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거북 Aug 30. 2023

불 켜는 아내와 불 끄는 남편

 나는 2018년에 아내와 결혼했다. 그 당시 나는 30살, 아내는 26살. 2년 조금 안되는 기간 연애를 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하늘이 새파랗던, 아주 추웠던 12월에 결혼했다. 햇수로 벌써 6년이 되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싸우지 않는다. 음, "거의" 싸우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잘못해서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들은 적이야 물론 있지만, 서로 맞붙어 싸운적은 거의 없다.


 둘다 성격이 너무 순하다보니 원하는 것을 싸워서 쟁취하기 보다는 양보해서 얻는 평화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서로를 존중하고 하늘처럼 대하는 우리지만, 성향은 이렇게까지 안맞을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극과 극이다.


 아내는 본능에 충실하다.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잠이 오면 그대로 잔다. 불이고 TV고 죄다 켜놓고 그냥 그대로 잔다. 나는 같은 상황에서 잠이 오면 TV를 끄고 불을 끄고 안방에 들어가 커튼을 치고 백색소음을 틀어놓고 일어날 시간 알람을 맞춰두고 잔다.


 나는 스피드한 깔끔함을 추구한다. 쉽게 얘기하면, 짧게짧게 청소를 자주 한다. 귀찮으면 물걸레 청소를 생략할 지언정 청소기는 매일 돌리는 식이다. 아내는 한번 하면 입주청소를 하나 싶을 정도로 집을 다 뒤집어 엎는다. 물론 그 주기는 극단적으로 길긴 하다.


 내는 사회형 인간이다. 아침이 되면 용맹하게 둥지를 떠나 직장으로 향한다. 고객에게 쌍욕을 들어도 집에 와서 시원하게 욕 한번 하고 치운다(아내는 은행원이다). 나는 집구석형 인간이다. 직장을 다니는 8년 내내 고통스러워했다. 불면증에 시달렸다. 방에서 조용히 글 쓰고 컨텐츠 만드는게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전직을 시도중이며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디자인이나 영상편집, 일러스트 그리기 등의 스킬을 추가로 배울 것이다.


 나는 집돌이다. 요구사항이 충족된다면 5년 정도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만족하면서 살걸? 아내는 하루 이틀만 밖에 나가지 못해도 죽으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육아중인 아내는 너무 힘들어한다. 그래서 내가 재택 프리랜서로 전직했고, 근처 카페로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한번씩 나갈거다.


 아내는 집안일에 흥미도 없고 잘 못한다. 사실, 아내 연봉이 내 연봉의 두배가 조금 넘기 때문에 집안일을 아예 안하고 놀아도 내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다. 나는 집안일에 관심이 많다. 잘하는건 아니지만 요리를 하려고 하고, 더러운 것을 잘 못참는 편이다.


 이렇듯 우리는 한 사람이 -1이라면 나머지 한 사람이 정확히 1이기 때문에 균형이 완벽히 맞다. 그래서 결혼 생활이 정말 행복하다. 물론 살아가면서 육아 가치관이나 서로의 꿈 등 부딪힐 일은 많을것이다.


 하지만 6년을 함께 살면서 싸우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크게 싸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26살이라는 지금 기준으로는 정말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돈도 잘벌고 잘생긴 은행 오빠들이 눈에 불을 켜고 들이댔을텐데 나같은 사람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아내가 힘들게 아이를 재우고 마스크걸을 같이 보기 위해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어서, 이번 글은 가볍게 툭 내려놓고 거실로 나가봐야겠다.

아내와 올해 찍은 만삭 사진


작가의 이전글 쿠팡 창고에서 일을 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