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주문할 때 이름 주의
대만의 면 요리는 정말 맛있다. 하지만 자고로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가는 민족 아닌가! 고슬고슬한 쌀을 씹고 싶을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다. 바로 대만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루러우판(滷肉飯), 일명 간장 조림 돼지고기 덮밥이다. 야들야들한 돼지고기와 갓 지은 밥에 부드러운 소스를 비벼 먹으면 맛과 포만감을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다.
돼지고기의 어느 부위를 쓸까? 식당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삼겹살을 쓰지만 항정살을 쓰는 곳도 있다. 항정살이 향도 좋고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이 황금 비율이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고기의 부위가 다양한 이유는 루러우판의 유래를 보면 추측할 수 있다. 예전에 가난해서 돼지고기를 사기 어려웠던 서민들은 정육 노점에서 팔고 남은 고기를 얻곤 했다. 그 고기를 다진 뒤 간장을 베이스로 한 국물에 푹 졸여 흰밥 위에 올려 먹었다고 한다.
대만 식당을 다니다 보면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루러우판의 표기법이 두 가지라서 찾아보지 않는 이상 뭐가 맞는 건지 알 수 없다. 발음은 똑같지만 魯肉飯이라고 쓰는 곳도 있는데 이는 틀린 표기다. 정확히 말하면 魯(루)는 산둥 요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식당에서 두 표기법을 쓰고 있다. 한국에서도 떡볶이를 떡볶기라고 하는 등 맞춤법에 맞지 않게 적어 둔 식당이 있다. 대만에도 그런 곳이 있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같은 메뉴인 걸 눈치채고 주문하면 된다.
앞서 루러우판을 간장 조림 돼지고기 덮밥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루러우판의 핵심인 루(滷)는 단순한 간장 조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간장과 함께 설탕과 향신료를 넣고 오랫동안 졸인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물 혹은 소스를 루즈(滷汁), 루수이(滷水), 루탕(滷湯)이라고 한다. 식당마다 루러우판의 맛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아마 이 루즈의 맛 때문일 것이다. 루즈는 오래 졸일수록 깊은 맛이 난다. 어떤 향신료를 넣느냐에 따라 풍미도 달라진다. 그래서 루러우판 맛집의 비법은 이 루즈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혹 대만 음식을 좀 아는 분들 중에 러우짜오판(肉燥飯)과 헷갈려하는 분들이 계신다. 루러우판과 러우짜오판은 엄연히 다른 메뉴인데 쉽게 구분하려면 고기의 종류를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 루러우판은 비계가 많고, 러우짜오판은 비계가 적고 살코기가 많거나 살코기밖에 없다. 고기의 크기도 다르다. 루러우판은 고기가 작고 러우짜오판은 고기가 루러우판보다는 크다. 루러우판은 다진 고기를 쓰지만, 러우짜오판은 잘게 썬 고기를 쓰기 때문이다. 또한, 루러우판이 좀 더 걸쭉한 반면, 러우짜오판은 국물 느낌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지역에 따라 두 용어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대만의 남부 지역에서는 루러우판을 러우짜오판이라고 한다. 오히려 남부 지역에서 루러우판이라고 하면 삼겹살을 올린 캉러우판(炕肉飯) 혹은 훙러우판(焢肉飯), 쾅러우판(爌肉飯)을 가리키기도 한다. 남부에서는 루러우판을 시키면 캉러우판처럼 나올 수 있고, 북부에서는 러우짜오판을 시키면 루러우판처럼 나올 수 있다. 이쯤 되면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할 수 있다. 기본적인 개념을 알아 두고 대만에서 직접 사 먹을 때에는 식당의 메뉴 사진을 보고 주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식당에 따라서는 계란도 올려 주는 곳이 있으니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워낙 흔한 음식이다 보니 스타일도 다양해지고 이름까지 많아진 게 아닌가 싶다. 대만에서 다양한 지역을 여행한다면 루러우판 투어를 해도 될 정도다. 사진을 보지 않거나 물어보지 않고 주문하면 예상과 다른 스타일의 루러우판이 나오는 재미도 즐길 수 있다. 간단하지만 알차고 맛있는 밥 한 끼를 먹고 싶을 때 좋은 메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