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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Aug 30. 2023

쿠팡 창고에서 일을 한다는 것

 회사 다닐 때 이런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때려 치우고 쿠팡이나 갈까?"

 쿠팡은 2023년에 삼성을 제치고 대한민국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고용한 기업이 되었다.

고품질의 일자리는 아닐지언정, 많은 사람들이 쿠팡에서 생계를 이어간다

쿠팡, 올 들어 삼성보다 많이 뽑았다


 쿠팡에서의 일용직 근무는 정말 간단하다. 쿠펀치라는 앱을 깔고 근무 신청을 하면 된다. 친절하게 집 근처로 셔틀버스도 온다. 식사 제공은 물론이다. 출퇴근 스트레스와 부가적으로 드는 비용이 없이, 그냥 머리를 비우고 몸만 가서 하루를 보내면 급여가 제공된다(물론 일은 성실히 해야 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게 아닐까 싶다. 모든게 실패하면 쿠팡으로 도망쳐버리면 되지 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쿠팡 물류창고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몸이 힘들고 급여가 적을 지언정 안정적이니까. 소득은 볼륨보다 꾸준함이 더 중요하다.


 회사에서는 매 순간 스트레스와 직면한다. 불화, 적성, 회사 상황, 출퇴근 등등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한 두개가 아니다. 하지만 쿠팡은 그런게 없다. 일이 극히 단순하기 때문에 사람과의 갈등이 생길 건덕지가 딱히 없고, 적성에 안 맞을수는 있겠지만 묵묵하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출퇴근은 어지간하면 셔틀로 편하게 할 수 있다.


 나는 7월에 백수로 지내면서 쿠팡 물류창고에 일용직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입고, 출고, HUB 중 가장 빡세고 일당을 많이 주는 HUB로 지원했다(그래봐야 4천원 차이다...). 생각보다 재취업이 너무 늦어져서 일용직 근무라도 하자 싶어서 쿠팡 창고에 일하러 갔었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나 싶을 정도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남녀부터 시작해서 아버지뻘 까진 아니고 삼촌 뻘 정도 되어 보이는 어른들도 있었고, ROK Army 티셔츠를 입고 온, 군인 티를 채 벗지 못한 대학생들도 보였다.


 나는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대학생 한명과 친해져서 밥도 같이 먹고 쉬는 시간에 이야기도 같이 나누었다. 나는 재취업이 너무 늦어지면 쿠팡 계약직으로 입사해서 주경야독을 하고, 뭐든 배워서 다른 길로 전직하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무심코 그에게 물어봤다.


"여기 계약직으로 일하는 거 어떤거 같아요?"

"천인공노할 헛소리입니다. 이곳은 단순노가다 근무의 정점으로서, 그 어떠한 비전도 찾아볼 수 없으며 차라리 어디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는게 더 낫습니다."

"그, 그렇군요"


 물론 실제로 저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저런 느낌의 반응이었다. 격한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셔틀버스에서 만난 청년들, 내 또래 사람들, 삼촌뻘되는 어른들까지. 백수로 허송세월하는동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안되면 쿠팡가지 뭐"하며 남의 생계수단을 폄하했던 나를 반성하고 있던 차였다.


 그의 반응도 이해는 간다. 20대 초반 한창 자신감 넘칠 나이에, 방학에 심심해서 친구랑 같이 왔는데 이 일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면 나라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그래도 씁쓸한건 어쩔 수 없었다.


 같은 라인에 40대 초반 형님이 한분 계셨다. 딸을 키우고 계셨고, 태권도 관련 내용이 적힌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서 태권도 선수 출신인가 싶었다. 옆 라인의 아저씨는 꾸준히 운동을 하는지 몸이 정말 좋았다. 그 옆 라인 아저씨는 해군 부사관 상사까지 하고 전역 후 손주 용돈벌이를 하기 위해 심심풀이로 나온다고 한다.


 건방지게 도피처 정도로 생각했던 쿠팡 창고에서도 삶은 묵묵히,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초등학생 딸을 가진 아빠는 그곳에서 돈을 벌어 인형을 사고, 중학생 아들이 있는 엄마는 그곳에서 돈을 벌어 아이 급식비를 내고 학습지를 산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도저히 버틸수가 없으면 도망갈수도 있지. 천국이 아닌 곳에서도 삶은 계속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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