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는 거리가 먼 '이방인'으로서의 크리스마스
한국에 비해 여름이 1.5배는 더 긴 대만에서는 12월은 되어야 겨울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날씨가 된다. 그래서 대만에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도 함께 찾아온다.
외국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괜스레 더 좋아 보인다. 하지만 나처럼 정말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혼자 살고 있는 외국인에게 크리스마스란 외로움을 더해주는 기폭제 밖에 되지 않는다. 연말이라 약속이 평소보다 2배는 더 많아지지만 정작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혼자가 되는 게 현실이다. 적적함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거리로 나가봤자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누리는 가족과 커플들의 모습이 내 외로움을 더욱 사무치게 만들 뿐이다.
대만에서 지낸 지 거의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연말을 그나마 덜 외롭게 버티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대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을 정도로 연말을 싫어했다. 만약 평소에도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으면 그러려니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평소 감정 기복이 워낙 잘 없던 내가 연말만 되면 자꾸 혼자 '지랄'을 하게 되니 나 스스로도 그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연말을 끔찍이도 힘들어했던 이유는 평소에는 무시하고 지냈던 '혼자'라는 현실을 어떻게 해서든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속감을 주는 어떠한 조직도 없으면서 떠나면 그만인 외국인 신분을 온몸으로 절감하는 시간.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내 선택의 결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나에겐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연말에도 외롭지 않느냐, 그건 또 아니다. 그저 외로움을 덜 느끼는 방법을 배웠을 뿐, 매해 연말마다 찾아오는 외로움의 양은 언제나 똑같다. 남자친구가 있지만 해외 롱디이다 보니 올해 연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또 혼자 버텨내야 할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맞는 외로운 크리스마스. 시간이 지나면 내성이 생겨 나아질 것 같았지만 가면 갈수록 외로움을 잘 억누르는 방법만 배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