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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새벽형 학우와 올빼미형 학우

by 선명이와 지덕이

직장을 다니기 위해 매일 출퇴근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집과 직장이 멀면 다니기가 힘들다. 돈과 시간의 낭비가 생기며 몸이 피곤해져서 업무 능률이 떨어진다. 그래서 자동차나 지하철로 직장까지 시간 걸리는 거리라면 기숙사에 입소할까 자취할까 고민하게 된다.


내가 다녔던 대학은 집에서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는 집에서 통학버스로 두 시간 정도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에 있어서 통학버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처음 한두 달은 버스 차창 밖의 풍경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매일 그런 생활이 반복될수록 지겨워졌다.


1992년 2월, 3학년이 되기 전 겨울방학 때 아버지에게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H대학교 분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부탁을 승낙하셌고 함께 기숙사 사감을 찾아가기로 했다. 기숙사에 찾아간 날, 아버지는 일층 사무실에서 사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감은 기숙사 생활을 하려면 같은 학과의 학우들과 방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감은 방 배정을 그렇게 해주었다.


기숙사는 공학관과 도서관 사잇길로 이삼백 미터쯤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있었다. 기숙사는 남학생과 여학생 기숙사 건물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남자 기숙사에 출입하면 여학우를 볼 수 없었다. 기숙사는 한 방에 4명이 함께 생활했다. 이층 침대가 양쪽 벽 쪽으로 한 대씩 놓여 있었고 이층 침대 앞에는 책상 4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는 이층으로 되어 있어서 이층에서 자야 하는 학우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내가 기숙사에 입소하던 날, 우리 방에는 룸메이트 학우들이 이미 입소해 있었다. 룸메이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이때부터였다. 그들은 이미 본인들이 사용할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룸메이트 중에서 한 명은 선배이고 두 명은 후배들이었다.


기숙사에는 화장실, 세면실, 샤워실이 공용시설로서 층 별로 있었다. 그래서 다소 불편했다. 하지만 공용시설에서 세수나 샤워를 하다가 다른 방 학우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점은 좋았다. 또한 매주 목교일 저녁마다 목욕탕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목욕을 하면서 혼자 공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하루 일과를 아침 7시 반 전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시작했다. 세수를 하고 일층에 있는 기숙사 식당에 가서 아침식사를 했다. 그 후에 방에 돌아와 가방을 챙겨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시간이 되면 기숙사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했다.


룸메이트 중에서 후배들은 대개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와 하루 일과를 매우 다르게 보내는 학우가 있었다. 그는 밤새 잠을 자지 않다가 동틀 무렵이 가까워오는 새벽부터 잠을 자던 학우였다. 그는 우리 학과 K선배였다.


"너 왜 이렇게 일찍 자니?"

"12시쯤에 자는데요. 일찍 자는 편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느 날 선배는 내가 너무 일찍 잔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선배의 취침시간이 매우 늦은 시간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선배가 룸메이트들의 잠잘 때 버릇을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었다. 선배가 나에게는 이갈이 습관을 지적했고 신입생인 J후배에게는 잠꼬대 습관을 지적했다. 학기 초에는 선배가 새벽 몇 시부터 잠을 자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항상 내가 선배보다 먼저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배가 평소에 새벽 4시경부터 잠을 잔다고 말했다.


기숙사에 처음 입실해서 룸메이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다가 새벽 1시가 넘으면 몸이 힘들어져서 무조건 자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인지 새벽 1시가 넘어서도 책을 보거나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선배의 생활습관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선배처럼 생활하면 수업에 많이 빠질 테고 그러면 성적을 좋지 못하게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선배는 아침까지 계속 자느라고 수업을 많이 빼먹었다. 이로 인해 성적이 좋지 않았을 것 같다. 내 눈에 선배는 야행성 올빼미족처럼 보였다.




3학년 2학기가 되었다. 기숙사는 신학기가 되면 방 배정을 새로이 했다. 그래서 새로운 룸메이트들과 방을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1학기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다른 방 학우들을 여러 명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1학기 때 룸메이트였던 K선배와 생활습관이 상당히 다른 M선배도 알게 되었다.


선배는 4학년이었는데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는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운동을 했다. 기숙사 밖 캠퍼스를 한 바퀴 조깅하거나 산책하면서 건강관리를 했다. 그런 그가 2학기가 되어 나와 함께 한 방을 쓰게 되다.


"아직도 자? 좀 일찍 일어나지"

"피곤해서 못 일어나겠어요"


선배는 룸메이트들에게 일찍 일어나서 함께 운동하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자고 있는 룸메이트들을 깨웠다. 하지만 생활습관이 다르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배는 더 이상 깨우지 않았다.


선배의 생활습관이 좋아 보였다.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한다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일찍 자지 않는데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면 피곤해서 학교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따라 하기 어려운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생활습관을 가진 학우들을 보았다. 기숙사 생활은 나와 맞지 않는 일부 학우들이 있기는 했지만 여러 학우들과 소통하고 배려하면서 집에서 통학할 때 보다 편하고 좋았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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