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커밍아웃

비겁자의 길

by 낭만주의 사업가

나의 아버지는 20여년 전 산업재해 인정을 받으셨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살던 작은 마을에서의 내 삶과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울출신 친구들의 삶이

많이 다름을 깨닫기 시작하던 때였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지난 경력이 밝히고 싶지 않아졌다.

불쌍한 아이가 되고싶지 않았다.

자격지심이었다.

밝힐 필요도 없었지만, 친구들과 친해지다보면 결국 나오게 될 나의 어린시절 얘기들.

비록 그친구들만큼 당장의 용돈은 많지 않지만

그것은 초라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그들만큼 쓸 수 있고,

나는 알지도 못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는 그들과

보세옷을 사입는 내가 비교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았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원진레이온이고 뭐고

운동권에 몸담은 선배들도 알까말까 한

말해도 알지도 못할 사건, 일들이었는데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내 일. 뭐가 그리 숨기고 싶었는지.


그때부터였다. 그냥 내 삶엔 없는 일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자라온 동네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음에도,

동네 친구들과 거의 만나지 않았다.

함께 서울로 대학을 간 친구들만 종종 연락하고 지냈다.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정말로 나의 사정을 다 아는 친구들만 만났다.

그리고 나의 과거는 세탁되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에겐 말해야했다.

대충 말했다.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 처럼.

이때는 또 다른 핑계가 생겼다.

친구들에게는 그냥 나의 불편한 과거가 알려지는게 싫었다면,

이번에는 나로인해 미래의 2세들에게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사고싶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가 그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사고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남편감에 대한 일종의 시험관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우려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당사자만 느끼는 두려움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관문.

예비 시부모님께 어떻게 할 것인가.


말씀드리지 않았다.


색안경을 끼고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꼭 말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들은 매우 고지식한 분들이라, 상견례 자리에서 딸가진 죄인 마음을 시전하셨다.

그것만으로도 머리끝까지 화가나고, 슬프고, 이 결혼을 뒤엎고 싶었다.

아버지의 일까지 미리 말했었더라면 분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슬픔, 분노, 두려움. 억울하고 뭔지 모를 마음으로 여러날을 잠을 못잤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어쩌면 메리지 블루 였을지도 모르는 그 감정들.

나의 시부모님들을 그렇게 팍팍하신 분들이 아니다. 어른답고 멀리 보실 수 있는 넉넉하신 분들이다.

그땐, 그냥 그랬다. 내가 속이 좁았다. 아직도 좁다.

다른것은 몰라도 지금까지도 시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

나의 아버지의 자존심이고, 그분들의 자존심이고. 모두의 평화를 위한 핑계라고 남겨뒀다.


사실.

알고 계실수도 있다.

대략적인 과거의 얘기들과 어린날들의 에피소드들을 듣고

시사에 능통하신 아버님의 입에서 몇번인가 회사의 이름이 나온적이 있었다.

말하지 않는 나를 위한 배려를 하고 계실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눈을 꼭 감고 그냥 넘어갔다.

앞으로도 그냥 넘어갈꺼다.

나의 아버지는 어디서든 당당하고, 어느 누구에게든 말할 수 있는 이 얘기를

나는 숨어서 할 수 밖에 없다.


밝히지만 밝히지 못했다.

반쪽짜리 커밍아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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