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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호진 Jun 26. 2020

합쳐서 신장 두 개인
60대 노부부 이야기

#프롤로그, 바보 아내에게 부치는 연서(戀書)


아내가
위험합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인 '소년희망공장' 1호점(카페)을 3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아내는 요즘 미혼모 자립 일터인 소년희망공장 3호점(샐러드&샌드위치 전문점) 오픈을 앞두고 몹시 바쁩니다.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이 더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은 아내는 몸이 아파 끙끙 대면서도 쉬지 못합니다.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만졌더니 돌덩이처럼 굳었습니다. 종아리는 탱탱 부었습니다. 어깨와 다리를 한참이나 주물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런 것입니다. 


장사의 '장'자도
모르는 아내가 


위기 청소년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장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장사에 뛰어든 3명 중 2명은 망하고 겨우 1명만 살아남는 자영업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사람의 도움도 컸지만 가장 큰 성공 요인은 타고난 성실성과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어제(6월 25일)는 밤 11시경 귀가해 씻자마자 쓰러진 채로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출근했습니다. 소년희망공장을 2016년에 만들었으니 이렇게 생활한 지도 어느덧 5년째입니다. 


아내가 보살피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엄마가 없거나,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피해자이거나, 품행장애와 분노조절 장애를 앓는 우울증 환자이거나, 부모와 가족마저 외면한 위기 청소년과 반지하 단칸방에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이거나, 소년원 출신 미혼모이거나, 분유와 쌀이 떨어져서 애 태우던 보육원 출신 미혼모입니다. 이들은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아빠도 버리고 떠났는데 도대체 누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이 왜 우릴 돕지?
우릴 이용하려는 것 아냐? 


아이들의 의심과 불신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버림받은 상처 때문에 의심하고 불신하던 아이들도 아내의 한결같은 사랑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하루 이틀이었다면 마음을 열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와주는 척만 했다면 아이들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계산 상 손해를 봤다면 아이들은 뒤통수치고 떠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계산 상 손해 보는 짓만 하는 아내를 보면서 아이들이 당황했습니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뒹굴던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희망의 땅에 발을 디딘 것입니다. 아내의 바보 같은 사랑에 당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정의는 생존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망하면 끝입니다. 소년희망공장 1호점에선 5명의 위기 청소년이 일하고 있고 곧, 오픈 예정인 3호점에선 미혼모 포함해 5명이 일할 예정입니다. 어게인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를 포함하면 20여 명 정도 됩니다. 아내는 인건비와 월세를 책임져야 하고, 위기 청소년 무료급식소 밥값을 마련해야 하고, 위기 청소년 교육·문화·스포츠 공간인 ‘소년희망센터’를 운영해야 합니다. 제가 거들긴 하지만 거진반 아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입니다. 무거운 짐 때문에 또 쓰러질까 봐 걱정입니다. 


아내는 3년 전,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쓰러지면서 뼈를 다치는 바람에 두 달 동안 목발 신세를 졌습니다. 아내는 모처럼 쉬면서도 그냥 쉬지 아니하고 북한 어린이에게 보내는 목도리 뜨는 일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리고는 깁스를 풀자마자 또다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제가 벌였으니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친 몸으로 귀가해 쓰러진 채로 잠들었다가도 새벽이면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아내의 지친 안색에 놀란 지인들이 “그러다, 큰일 난다!”,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만류하지만 현 상황에선 쉴 형편이 못 됩니다.


▲아내에게 시로 청혼했습니다. 


홀로였던 내가

홀로였던 그대

쓸쓸했던 신발을 벗기어

발을 씻어주고 싶습니다.

그 발아래 낮아져

아무것도 원치 않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대 안온한 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노래가 되어    


(조호진 시인의 ‘가난한 청혼’)     


아내는 바보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지인을 돕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했다가 제법 큰돈을 떼였습니다. 또 다른 지인에게 또 속아 큰 피해를 당하고도 “돈이 속였지 사람이 속였겠느냐!”라며 웃어넘기는 아내는 통 큰 바보입니다. 교회에서든 지역에서든 어디에서든지 간에 아내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는 것은 자기 잇속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넉넉함과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도와주지 못해 안달 내는 오지랖 때문입니다. 남이었면 저 또한 덕담하며 칭찬하겠지만 아내이다보니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손해 보는 일 좀 이제 그만했으면 했다가도 그 오지랖에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이 저인지라 말리진 못하고 속앓이 할 뿐입니다.      


저는 아들 둘을 둔
가난한 홀아비였습니다. 


가난한 데다 가방끈까지 짧았습니다. 아내는 가방끈도 길고, 근검절약으로 재산도 모았고, 사회적 위치와 영향력도 제법 커서 제가 감히 넘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걸 어떡합니까. 외로운 걸 어떡합니까. 그래서 시 한 편으로 청혼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두 아들을 목숨처럼 지키면서 잘 키운 것을 보니 우리의 사랑도 잘 지킬 것을 믿는다!”며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승낙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2006년, 딸 하나를 둔 천사표 바보 아내와 새 가정을 꾸리면서 우리는 다섯 식구가 됐습니다.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지 맙시다!" 


