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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그늘 Aug 15. 2020

엄마, 여기 있네

    체력이 좋아져서인지 아기가 밤에 잘 잠들지 않는다. 젖만 물리면 자버려 고민하던 때도 있었는데, 요새는 수유한 뒤로 한 시간, 두 시간 놀다 잘 때가 종종 있다. 혼자 있으라고 두고 나온 적도 있지만 하도 우는 통에 그냥 아기 침대 가장자리에 납작 누워 아기가 자기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재우기 위해 소등한 방 안에서 아기는 불빛들과 논다. 에어컨 가동을 알리는 파란 불빛, 스위치가 켜져 주황빛을 내는 멀티탭, 으로 투과된 빛이 벽면에 만들어내는 창문 문양 등등. 아기는 이들을 향해 힘차게 손을 젓고 배를 밀며 나아가 고개를 꼿꼿이 들어 쳐다본다. 무엇이 즐거운지 침대 가드를 탁탁 두드리고, '마마마' 옹알이를 하기도 하고, 블라인드 손잡이를 잘강잘강 흔들기도 한다. 그러다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본다.


    '엄마, 여기 있네.'


    어둠이 내려 까매진 두 눈에 기쁨이 보인다. 엄마가 그리 좋을까. 아이는 나를 향해 맹렬히 기어와 겨드랑이나 다리에 얼굴을 비비고, 팔을 베개 삼아 눕고, 몸통을 넘나 들기도 하며 주위를 맴돈다. 살살 아이를 빼내 다른 쪽으로 도망을 가지만 금세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바라본다.  


    '엄마, 여기로 가있네.'


    엄마를 만지고 싶어 하는 손에 꼬집히기도 하고, 올라탈 때 힘이 좋아져 아프기도 하다. 누워있는 것 외에 다른 일은 할 수 없어 심심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마치 동화 속에 있는 것 같은 이 순간이 싫지 않다. 어둠으로 가득 찬 바다에서 서로 엉기고 풀리기를 반복하며 헤엄치는 엄마와 아기 고래. 해저까지 다다르는 빛줄기를 함께 감상하며, 때로는 바다 표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고요하게 떠다닌다. 아기 고래에게 엄마는 커다란 세계이다. 아기 고래를 뒤덮는 엄마 고래의 그림자 속에서 아기 고래는 새근새근 잠이 든다. 어두컴컴한 방을 바다에, 나와 아기를 고래에 대입하며 상상하니 아이와 나의 밤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https://pixabay.com/photos/landscape-sea-whales-sky-moon-5200752/


    아이의 움직임에 힘이 없어지고, 자꾸 고개를 비비면 이제 잠에 들 시간. 잠들면 살며시 내게 얹힌 팔을 빼고 나온다. 남편이 '수고했어' 하는 말에 나는 '응응 오래 걸렸네.' 답하지만 나만 느끼는 좋은 기분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반짝거리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느낌이 좋아 자꾸 떠올려보지만 좋았던 감정은 점차 희미해지고 사진만 남아버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이를 재우는 저녁도, 나를 반기는 아이의 표정과 손짓도, 그때의 뭉클한 마음도 서서히 기억에서 옅어져 가겠지. 그리 생각하니 너무도 애틋하다. 사진조차 남길 수 없는 순간이기에 글을 쓴다. 조금 더 오래, 생생히 지금을 기억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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