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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 Mar 16. 2019

화랑이는 그렇게 내게 왔다

Since 2018. 02. 13.


 코흘리개 때 작은 박스 안에 키웠던 병아리 두 마리.


"네가 사달라고 했으니까 네가 치워!"


 엄마는 예닐곱 살 밖에 되지 않았던 내게 그 솜털들의 사체를 직접 치우게 했다. 그 탓에, 함께했던 동안의 몽글한 감정은 온 데 없이 사라지고 마지막 날의 공포가 내 온 생애를 뒤덮었다. 열흘도 채 넘기지 못하고 질끈 감겨 있던 그 눈과 그 굳은 몸, 그 차가움, 그 감촉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후 동물을 키워 본 적 없다. 강아지나 고양이의 귀여움을 보고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늘 그 병아리의 마지막이었다.


 그러던 내가, 집사가 되었다. 모든 것이 숨 막혀서 다 버리고 싶지만 앞날이 불안해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던 그때. 내 상황이 답답하여, 뭐 하나라도 극복하고 실천하자, 싶었다. 늘 마음에만 품고 있던 그것, 고양이 님과의 동거를 위해 알레르기 검사를 하고 함께하고 싶은 고양이를 찾아 헤맸다. 화랑이를 처음 본 이후, 묘연이란 단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화랑이가 아니면 안 되었다. 그 묘연이란 건, 이 게으른 집순이를 서울에서 경주까지 이끌었다. 경주에서 서울로, 화랑이는 그렇게 내게 왔다. 2017년 11월 26일 생,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뽀시래기였다.


 처음엔 내가 개인적으로 애정 하는 이름인 '동춘'이라고 지었다가, 얘랑 잘 붙질 않아 다시 고민한 이름이 '화랑'이다. 경주에서 온 데다, 예쁘고 용감무쌍해서. 역시 찰떡이다, 찰떡이야.   


 8평 내 작은 방 안에서 나 하나 보고 사는 아이. 이 생각이 머릿속에 머물 때면 정신이 번쩍 난다. 아, 빨리 집에 가야지,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더 놀아 줘야지, 더 좋은 거 사줘야지, 하고. 화랑이가 자는 모습에 종종 그 병아리의 마지막이 떠오를 때면 심장이 빠르게 뛴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우리, 오래오래 몸 튼튼 맘 튼튼 씬나게 놀고먹자.




2018년 2월 13일,

집에 처음 온 날 찍은 영상/ 사진



도착 10분 만에 카샤카샤 샥샥. 다리 짧은 거 보소.ㅠ


도착 직후. KTX 안에서 울까 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기특하게도 너무나 얌전히 잠만 잔 녀석.


오자 마자 잘 먹고 잘 싸고 여기저기 활보하며 호기심 채우던 애.



적응 기간도 따로 없이, 처음부터 골골송 불러 주고 내 옆에 꼭 붙어서 잤다.

흑흑. 돌이키고 돌이켜도 마냥 기특한 애.


오자 마자 무릎냥. 너 진짜 뽀시래기였구나. 내 작은 무릎 안에 다 찼었네.





냥발 젤리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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