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만에 다시 보험설계사 시험을 쳤다. 2025년 5월에 보험회사에서 보험설계사 시험을 위한 교육을 받고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 따라 보험설계사가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친구 K 때문이었는데 K는 6개월 전만 해도 아무런 직장도 다니지 않는 실업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K로부터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K는 보험설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신입 보험설계사가 되어서 보험회사에서 교육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K는 보험영업 경험이 많은 경력자이지만 보험 일을 안 한지 오래되어 새로 보험설계사 시험을 치러야 했다.
K는 나에게 한 번 만나자고 말했다. 며칠 전에 내가 K에게 가야금 공연을 관람시켜 주었었는데, 그 보답으로서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K는 만남 장소로서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보험회사를 소개했다. 보험회사에서 만나 구경한 후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K가 보험회사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말한 데에는 식사 대접 외에 다른 목적이 있었다. K는 주변에 보험설계사를 할만한 사람을 물색해서 회사로 데려오고 싶었은데 내가 타깃이 된 거였다. K는 회사의 일층 로비에서 나를 맞이한 후 5층 사무실로 안내했다. 그곳에 지점장이 계시다는 것이다.
"지점장님 한 번 만나보실래요? 보험설계사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K로부터 지점장을 만나보라는 말에 삼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 K보험회사에서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지만 근무하지 못했었다. 원래 다녔던 회사로 다시 복직하게 되는 바람에 보험설계사로 일할 수 없었다. K는 내가 반대하지 않자 지점장을 소개해 주었다. 다시 보험설계사가 되리라는 계획은 없었지만 보험설계사 일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다. 그래서 지점장과 잠시 동안 면담을 했다.
지점장과의 면담 중에 보험설계사 일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점장은 보험설계사로서 영업을 한 번 해보라고 권유했다. 지점장과의 면담 후 본부장과의 면담도 했다. 이렇게 보험회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고객으로서가 아닌 보험설계사로서의 인연이었다.
신입 보험설계사가 되면 4개월 동안 교육을 받아야 했다. 코칭 매니저로부터 암, 뇌, 심혈관 등에 대한 기초 의료지식과 관련 보험상품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자동차, 화재, 상해, 간병 등의 보험상품들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회사의 영업포털사이트에서 가입설계 동의에서부터 상품설계와 계약까지 프로세스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들은 내용들이 잘 정리가 되지 않고 헷갈렸다.
'자기계약을 해야 할까?'
신입 설계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보험상품을 계약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냥 자기계약을 하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자기계약이란 보험설계사 본인이 보험계약자가 되어 가입하는 것을 말한다. 팀장에게 자기계약을 하겠으니 상품설계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팀장은 매달 설계사가 올려야 하는 매출실적을 고려하여 적합한 보험상품을 설계해 주었다.
보험상품 중에는 건강한 사람이 가입하는 상품과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입하는 상품이 있다. 팀장이 설계해 준 상품은 유병자(有病者) 상품이었다. 나는 팀장이 설계해 준 보험상품에 대해 핸드폰을 이용해서 계약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가입한 지 3주 정보 되었을 무렵에 계약을 철회하고 다시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내가 유병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이 가입하는 보험에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근 십 년 이내에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은 적이나 병을 진단받은 적이 없다. 거의 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의 문제점을 자주 느껴왔고 몸이 아프더라도 자연치유를 하고자 한다. 흥미로운 점은 보험에서는 병원에 가지 않아 병 진단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도 건강하다고 본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존에 가입했던 유병자 상품을 철회하고 건강한 사람이 가입하는 보험상품으로 가입했다. 그때였다. 사무실 앞쪽에 앉아 있던 지점장이 나를 불렀다. 지점장 자리로 갔다.
"사장님은 신입이 아니라 경력설계사시네요. 다른 회사에서 한 달 동안 일하신 경력이 있어요"
지점장이 내 급여나 경력을 회사 영업포털사이트로 살펴보다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발견한 것이었다.
"제가 한 달이나 근무한 적이 있다고요?"
"네. 여기를 보세요. 전산 상에서 조회해 보면 알 수 있어요"
보험협회 홈페이지에서 조회해 보니 삼 년 전에 다른 보험회사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이력이 있는 것이었다. 한 달 동안 근무했고 그 기간 동안에 영업실적 힌 건을 올렸다고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당시에 보험설계사 시험에 합격해서 보험설계사 일을 하려다가 연구소에 복직하는 바람에 보험회사에 한 번도 출근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영업실적도 자기계약이었다. 보험회사는 내가 한 번도 출근하지 않았지만 한 달 동안 근무한 것으로 해주었던 모양이다. 나는 보험협회에 경력이 기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보험영업을 해 본 적 없는 보험설계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