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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그늘 Sep 02. 2017

오베라는 남자

    ‘오베’는 불평불만 가득한 고집불통, 꼰대, 원칙주의자입니다. ‘두 다발 70크로나’라고 적힌 쿠폰을 내밀고는 한 다발은 35크로나보다 왜 비싸게 받느냐며 따집니다. 이웃집 여자에게 그 집 개가 아무 데나 오줌을 싸지른다고 욕을 퍼붓기도 하고, 마을로 들어선 차를 맨 몸으로 막아서고는 차량 진입 금지 표지가 안 보이냐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걸핏하면 짜증내고 성내는 오베는 이웃이나 동료로 두기에 그다지 반길 사람은 아닌 듯 보입니다.

 

    사람들도 그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 그도 이 세상이 너무 싫습니다. 반년 전 아내 ‘소냐’를 잃은 그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웃이라는 사람들은 번번이 그를 귀찮게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43년간 몸담은 회사에서 해고 통지를 받습니다.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너무도 사랑했던 그의 아내의 묘비 앞에 앉아 전처럼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하지만 오베가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이웃들로부터 의도치 않게 방해를 받습니다. 자살을 할라 치자 이웃 여자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다친 남편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같이 가자합니다. 열차에 뛰어들려던 계획도 도리어 철로로 쓰러진 사람을 구해내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의 마지막 자살 시도는 집에서 쫓겨난 친구를 묵게 해달라는 아내의 옛 제자가 나타나며 실패합니다. 그는 아내의 무덤에 찾아가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이 정도 되면 자살을 시도하는 오베와 그를 둘러싼 이웃이 만들어내는 대 소동극처럼 느껴질 듯합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오베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이웃들의 모습을 담은 메인 포스터를 보고 한 편의 코미디 영화쯤일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코미디’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하는 한 편의 ‘드라마’로 보는 게 맞아 보입니다. 영화는 자살 시도 직전 그의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오베의 과거와, 이웃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현재를 오가며 ‘오베라는 사람’의 삶을 잔잔히 풀어내는데요. 우리는 그의 삶 속의 여러 굴곡들을 바라보면서 고집불통 꼰대 원칙주의자 같던 그를 점차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첫 번째 자살 시도에서 그는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어머니의 이른 죽음으로 오베는 열차 청소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게 됩니다. 아버지는 본인의 애마인 스웨덴산 자동차, 사브에 관해 얘기할 때 빼고는 거의 말이 없는 과묵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일과 가족에 항상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소년 오베에게 정직과 성실을 가르칩니다.   


    오베의 회상은 차차 그의 아내 소냐를 처음 만나던 때로 향합니다. 그녀는 기차표를 살 돈이 없던 그를 대신해서 선뜻 그 값을 지불해 주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베의 미래를 설계해주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오베는 그녀에 대한 절대적인 순애보를 보여줍니다. 그 사랑은 재잘거리는 말과 표정으로 바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순박한 그의 눈 속에서, 소냐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과묵한 아버지를 닮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삶의 최고의 순간에 불행을 맞이합니다. 아들의 마지막 대학 성적표 보고 기뻐하던 아버지에게 닥친 허무한 죽음, 화마에 타버린 추억의 집, 출산을 앞둔 아내에게 덮친 불의의 사고. 그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을 것입니다. 그는 분노의 힘으로 정부에 항의서를 보내고 아내를 위해 집을 개조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 힘든 삶을 안겨준 것들과 싸워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분노의 불길은 무거운 재가 되어 내려앉고 그의 마음은 더 이상 세상을 향하지 않게 됩니다.


    점점 고립되어 가는 그에게 아내의 죽음은 마지막 삶의 동력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웃들을 통해 오베는 조금씩 변해가고 삶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그의 이웃들은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사다리를 빌려달라고 하고, 길고양이가 불쌍하다며 막무가내로 오베의 집에 맡기고 가기도 하는 조금은 귀찮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자의반 타의반 그들의 삶에 개입하게 되며 차차 마음을 열어갑니다. 그의 입가엔 좀처럼 보기 힘들던 옅은 미소가 번져갑니다.


    그런데 오베를 변화시킨 것은 이웃들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다친 남편을 태우고 병원에 가자는 파르바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발만 구르고 있을 때 직접 철로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며, 집에서 쫓겨난 게이 소년을 집으로 들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에게 마음속 빗장은 작은 계기로도 쉽게 열릴 수 있는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여행에 비견될 정도로 상당한 감동이었습니다. 투박하지만 정직한 삶을 사는 오베,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아버지, 현명한 조력자이자 항상 제자들의 편에 있던 소냐. 그리고 아내를 떠나보낸 오베에게 따뜻한 손을 뻗는 이웃들까지. 여행지에서 새기고 온 감동의 기억을 힘이 들 때마다 한 번씩 떠올려 보듯이 영화 속 선하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은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큰 위안이 되어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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