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바람에 떨어져나간 시린 것들의 살점들이 차곡차곡 쌓여 무덤이 된 곳. 거짓말을 하면 무너지는 나라의 사람들과 진실을 말하면 수치가 되는 나라의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 서로 말도 섞지 않는 곳. 바람이 창문을 세 번 두드리면 아무도 열어주지 않아도 모두가 환영하는 곳.
이름없는 자의 무덤가에 앉아, 오미자청을 서로의 잔에 떠다 주면서 한 이별.
만난 시간만큼 말할 것이 많아서, 장송곡 하나를 다 부를 때까지도 끝나지 않은 삶이었다.
그것까지도 사랑이었잖아.
그것마저도 사랑은 아니었어.
그것까지도 사랑은 아니었지.
그것마저도 사랑이었어.
과거를 부정하는 너를 마주 보고 나는 그저 하지만, 하지만,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누가 자꾸 옆구리를 찌르면서 괜찮냐고 묻는데, 그것이 삶인지 죽음인지도 모르는데, 나는 자꾸 네게 손을 내밀어달라고만 했다.
저기 나뭇가지 사이 찢어진 달이 다시 하나가 될 때까지만.
저기 아침이면 사라져야 할 꿈들이 진짜 사라질 때까지만. 저기, 저기, 저기... 이름이 있는 것들은 모두 변하고 이름이 없는 것들은 모두 멈춰 있는다는 네 말을 들었을 때, 너에게서 이름을 빼앗아야만 했다. 이름이 있는 것들은 그러나 모두 사랑스럽다는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말았어야 했다.
자기야, 내 생에서 누구 한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너일 거야.
거짓말도 잘하지.
나는 자기가 똑똑해서 좋아.
다 망가진 눈으로 네가 날 자기라고 부를 때, 빼앗겨버린 무엇을 다시 찾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무덤의 주인을 영영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달달하고 시큼한 것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