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행사
정확히 35년전은 아니다.
기억으론 대략 그 즈음.
내 나이 10살이 되기 전이었던 것은 확실하고,
근로자의 날, 노동절 뭐 그런 단어 따위는 생각나지 않는다.
어느 날씨 화창한 날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넓은 잔디밭.
부모님의 회사에
온가족초청 행사가 있었다.
어머니의 동료들 중에 유독 우리 남매와 또래인 집들이 많이 있어서
그날은 그 여러집이 모여서 아이들까지 다 같이 회사에 갔었다.
그 당시 어머니는 매 달 월급을 받으면 꼭 나에게 예쁜 옷 한벌을 사줬었다.
주로 원피스와 자켓, 아니면 자켓, 블라우스, 스커트 등의 차려입은 듯한 옷들을 사주셨었다.
그 날도 그렇게 사준 옷들중에서
어두운색 바탕 노랑색 꽃무늬 코듀로이 원피스에 같은 무늬 짧은 볼레로가 세트인 옷을 입고 갔던 기억이 난다.
다른친구들처럼 공주옷 너풀너풀 거리는 스타일 아니고,
이렇게 어른옷처럼 생긴 옷이라 덜 좋다고
그땐 그런불만도 있었는데
회사에서 나를 본 어른들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어서 그후부터는 그 옷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었다.
어머니의 월급은 어머니의 자부심이었다.
나는 자부심을 입고 어머니의 회사에 갔다.
지금 기업의 가족초청행사들처럼 어린이날이다 가정의 달이다 하여 준비되는
다정한 분위기의 흥겨운 축제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근로자의 날」이라는 단어보다는 「노동절 」이라는 단어가 걸맞는 노래가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었고, 마치 TV에서나 본 80년대 민주주의를 향한 학생운동 하던 분위기가 가득했었다.
비록 그 공연들과 회사의 분위기는 겁쟁이 아이에게는 좀 낯설고 무서운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같이 갔던 그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뛰어놀고
빵과 우유, 각종 작은 선물들을 한아름 집에 들고와 기분이 좋았었다.
그날은 선물은 우리가 받아왔지만
주인공은 근로자들이었다. 그들의 날이었다.
그야말로 「노동절 」이었다.
아버지는 그날도 근무일이셨다. 전기배전쪽에 계셨기 때문에 기계를 멈추지 않는 한은 3교대가 멈출 수 없는 곳이었다. 잠시 짬을 내 나와계셨던 아버지의 밝게 웃던 얼굴이 생각난다.
해가 좋아 더욱 기분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눈이부셔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도 너무도 밝게 웃던 젊은청년, 젊은근로자, 이나라의 일꾼이던 아버지의 그날의 표정은 계속 기억에 남아있길 바래본다.
회사 내의 곳곳에 흰색 현수막, 그리고 빨간 글씨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회사가 문닫을 준비를 하던때가 아니라서
그냥 노동자의 권리행사를 위한 노조들의 활동이었던것 같다.
사측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면 가족을 초청할 리도 없고, 부모님이 우리를 데리고 가지도 않으셨을테니 말이다. 분위기가 어떠하였든 나의 부모님은 그날 행복했다.
지금은 이세상에 없는 아버지의 밝은 미소가.
사위에게 일하느라 수고 많으니 오늘은 자네가 주인공이라 말해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말들이.
비가와서 뒤숭숭한 휴일이었던 우리집안 곳곳의 아쉬운 공기마저도 충만하게 해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근로자 여러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