이렇게 맹서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혼과 파산의 고통이 기나길었고 눈물의 세월이 아득했기에 새 가정을 주신 축복을 거저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만 해주신다면 저를 버리고 신의 뜻대로 살겠다고 서원한 바도 있어서 그냥 넘어갈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재혼하면서 이런 맹서를 했는데 하고 보니 제법 폼나는 맹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맹서는 폼나는 순간의 말잔치로 끝나지 아니하고 우리 부부의 삶을 가시밭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므로, 폼나는 맹서를 삼가야 합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초대 사무국장 출신으로 이주노동자·다문화 단체인 ‘지구촌사랑나눔’ 이사, ‘한국조혈모세포은행’ 홍보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아내는 30년 넘게 공익 활동을 해온 비영리 민간단체 전문가입니다. 지금은 소년희망공장과 소년희망센터를 운영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어게인' 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어게인 설립은 제가 벌인 일입니다. 서원하고 맹서 한 대로 살기 위해 가정법원이 위탁한 보호소년과 함께 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좌절감에 빠진 저는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십자가를 떠넘겼습니다.    


저는 ‘어게인’에서 자칭 ‘소년희망배달부’로 일합니다. 소년희망배달부의 주요 임무는 소년희망공장과 소년희망센터를 청소하고,  미혼모에게 분유와 기저귀 등을 배달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글쓰기를 통해 후원금을 모으는 일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훌륭한 일을 한다!”, “좋은 일을 한다!”라고 칭찬하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실패한 인생을 일으켜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잘했다고 공치사할 것이 없습니다. 


▲가정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 감사해서 신장 한쪽을 나누었습니다.     


모든 부부의 신장은
두 사람 합치면 네 개입니다. 


신장이 남아도 부족해도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신장은 합쳐서 두 개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신우신염’(세균이 신장을 침범하여 감염을 일으키는 병)을 앓았던 아내의 오른쪽 신장은 기능이 정지된 상태이고, 제 왼쪽 신장은 ‘만성신부전’(노폐물을 제거하는 신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될 수 없는 질환)을 앓던 생면부지의 청년에게 2007년 이식됐습니다. 깨진 가정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 감사해서 신께 서원한 대로 생명을 나누었습니다. 

 

신장을 기증한 지 어느덧 1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원래 약골이라 종종 몸살 앓긴 하지만 큰 병을 앓은 적 없으니 크게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가방끈은 짧고, 돈도 벌지 못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본 적도 없는 제가 부귀와 권세를 누리는 이들도 하지 못하는 일,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으니 놀랄 일입니다. 제가 이런 인생을 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것은 제게 이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겸손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내여,
우리 다시는 아프지 맙시다. 


인생의 아픔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절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서로를 더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 우리 다시는 아프지 맙시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사는 큰아들은 결혼시켰으니 박사 논문 준비 중인 딸(32세)과 대학원 재학 중인 막내아들(29세)을 결혼시키고 줄줄이 태어날 손자들도 돌봐야 하니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지 맙시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면서 3남매 가정이 사랑으로 뿌리내리도록 우리 오래 사랑합시다. 사랑하는 아내여, 제게 바람이 있다면 제가 먼저 떠나는 것입니다. 그대는 홀로 오래 남지 말고 뒤따라 오시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본향 가면 좋겠습니다.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가슴으로 낳은
두 아들을 잘 키운 아내여!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으면서 우주의 미아로 떠도는 아이들, 자신을 버린 부모와 세상을 미워하면서 누구든 마구 찌르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당해주는 그대는 바보입니다. 속이면 속아주고, 찌르면 찔림 당하면서 “우리마저 손을 놓으면 이 아이들이 어디로 가겠냐!”며 당하고 또 당해주는 그대로 인해 위기 청소년과 미혼모들이 삽니다. 바보 예수가 “나도 당했는데 네가 당하지 않으면 너와 나는 상관이 없다”면서 “나도 용서했으니 용서받은 너도 저 아이들을 용서하라!”는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쓰는 아내여!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는 일이,
찌르면 찌르는 대로 찔리는 일이 
말과 글처럼 쉬운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힘은 안 들고 폼만 나는 일이라면 세상 사람 누구인들 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돈까지 된다면 "내가 하리라! 저리 비키라!"라고 달려들지 않겠습니까. 어떤 선한 사람들은 아이들을 품으려고 했습니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피해자인 아이들이 짠해서 품는다고 해도 몇 번 찔리고, 털리고, 뒤통수 맞으면 손 뗄 수밖에 없습니다. 버림받은 상처로 뒹구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말과 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찌르면 찔려주고, 속이면 속아주고, 당하면서도 바보처럼 웃는 그대를 따르겠습니다. 



그대의 바보 같은
사랑으로 인해 이 길을 갑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가슴으로 낳은 큰아들 결혼식에서 아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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