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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만아웃사이더 Aug 07. 2022

처음으로 그에게 화를 냈을 때

  처음으로 남자친구에게 화를 냈다.


 "걔도 진짜 이상해, 남자친구가 있는데 굳이 너한테 왜 생일 축하를 하는 건데?"


 한 번 시작된 화는 마치 터져버린 댐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중국어가 속사포처럼 쏟아졌고 다른 방에 있는 룸메이트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말 큰소리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는 이런 내 모습에 놀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듣기만 했다.




 시작은 이랬다. 남자친구와 롱디를 한지 대략 5개월 정도가 흘렀을 때, 사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나와 사귀고 난 이후에 전여자친구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연락을 한 걸 알게 되었다.


 그 당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놀람의 감정은 분노를 넘어서 실망으로 이어졌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닌지라 이런저런 말들로 남자친구를 걱정하게 한 적은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맹세코 어떠한 사실을 숨긴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과 달리, 남자친구는 그 일이 발생한 지 무려 몇 개월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그 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당시 별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이전부터 대만에는 헤어지고도 친구로 남는 경우가 많은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 남자친구가 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는 게 나에겐 큰 상처였다.


 그 사건이 있고 한참을 남자친구를 잘 믿지 못했다. 또한 나의 모든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된 기분이었기에, 굳이 내 이런 마음을 말하지 않고 그냥 헤어질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일부러 나에게 숨기려고 한 것 같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남자친구의 입장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을 갑자기 꺼내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그 일이 일어난 지 무려 10개월이 지난 최근에서야 남자친구에게 그 일을 털어놓았다.


 남자친구의 입장은 이랬다. 그냥 친구사이로 축하해주는 게 습관이어서 내가 이렇게나 신경을 쓸지 몰랐다, 무엇보다 내가 별 말이 없길래 본인도 잘 몰랐다. 하지만 네가 싫다면 앞으로는 연락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 미안하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계속 이야기 이어나가다가 전여친이 남자친구의 생일에도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는 말에 결국 모든 감정이 풍선이 터진 것처럼 한 번에 폭발하고 말았다.


 " 걔도 진짜 이상해, 걔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굳이 너한테 왜 생일 축하를 하는 건데? 그리고 너희 사귀면서 솔직히 할 거 다 해놓고 갑자기 친구로 지낸다? 너희 둘 다 쿨한 척 좀 그만해! 진짜 짜증나거든? 그리고 솔직히 너도 내가 전남친이랑 그렇게 연락 주고받으면 분명 기분 안 좋을 거 아냐? 만약 너 계속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나는 이제 그만할래. "


 정말 처음으로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내 모습에 남자친구는 깜짝 놀랐는지 나에게 계속 사과를 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나한테는 네가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때 이미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 갑자기 이런 모든 노력이 다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냥 허무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후에 한참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다시 화해했다. 무엇보다 나의 잘못도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처음부터 확실하게 말을 하지 않았으니 남자친구는 정말 내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나도 남자친구에게 사과했고 겨우겨우 우리는 다시 화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감정에 충실하게 화를 내고 나니 솔직히 말하자면 통쾌했다. 나도 이렇게 화를   있다니!


 난 원래 내가 화를 잘 내는 성격이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원래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인데 억지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려 노력한 것이었다.


 물론 화가 난다고 매번 이런 식으로 화를 내는 건 옳지 않다. 가급적이면 화를 참고 이성적으로 말하는 것이 상황 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런 원만한 해결을 위해 나는 그동안 내 감정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화를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필요하다면 그 감정을 분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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