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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타 May 19. 2020

키르케의 과수원

화이트 우티스

새벽엔
눈이 하나여도 괜찮았다
국지성 호우가 내린대도
빗소리 하나 들치지 않았다

백설공주는 사실
혼자 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사과받지 못하고
사과하지 못하고
누구든 진심이라고 믿지 않고

사랑은 한순간이지만
우리는 너무 오래 멈춰 있습니다
영화를 찍는다면 이 씬은
롱테이크로 찍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울음은 뮤트 처리해서
대신 빗소리를 삽입해주시고

조용히 울기 위해서는
눈이 하나여도 괜찮았다
사람에게 눈이 두 개여도
반드시 두 눈을 모두 사용하지는 않았다
눈 하나는 그러면
잠에 든 네가 어떤 표정인지 보고 싶었는데
눈 하나는 그러면
고개를 숙인 내가 얼마나 서러워 보이지 않는지
보고 싶었는데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건네면
그이는 이제 사과를 먹을까
그이는 나를 마녀라고 하지 않을까
영원히- 행복하게- 살 자신의 배우자에게
내가 악독한 마녀라고 살아돌아왔다고
나를 불태우라고 하지는 않을까
뜨겁게 달군 철 위에서 춤추게 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잘 닦은 사과를 건넨다
그래도 이 새벽에 비가 온다고 한다
국지성 호우가 우리 머리는
단 한 방울도 적실 수 없다고 한다
이 씬이 다 끝나고 이제
내 목소리도 기록될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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