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엔지니어

by 선명이와 지덕이

반쪽짜리란 어딘가 부족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 단어를 엔지니어라는 단에 앞에 붙여봤다. 그러면 어딘가 부족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엔지니어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는 본인이 생각할 때 느끼는 내적인 인식과 타인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는 외적인 인식들이 포함된다.


'반쪽짜리 엔지니어'


단어를 연결해 보니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가. 그렇지만 좋지 않은 의미가 되어 버린다. IT업계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는 아니겠지만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심심찮게 등장한다.


금속 3D프린터 제조회사에서의 직장 생활은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티타늄(Ti), 코발트크롬(CoCr) 등 금속 분말을 재료로 사용해 삼차원(3D)으로 물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동안 기계, 재료 분야를 잘 알지 못했지만 3D프린팅 회사에서 일하면서 약간의 지식을 쌓게 되었다.


이 회사에 입사할 때 회사의 경영진은 3D프린터 관련하여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유지보수를 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 질문에 거절했다. 예전에 다녔던 IT서비스 회사를 그만두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앞으로는 직업으로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맡게 된 게 일은 회사와 관련된 문서작업(매뉴얼 만들기 등)과 기획 업무였다. 기획 업무는 정부과제(과기부, 중기부, 산자부 등)와 관련하여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사업계획서 작성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비해 하는 일이 편했다. 또한, 비교적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금속 3D프린터 제조회사에서 근무할 때 더러 곤란할 때가 있었다. 그것은 금속 3D프린터에 관심 있는 고객이나 컨설턴트가 회사에 방문하여 회사에서 제작하여 홍보 중인 금속 3D프린터에 대해 물어볼 때였다. 특히, 금속 3D프린터의 사양(Specification)과 소재(재료)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볼 때였다.


회사에서는 금속 3D프린터 제작이나 운영 관련하여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내가 금속 3D프린터 제작이나 운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금속 3D프린터 제작이나 운영할 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몸을 다칠 수 있어서 그다지 제작이나 운영하는 것에 대해 배우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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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ISO/TC261(국제표준화기구 적층제조 기술위원회) 3D프린팅 7대 기술 분류>


회사에서 생산하는 금속 3D프린터는 PBF(Powder Bed Fusion)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PBF 방식의 금속 3D프린터는 중고등학교, 대학교, 메이커스페이스(Makerspace, 열린 제작실) 등에 보급되어 있는 플라스틱 소재의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3D프린터와는 다르게 가격이 매우 비싸고 치과 등의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시작품(試作品, Prototype)을 만드는 용도로 주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수요처가 제한적이었다. 시작품이란 설계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제조공정이 아닌 연구소나 시작실에서 시험용으로 제작한 제품을 말한다. 가격은 대략 금속 3D프린터 한 대당 1억 8천만 원에서 2억 2천만 원(부가세 포함)이었다.


회사 경영진은 방문해서 물어보는 고객이나 컨설턴트에게 회사의 금속 3D프린터에 대해 판매를 해야 하므로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나는 고객이나 컨설턴트가 조금 깊숙한 기술적인 내용을 물어보면 답변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금속 3D프린터 제작이나 운영을 해 본 적이 없어 기술적인 부분에서 그들에게 설명해 주기 부족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가끔씩 내가 반쪽짜리 엔지니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3D프린팅이라는 실습이 필요한 과목에서 이론은 알지만 실습을 하지 못하는, 그래서 이 과목을 온전히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이 회사에서 4년 동안 근무했던 것을 감사한다. 회사 경영진은 근무하는 동안 R&D기획과 문서작업에 나를 적임자로 생각하며 같이 성장하자고 항상 제안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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