생겼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