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리오 네스타 Nazario Nesta 스물 여덟 살의 이탈리아 청년이다. 이탈리아 남쪽 지방-풀리아(Puglia) 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은 고등학교 졸업 후 푸드 트럭을 끌고 생업에 뛰어들지만 일이 뜻대로 잘 안되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곧 정육점에서 정육사로macellaio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이십대를 보내 던 어느날, 오랫동안 구상하던 국내 무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Disegnando l'Italia -이탈리아를 그리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돈도 없이 지도도 없이 발 길 닿는데로 걸어서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누비며 이탈리아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알리기로 한다.
2019년 5월, 풀리아에서 출발해 칼라브리아, 라찌오, 피에몬테 등을 돌며 여정에서 만난 풍경들과 사람들을 유투브에 담아왔는데 10개월이 지난 2020년 3월, 롬바르디아 주를 걷던 중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고 갑자기 봉쇄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꼼짝 못하게 되는 상황에 마주친다. 롬바르디아 주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와 한국 뉴스 화면에도 자주 잡히는 지역이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도보여행을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된 청년은 일단, 친구가 소개해준 숲 속에 들어가 텐트를 친다. 인적 하나 없지만 근처에 작은 마굿간이 하나 있고 숲 속을 나와 걸어가면 작은 수퍼도 하나 있다.
이때까지만해도 이 청년이 두 달이 훌쩍 넘게 숲 속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2주였던 봉쇄령이 한 달에서 두 달로 늘어나고 5월18일 이후 지역 내에서의 이동은 가능해졌지만, 거주 지역을 벗어나는 건 6월 3일이 돼야 풀릴 예정이기에, 청년은 두 달 반째 롬바르디아 주에 머물고 있다.
예상치 못하게 발이 묶였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청년은 "텐트 치고 자가격리"(Quarantena in tenda)라는 제목으로 매일 매일 영상을 찍어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구독자도 댓글 수도 지금처럼 많지가 않았다. 심지어 '일부러 관심 끌려고 쇼하는 거 아니냐'는 악플도 있었다. 청년은 '이미 일 년 전부터 여행 중이었고 갑자기 떨어진 봉쇄령을 따르는 것 뿐' 이라고 한마디로 응수한다. 물론 그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유투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영상 시리즈 중반부터 알게됐는데, 숲 속에 들어온 첫 날이 궁금해 영상을 거꾸로 올라가다보니 한달 치를 하루만에 다 보고 말았다. 대체 한 청년의 숲 속 살이,가 뭐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걸까?
첫째, '고립'에 대한 공감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봉쇄령을 내렸기에 이젠 lockdown이란 단어가 제법 익숙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먼저 락다운을 한 나라가 이탈리아 이다보니 처음 봉쇄령이 떨어졌을 때 분위기가 무척 암울했다. 로마만 보자면 사재기 없이 모두들 침착히 봉쇄령을 잘 따랐지만, 쏟아지는 사망자와 확진자 수를 보면 공포스럽고 장보러 한 번 나가기가 불안한 상황이었다. 한 동네에 사는 친구도 만날 수가 없고, 같은 로마에 사는 교민들끼리도 전화로만 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없다니...심란할수록 눈을 마주치며 얘기 나눌 사람이 필요한데 봉쇄령은 이를 금지하니,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립감이 깊어갔다. 가족과 함께 있는 나도 이런데, 타지에서 홀로 숲 속에 있는 청년은 어떨까? 하루종일 얘기 나눌 사람 없이 혼잣말하며 유투브 영상을 찍고 어두워지면 좁은 텐트 속에 몸을 구기고 들어가 하루 마무리 인사를 한다. 걱정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통화는 하겠지만 봉쇄령 때문에 그들에게도 갈 수도 없고 그들도 와줄 수가 없다. 그가 느끼는 고립감에 비하면 난 아무 것도 아닐 테다. 하지만 청년은 결코 투덜대지 않는다. 안보이는 곳에선 눈물을 훔쳤을지 몰라도 묵묵히 숲 속 생활에 적응해간다.
둘째, 매일 나아지는 삶을보며 힘을 얻다 사서 고생하는 무전 여행이라 자가격리quarantena역시 텐트를 치고 시작했는데, 처음엔 살림살이가 덩그러니 텐트 밖에 없었다. 그러다 조금씩 살림을 늘려가는데, 나뭇가지를 모으고 빈 깡통을 주워와 불을 피우고, 잘 때 너무 습해 나뭇 잎을 모아 텐트 바닥에 깔기도하고, 비가 오면 큰 일이니 커다란 비닐로 텐트를 덮고, 간이 아궁이를 만들어 파스타를 해먹고 나무에 못 질을 해서 간이 침대도 만들고, 수납장도 만들고...엄청 뛰어난 솜씨는 아니라도 최대한 숲에 있는 걸 활용해서 땀 흘리며 필요한 것을 채워간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을 빼고는 매일 뚝딱대며 무언가를 만드는데, 제법 구색이 잡혀가는 살림살이를 보고있자면 괜히 흐뭇해진다. 그러다 사십일 쯤 되서는 아예 제대로 된 나무를 얻어와 작은 나무집을 만든다. 물론 혼자서 하니 시간은 좀 걸렸지만, 멀쩡한 천정이 있어 비가 와도 걱정 없고 문에 잠금고리까지 장착하고, 텐트 하나 의지하던 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살림이 폈다. 그 뿐인가. 갈수록 구독자를 비롯한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나, 어떤 이는 우편으로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봉쇄령이 2단계로 접어들고는 직접 숲 속을 방문하는 경우도 꽤 늘었다. 이들이 챙겨온 먹을 것을 비롯한 작은 선물들을 보고있자면 내가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처음 숲 속 생활 시작할 때 먹을 게 변변치 않아 대충 해먹었는데 이젠 먹을 게 넘쳐나 '냉장고도 없으니까, 그만 갖다줘도 되요'라고 말할 정도.
셋째, 자신의 삶을 응원하는 삶 2020년 5월20일 청년은 숲 속 집에서 홀로 도보여행 1주년을 기념하며 케잌에 초를 켠다. 집을 떠날 땐, 이렇게 숲 속에서 홀로 1주년을 맞이할 지 상상도 못했을 거다. '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과 험한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내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 기쁘다, 응원해주는 모든 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청년을 보며 사실, 타인이 그의 삶을 응원하기 이전에 그를 가장 힘껏 다독이며 위로하고 채찍질하며 끌고가는 이는 바로 그 자신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않을 때도 많은데 청년은 불평하지 않고 늘 여유있게 웃는다. 이 정도면 잘했어, 다시 하면 되지, 조바심 내지 않고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간다. 막막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니 어찌 그 삶을 응원하지 않을 수가 있나. 6월 3일 봉쇄령이 한단계 더 풀리면 청년은 다시 걷기 시작할 것이다. 계획했던 여행을 어쩔 수 없이 멈춰야했을 땐 너무나 막연했지만 지금은 그 전보다 응원하는 이들도 훨씬 늘어났고 여행 중 돈이 없어 굶는 날도 있었는데 지금은 넉넉히 먹고 오히려 푹 쉴 수가 있었단다.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하자면 내가 하던 여행도 어쩔 수 없이 멈춰지고 캄캄한 터널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지피듯 내게 주어진 것으로 불을 밝히다보면 언젠가 터널의 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인생을 내가 응원하며 매일 나아지는 삶을 살다보면 터널 속의 삶도 값지게 변하리라,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