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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그늘 Feb 17. 2019

그을린 사랑(Incendies)

    지구 상 가장 뜨거운 지역 중동, 그 서쪽 끝 작은 국가 레바논. 40여 년 전 이곳에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평화의 시대가 깨지고 살상이 난무하는 시간이 도래합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근 15년간 지속되며 사람들을 죽음과 공포로 내몰았습니다. 영화 ‘그을린 사랑’은 이 참혹한 전쟁을 살아낸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왈’이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에게 남긴 유언장에는 그들이 이제껏 몰랐던 비밀이 담겨있었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가 살아있으며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가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나왈은 이들을 찾아 내 편지를 전하고 그전까지는 본인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유언을 남겨 놓았습니다.  

    생부와 형제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통해 남매는 어머니의 과거를 하나씩 알게 됩니다. 이슬람 난민이었던 연인과의 도주, 오빠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연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의 생이별, 아이가 있다는 고아원을 찾아갔지만 결국 폭격당한 건물 앞에 당도하게 되고, 고아원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이슬람 군대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나야 했던 어머니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던 어머니의 모습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 민병대가 이슬람인을 태운 버스를 습격하여 무자비하게 총을 난사하던 1975년 4월의 어느 날, 나왈도 같은 버스에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슴속의 십자가를 보여 가까스로 살게 되지만, 마지막 남은 어린아이에게조차 총을 겨누는 군인들을 보며 망연자실합니다. 기독교 민병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은 나왈로 하여금 그녀의 종교와 반대편에 서있는 이슬람 군에 가담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이슬람 스파이가 된 그녀는 기독교 민병대장을 살해하고, 그 대가로 15년의 긴 시간 동안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나왈이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관조적 톤과 느릿한 호흡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세련되고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은 보는 이를 압도하며 130분의 긴 시간을 영화에 몰입하게 합니다.

    영화는 이슬람 소년병들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포화로 얼룩진 회벽을 뒤로한 채 서있는 맨발의 소년병을 차례로 비추던 카메라는 한 아이에게 멈춰 섭니다. 머리를 깎이고 있는 아이, 매섭게 화면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고조되는 몽환적인 선율과 함께 점점 클로즈업됩니다. 이 전쟁이 참혹하고 무의미했음을 아는 지금, 투신을 맹세하는 듯한 소년의 결연한 표정은 서글프고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버스 학살 장면. 잿빛 하늘이 드리워진 모래 위에 선 하나가 푹 꺼지듯 아이가 쓰러지고, 이어 화염으로 뒤덮인 버스와 넋이 나간 나왈의 표정이 보입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익스트림 롱 숏(먼 거리에서 넓은 지역을 촬영하는 방법)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내고 있는데요. 그림 같은 아름다움에 상황의 처연함은 배가됩니다.

     영화는 충격적인 결말을 향해 갑니다. 수감 기간 중 나왈은 성폭력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바로 잔느와 시몽이었습니다.  해방된 뒤 두 아이를 데리고 캐나다로 망명을 떠난 나왈은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수영장에서 오래전 잃었던 아들을 우연히 마주하게 됩니. 그러나 그 순간, 넋을 잃을 만큼 잔인한 진실 또한 알게 됩니다.     

    이 영화는 친절한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충격적인 사실은 편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랑’, ‘용서’, ‘구원’과 같은 몇 가지 단어로 메시지를 짐작해볼지언정, 수수께끼 같은 은유적인 대사들은 영화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나왈이 시몽과 잔느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곱씹어 읽어 보았습니다.  

  

    “너희의 시작은 약속이란다.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 덕분에 마침내 약속을 지켰구나. 흐름은 끊어진 거야. 너희를 달랠 시간을 드디어 갖게 되었어. 자장가를 부르며 위로해줄 시간을.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너희들을 사랑한다.”


    편지에 따르면 그녀의 분노는 두 아이를 통해 끝이 나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그 ‘약속’대로 오랜 분노를 숭고한 모성으로 감싸 안습니다.

    바꿔 생각하면 그녀의 분노는 그만큼의 강렬한 계기 없이는 쉽게 끊어질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것이었겠지요. 이 영화를 두고 ‘분노를 풀어내는 용서의 힘’에 대해 많이 얘기합니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끔찍한 경험에서 비롯한 증오와 복수심을 사랑과 용서로 쉽게 감싸 안을 수 있을까요. 영화는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고 용서하라’와 같은 교훈을 말하기보다는 이를 실현한 한 여인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녀에게서 평범한 인간이 아닌 구도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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