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40개씩 증가하는 대만 음료점

물보다 더 많이 마시나?!

by 조혜미

한국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다면 대만에는 버블티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만에는 그만큼 음료점이 많다. 대만의 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 5월 말 대만의 손으로 흔들어 마시는 음료(手搖飲, 서우야오인) 가게가 전국에 16,070개가 있으며, 이는 전체 음료점(카페, 다관, 빙과점 등 포함)의 57%라고 한다. 조금만 걷다 보면 어느 브랜드든 나올 정도다. 물론 타이중 한복판에서 유동 인구가 적은 길로 잘못 들어가 한참 동안 못 찾은 적이 있지만. 그 길에 편의점과 카페는 있었다. 단순히 오기가 생겨 오로지 서우야오인 가게만 찾아서 생긴 불상사이자 희귀 케이스였으니 웃고 넘어가길 바란다.


대만 음료의 역사는 300~400년 전부터 시작된다. 네덜란드에 지배를 받았던 시대에도 차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간 계약 문서에서도 1770년대 관련 항목이 존재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18세기 말~19세기 초 중국 푸젠성 출신 이민자가 차나무를 가져와 재배가 시작되었다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다.


17세기 초 네덜란드가 유럽으로 중국 차를 가져간 후로 영국과 더불어 미국까지 중국 차를 대량으로 수입했다. 1776년 미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차 수요는 여전했으며, 1830년대는 급기야 전체 선박 수출입 화물 중 절반 이상이 찻잎일 정도로 인기였다. 이에 미국 내에서 대만에서 차를 재배해 수입하자는 여론이 생겼다. 중국 차의 비중을 낮추고, 품귀 현상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1858년, 톈진 조약으로 대만의 핑안과 단수이가 개방되어 국제 항구가 되었고, 결국 1869년 존 도드(John Dodd)라는 영국 상인이 '포모사 티(福爾摩沙 茶, Formosa tea)'라는 대만 브랜드 차를 미국으로 수출했다. 참고로 포모사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우롱차 품종을 연구해 '포모사 우롱차', 인도 아삼 차나무 품종을 도입해 '포모사 블랙티' 브랜드를 수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노동력과 식량이 부족해져 차 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전쟁이 끝난 뒤 초기에는 대만의 다원 상황은 나아졌어도 적은 생산량과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수출이 어려웠으며, 우롱차와 달리 홍차는 대만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산이 중단됐다.


하지만 1980년대 대만의 경제 상황과 국민 생활 수준이 나아짐에 따라 곳곳에 다예관과 관광 다원이 생겼다. 차 판매도 수출보다는 내수 위주로 변하였다. 1999년 대지진 이후에는 난터우(南投)에서 홍차인 타이차18호(台茶18號), 녹차인 타이완 산차(台灣山茶)도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다시 1980년대로 돌아가서 대만 음료 역사의 중요한 포인트를 이야기해 보겠다. 1980년대 파오모(泡沫, 포말) 홍차, 즉 거품 홍차 혹은 버블(이 버블은 타피오카 펄이 아닌 거품을 의미한다.) 홍차 가게가 등장했다. 그전까지는 차를 마시는 건 올드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또한, 뜨거운 차만 마셨는데 이때부터 아이스 음료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파오모 홍차는 뜨거운 홍차에 얼음과 시럽을 넣고 흔들면 위에 생기는 거품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어느 브랜드에서 이걸 처음 발명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법원에서도 명확히 가릴 수 없었지만, 대만 음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점은 분명하다. 홍차 이외에도 녹차, 우롱차 등의 인기도 날로 높아져 갔다. 또한, 1980년대 말 버블밀크티(珍珠奶茶, 전주나이차)가 등장하고, 레몬, 꿀, 타로 등 각종 재료를 넣어 먹게 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음료가 늘어났다. 따라서 차는 구시대적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젊고 활기찬 현대 삶을 상징하게 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테이크 아웃 개념과 컵실링기로 인해 음료 산업이 한층 성장했다. 어느 날 계란 판매업자였던 예이팡(葉益芳)이라는 대만인이 행인이 음료와 다른 걸 같이 드는 모습, 길 여기저기에 흘리는 모습을 보고 컵실링기를 개발했다. 이 기계를 사용하면 간편하게 컵을 비닐로 덮어 씌울 수 있어 점차 많은 음료점에서 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제 대만에 가 보면 각종 음료 가게는 물론이고, 아침 메뉴를 판매하는 가게에서도 더우장(豆漿, 콩국 혹은 두유)이나 뤼더우장(綠豆獎, 녹두유)도 컵실링기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00년대에 새롭게 생겨난 문화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얼음과 당도 조절이다. 당시 음료의 맛이 가게마다 큰 차이가 없었기에 차별화를 두기 위함이었다.


