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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Aug 31. 2023

짧고 굵게 3개월, 주말부부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어렵다 어렵다 말은 많았지만 어려움이 어느 정도 실체화되는 느낌이었다. 분위기가 삭막해져갔다.


 먹고 살아야 하기에, 자연스레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좋아했던 브랜드라서, 연봉을 거의 50% 깎고 내가 먼저 포트폴리오를 들이대서 입사한 회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문제는 어쩔수 없었다. 결혼을 하면서 대출을 받고 집을 사보니, 연봉을 깎았던 것도 너무 성급했던 처사가 아니었나 싶었다.


 나는 인하우스 마케터였는데, 서울의 에이전시와 협업하고 있었다. 이직 소식을 들은 그 에이전시 국장님께서 오퍼를 주셨다. 1년 넘게 호흡 맞춰봤으니 업무 능력은 검증되었고, 조건만 맞으면 형식상 면접을 보고 바로 입사하는 조건이었다.


 아내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서울로의 이직을 "저질러보기" 하였다. 주말부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3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를 할 수 있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결론적으로 주말 부부는 3개월만에 종료되었다. 역시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똥이라고 뜯어 말렸지만 결국 찍어 먹었고, 후회했다.

 

 이직한 회사는 업무 강도가 상당했다. 평일에는 4일 풀로 야근했다. 금요일은 야근할 수가 없었다. 부산으로 가야 했으니까. 상당한 업무를 견뎌내고, 금요일에 칼퇴해서 부산 집으로 돌아오면 11시~12시. 주중의 피로감을 끌어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평일에 단 하루도 자정 전에 퇴근을 하지 못하면,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침대에 틀어박혀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주말 부부는 그럴수가 없다. 토요일에 내가 침대에 기절해있으면, 주말은 끝이다. 일요일 오후에는 다시 비행기를 타러 가야하기 때문에. 


 토요일에 어디라도 드라이브를 가야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7일 중 부부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날이 채 하루도 되지 않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우리는 거의 싸움이 없는 부부지만 주말부부를 하는 3개월 사이에 제법 싸웠다. 6년간 싸운 횟수가 10번이라고 가정하면 9번이 저 기간에 몰려있다.


 월-목 밤샘하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내려온다. 금요일 저녁은 표 구하기도 쉽지 않아, 일반 버스의 제일 뒷자리 가운데 자리에 앉아 내려온다. 그런 상황에서 무심결에라도 "오는길에 만두 사와"하는 순간 짜증이 활화산처럼 터져버리는거다.


 다행히도 부산에서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좋게 평가해주셔서 오퍼가 왔다. 서울에서 받는 급여와 같은 조건으로 입사하게 되어서,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커리어를 시작했던 시절의 팀장님께서(지금은 무려 국장님이시다), 밑에 대리 한명이 신혼인데 지금 서울로 주말부부 감수하고 이직한다고 해서 말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부하 직원을 이탈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가 간다만, 여우같은 마누라를 남겨두고 서울에 올라갈 결심을 했던 그를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선배가 말릴 수 있을까.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도 온 몸으로 부딪혀보고 느낄 것이다.


 나는 실패했지만 그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서울에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마케터 입장에서 서울에 사느냐 부산에 사느냐는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이 최우선이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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