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롱디의 영원한 친구, 현타
"어떻게 해외 롱디를 이렇게 오래 하나요? 외롭지 않으세요? "
내 해외 롱디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물어올 때면, 매번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참 고민이 된다. 어떻게 이렇게 오래 안 만나고도 잘 지내는가.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러게요, 아마 서로 각자 할 일에 충실해서 그런가 봐요- 하고 대충 얼버무리곤 한다.
그러나 꼬박 1년 하고도 3개월이 다 되어가는 해외 롱디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아무 일도 없었고 아주 잘 지낸다고 하는 건 사실 거짓말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남자친구가 그리울 때가 있고 내가 지금 뭘 하는가 하며 현타가 오곤 한다. 그중에서 가장 큰 현타가 왔을 때는 바로 남자친구와 롱디를 한지 대략 5개월이 다 되어갈 때쯤이었다.
먼저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와 남자친구는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해외 롱디를 한 조금 특이한 케이스다. 그렇다 보니 통화와 메신저만으로는 서로를 알아가는데 큰 한계가 있었고 그 결과 연애 초반에나 있을 법한 어색한 긴장관계를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 겪고 있었다. 하필 그때 이전에 얘기했던 남자친구의 전여자친구 문제가 터졌고 남자친구에 대한 나의 신뢰는 너무나 손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남자친구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남자친구를 대했지만 혼자서는 음침하게 이 만남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고민이라기보단 이미 헤어짐이라는 답을 혼자 내린 후 어떻게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게 더 정확하겠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길 몇 번. 거의 몇 달을 고민을 하다 우연히도 남자친구와 막 만남을 시작할 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당시에 남자친구가 유럽으로 떠나기 10일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앨범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저장해놓았는데 그 앨범들을 다시 하나씩 돌이켜보며 이 관계가 나에게 얼마나 애틋하고 소중했는지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혼자서 말도 없이 관계를 정리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결국 무슨 결정을 하게 되든 직접 얼굴이라도 보고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 자리에서 유럽행을 결정했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해외 롱디에게 한 번의 만남은 시간 그리고 돈에 있어 큰 희생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처럼 한 명은 학생이고 한 명은 직장인인 경우, 아무래도 수입이 일정하게 있는 쪽에서 애인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일정한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라고 한들 상대방을 위해 장기 휴가를 내고 최소 몇십, 많으면 몇 백이 넘는 비행기표를 산다는 건 절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 같은 대륙에 있는 해외 롱디라면 그나마 좀 괜찮지만, 나처럼 아예 대륙 자체가 다른 곳에 있는 해외 롱디면 일단 한 명이 시간 그리고 돈을 무진장 써야 겨우 얼굴 한번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남자친구를 보러 유럽에 가기로 했을 때도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비행기표에 지불해야 했고 동시에 모든 휴가를 다 끌어모은 후 겨우 3주라는 휴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서야 겨우 남자친구 얼굴 한번 볼 기회가 생기는 것, 이게 바로 해외롱디의 현실이다.
그 모든 과정을 겨우 뚫고 만나게 된 남자친구. 많은 돈과 시간을 썼지만 지금도 다시 생각해도 가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통화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각자의 더 많은 모습들을 볼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를 더욱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었다. 3주를 꼬박 붙어있었지만 한 번의 트러블 없이 매우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몇 개월동안 혼자 걱정하고 고민했던 모든 것들이 단 3주라는 시간 동안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할 정도로 우리의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해외 롱디의 성공 여부는 평소에 혼자 잘 노는 것,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현타를 어떻게 잘 이겨내는가에 달려있는 듯하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해외 롱디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마무시한 게 아니다. 만약 당신이 혼자 잘 노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 잘 지내는 사람에게도 분명 한 번쯤은 해외 롱디의 '현타'가 찾아올 것이다. 내 경험상, 이런 '현타'가 왔을 때는 가능하다면 꼭 직접 만날 수 있는 날을 잡는 걸 추천한다. 정말 막상 만나면 그런 고민들이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현타가 왔는데 바로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럼 절대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그냥 상대방에게 털어놓는 걸 추천한다. 혼자 끙끙 앓아봤자 결국 결론은 '헤어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현타가 왔을 때는 그냥 솔직하게 상대방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놓자. 어쩌면 그 과정에서 어떠한 해결방법도 찾지 못하고 관계가 파국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헤어지게 되는 관계라면 사실은 이미 끝난 지 오래된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파국의 단계가 아니라 아직 희망이 있는 롱디라면? 그럼 서로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는 과정이 당신과 그 사람의 관계를 더욱 두텁게 해 주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동시에 생각보다 빠르게 수많은 고민들이 해결되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서로에게 솔직해지기. 그것이 해외 롱디 현타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