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는 아삭아삭 바오빙

by 조혜미

워낙 더운 나라라,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만은 대표적인 더위의 나라로, '여름에 대만에 가는 건 미친 짓'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런 기후 속에서 빙수가 대표 간식으로 자리 잡은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만의 빙수는 단순하지 않다. 바오빙(刨冰), 촤빙(剉冰), 지즈빙(枝仔冰), 바푸빙(叭噗冰), 몐몐빙(綿綿冰), 쉐화빙(雪花冰), 지단빙(雞蛋冰)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 이번에는 촤빙(剉冰)이라고도 불리는 바오빙(刨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바오빙을 처음 먹은 시점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만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더위와 허기를 느낄 때마다 자연스럽게 찾았던 음식이다. 유독 기억에 남는 경험은 친구의 부모님과 함께 핑둥(屏東)에 놀러 갔을 때였다. 사람들이 북적이던 바오빙 맛집에서 거대한 그릇에 담긴 바오빙을 먹었는데, 과장을 보태자면 세숫대야만 한 그릇에 바오빙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 한 그릇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일본과 얽힌 부분이 많다. 일제강점기에도 대만은 무더운 날씨에 시달렸고, 일본은 미국의 제이콥 퍼킨스가 1834년에 만든 제빙 기술을 1883년에 들여왔다. 이 기술은 수십 년 후 대만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제빙 기술이 도입되기 전까지 대만은 얼음을 대부분 홍콩이나 일본에서 배로 들여와야 했다. 이로 인해 일본보다 얼음값이 세 배나 비쌌다고 한다. 1896년, 영국 상인 헬리나와 차 상인 리춘성(李春生)이 손을 잡고 타이베이 다다오청에 대만 최초의 제빙 공장을 세웠다. 이후 일본인들도 대만 전역에 제빙 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제빙 산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일본은 처음엔 어업용으로 얼음을 만들었다. 해산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한 일본인들은 얼음을 가공해 일반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대만 얼음 시대의 서막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대패칼이나 끌칼을 이용해 얼음을 얇게 깎고, 그 위에 바나나 오일과 설탕물을 얹어 먹었다. 이것이 바오빙의 원형이다.


20세기 초에는 거리에서 얼음을 파는 모습이 흔한 풍경이었으며, '타이베이주 물품 판매 사업 현황 조사(臺北州物品販賣事業狀況調查)'에 따르면 1938년 대만 전역에 얼음 가게가 268곳이나 있었고, 이는 전체 판매업의 0.75%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1번은 얼음 팔기, 2번은 의사 되기'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1970년대 무렵부터는 사람들이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젤리나 타피오카 등을 바오빙에 넣어 먹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푸딩, 코코넛 등도 주요 토핑으로 자리 잡았다. 비옥한 토지 덕분에 대만은 농산물이 풍부해, 팥, 녹두 같은 토산물은 물론 파인애플, 구아바, 앵두, 키위 등 과일 및 건과일까지 다양하게 토핑으로 활용됐다. 토핑의 종류와 개수에 따라 바바오빙(八寶冰), 쓰궈빙(四果冰), 리셴빙(李鹹冰), 수이궈빙(水果冰) 등 다양한 이름도 생겨났다.


누차 말하지만, 대만은 정말 덥다. 특히 여름에는 숨이 턱 막힐 정도다. 그래서 대만 사람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한 음식을 자주 찾고, 이런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자량(呷涼)이다. 남부 도시 가오슝에서는 이 단어를 딴 자량지(呷涼祭)라는 페스티벌도 열린다. 자량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바오빙이다. 조금이라도 더운 시기에 대만을 찾게 된다면, 마음에 드는 바오빙 가게에서 1인 1그릇을 시켜 온몸을 시원하게 식히는 것도 멋진 즐길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