2000년대에는 파오모 홍차는 줄어들고, 흔들어 마시는 음료 가게가 점차 성장했다. 브랜드가 많아지고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식품 안전을 중시하게 되어 가게를 열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래도 점포 수는 계속 늘어났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에도 진출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중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브랜드는 그 유명한 '공차(貢茶)'다.


대만 현지에서는 공차보다 훨씬 유명한 브랜드가 많다. 게다가 대만에서는 음료 기본 사이즈가 한국의 그란데 사이즈임에도 훨씬 저렴하다. 대만에 가면 최대한 다양한 브랜드, 다양한 종류의 메뉴를 마셔보길 바란다. 무엇보다 타피오카 펄도 좋지만, 각종 과일을 비롯한 수많은 토핑이 있으니 꼭 도전해 보고 취향을 찾아 봤으면 한다. 브랜드마다 사용하는 우유도 다르고, 여러 색이 그라이데이션처럼 어우러진 음료도 존재한다. 적어도 차류, 과일류, 밀크티류별 하나씩은 먹어보길 바란다. 혹시 흔한 메뉴 말고 특별한 걸 맛보고 싶다면 팁을 하나 주겠다. 구글에서 '브랜드명 隱藏版'이라고 검색하면 각 브랜드의 히든 메뉴를 알 수 있다. 그중 맘에 드는 걸 골라 직원에게 주문하면 알아서 만들어 준다. 실제로 대만 친구가 추천해 준 히든 메뉴를 먹어 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브랜드 별로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음료의 색도 다양해지고 음료점의 인테리어도 특별해졌다. 인스타그램의 영향인지 打卡(다카)라고 하는 핫플 인증 혹은 도장 깨기 문화에 음료점도 합세하게 됐다. 정말 유명한 곳은 부모님 세대의 분들도 어딘지 아실 정도다.


우리나라는 한꺼번에 음료를 여러 잔 사지 않는 이상 음료를 무조건 손으로 들어야 한다. 반면 대만은 음료 소비량이 워낙 많다 보니 유용한 물건이 탄생했다. 바로 음료를 팔에 끼워서 다닐 수 있다. 베이다이(杯帶/袋), 인랴오다이(飲料帶/袋), 인랴오티다이(飲料提帶/袋), 베이방(杯綁), 인랴오티성(飲料提繩), 베이타오(杯套)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음료 홀더의 몸통을 컵에 끼우고 위에 둥글게 달려 있는 손잡이를 손이나 팔에 끼우면 된다.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는 홀더의 경우 어떤 형태의 컵도 들고 다닐 수 있다. 실제로 물병에도 끼우고 일반 음료 컵에도 끼우고 실내화 가방 들고 다니듯이 다니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대만에선 소품점 등에서 흔히 구할 수 있으며, 스타벅스에서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물건이다. 천, 끈, 가죽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 수 있으며, 유튜브에서 제작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기념품 혹은 선물용으로도 제격이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아 구매하는 것도 괜찮다.


이렇게 유명하고 맛있는 대만의 음료, 최대한 많이 마시는 걸 추천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대만의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에는 무엇이든 먹으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심지어 지하철을 기다릴 때도 마찬가지다. 가오슝에서 경전철을 기다리다가 야외 역사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음료 빨대를 입에 갖다 댔다가 역무원에게 제지를 당한 적이 있다. 음식 역시 먹으면 안 된다. 누군가가 신고해서 걸리면 벌금으로 최소 1,500에서 최대 7,500 대만 달러를 물어야 한다. 이는 음료 한 잔에 50 대만 달러라고 했을 때 무려 150잔을 마실 수 있는 돈이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대만의 음료,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발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