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TV를 보다가 대학 내의 '군기 잡기' 논란에 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지방의 모대학에서 신입생에게 시간대별 연락 요령과 복장 규정 등을 강요한다는 주장으로 군기 잡기 논란이 일었다는 보도였다. 대학을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인지 요즘 대학생들이어떻게 학교생활을 하는지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를 접하면서 극소수이겠지만 아직도 일부 학과에서 군기 문화가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35년 전, H대학교분교에 다닐 때였다. 캠퍼스를 걷다가 우연히 선후배 간 군기 문화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교내게시판에 불어 있는 것을 보았다. 대자보 내용은 체대의 모학과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 생각되어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내가 대학교에서 선후배 간 군기 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 것은 대학교 졸업 후 입학한 일반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일반대학원의 경우 문과계열과 공학계열은 차이점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연구실 생활을 하지 않고 수업만 성실히 들으면 되는 문과계열과 달리 공학계열은 수업 듣기와 더불어 연구실 생활도 병행해야 했다. 연구실에서 지도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학우들과 함께 공부하는 생활을 했다. 학우들은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할 때 지도교수님을 선택했으며 박사과정과 석사과정 학우들이 연구실에서 함께 생활을 했다.
어느 날 박사과정에 다니는 J선배가 우리 연구실의 질서유지와 학업의 효율화를 위해 군기를 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석사과정 후배들에게 연구실이 군대는 아니지만 반(半) 군대화를 하여 선후배 간 위계질서를 확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연구실에 다니는 석사과정 후배들의 정신이 해이해져 있다고 말했다. 지도교수님이 안 계시다고 등교를 마음대로 늦게 하고 일찍 하교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지도교수님은 학교의 보직교수라서 연구실로 출퇴근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연구실 학우들이 우리 연구실로 자주 놀러 오곤 했다.
'대학원이라도 이곳은 학교인데 무슨 군기야?'
다행히 그는 직장에 다니는 파트타임 박사과정 학생이라 연구실에 상주하지 않았다. 수업을 듣는 날만 가끔씩 연구실에 올 뿐이었다. 그의 말에 연구실에 있는 석사과정 학우들은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나도 그의 말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나는 연구실 분위기가 다소 산만할지는 몰라도 학우들 간에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었다. 따라서 그가 말한 의도가 선의(善意)라는 점은 알았지만 그의 말이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다.
또 다른 박사과정 C선배는 우리 학과(산업공학과)가 군기가 없어 선후배 간에 위계질서가 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생명과 관련되거나 실습 시 크게 다칠 위험이 있는 학과는 나름대로 군기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학과는 그렇지않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과는 실습할 때 사고가 나봤자 컴퓨터만 망가지지 몸이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우리 학과가 군기가 없어 위계질서가 약할지 몰라도 단합은 잘 된다는 점이었다.공대에서 체육대회를 할 때면 우리 학과 학우들은 공대의 타학과들에 비해 많이 모였고 성적도 좋은 편이았다. 또한학우들은시합할 때마다 종종 학과구호를 외치면서선수들을 응원했다.
대학생활에서 학우들의 질서확립과 단합에 군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오히려 학우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선후배 간에 소통과 공감을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