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네마틱 드라마 <SF8-만신> 리뷰
애초에 나는 모든 종교는 지혜는커녕 최소한의 합리성과도 병행할 수 없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던 중 악재가 계속해서 겹치는 인생이 열리자 나의 신념에도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그저 액땜을 크게 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 역시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팔자 탓이라 여기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쓸데없는 자존심에 종교는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며 나름의 근거를 다량 보유한 사주가 합리적인 대안이라 여겼다. 절박한 마음을 안고 찾아간 사주카페에선 들삼재가 들어도 거하게 들었다며 가로로 흔드는 고개 짓만 반복될 뿐이었다.
내 생년월일시를 듣고 한자 8글자를 흰 종이에 휘휘 갈겨쓴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이번엔 잘 될 수가 없겠다.” 한숨이 푹 나왔다. ‘차가운 계절에, 차가운 날에, 차가운 나무로 태어났는데 자기 몫의 장작과 불씨를 가지고 태어난 팔자’라고 하셨다.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지금은 주변에 차가운 물이 들이치는 운이라 뭘 해도 힘들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날 만큼 귀에 꽂혔다. 정확했다. 혹여 내 인생 전체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며 살겠다는데, 운이 안 좋다니! 세상에 대한 갖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만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따져 묻고 싶기도 했다. 그때 사장님께서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괜찮아. 1년만 지나면 조금 괜찮아질 거야.” 그 순간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SF8-만신>을 틀자마자 빠져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만신>의 시작은 ‘운명은 우리를 인도하고 때로는 조롱하기도 한다.’는 내레이션이었다. 근 미래 시대가 배경인 <만신>은 미래를 예언하는 운세 서비스 어플로 빅데이터를 이용해 무려 적중률이 99%에 달하며 사람들은 이러한 어플 ‘만신‘에게 위로받으며 의존해 살아간다. 뒤이어 ‘만신’은 운명을 조롱하지 않고 오직 운명으로 인도하는 어플임을 알린다. 나 역시 악재라는 운명에 조롱당해 사주의 풀이로 운명의 인도를 받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나에겐 사주가 ‘만신’이었고 그들에겐 ‘만신’이 사주였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가람(이동휘)은 어플 ‘만신’에게서 절대적인 도움을 받게 된 이후로 ‘만신’을 맹신하게 된다. 과거 우울한 날들에 자살 시도를 했지만 어플 ‘만신’의 말씀에 따라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 계기가 되어 ‘만신’을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그저 우연이라 할지 모르지만 만신창이였을 가람을 벼랑 끝에서 유일하게 지켜준 ‘만신’이 그의 전부가 되는 것도 마냥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내가 힘들 때 사주 풀이로부터 얻었던 작은 위로가 죽음의 직전까지 갔던 가람에겐 훨씬 큰 삶의 원동력으로 자리 잡은 거겠지. 인생이 ‘만신’창이었을 이들에게 건네진 운세 어플 ‘만신’이 절대 작지 않았음을 안다.
나아가 <SF8-만신>에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사주에 재미를 붙였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정확히 둘로 나뉘었다. 함께 흥미를 붙여주는 이와 비난하는 이. ‘만신‘을 비난하는 토선호(이연희)와 '만신'을 모시는 정가람(이동휘)이 그 두 집단을 대표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 주변에는 토선호와 같은 인물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절대적 다수에 밀려 자연스럽게 사주를 믿는 나는 이성적이지 못한 부류로, 사주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성적인 부류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극 중에서는 평범한 이름의 정가람은 ‘만신’을 과신하고 있는 일반 대중을 대변했고 현재는 존재하지도 않는 희귀 성 ‘토’씨, 토선호는 ‘만신’을 믿지 않는 몇 안 되는 극소수의 인물을 대변했다. <SF8-만신>에 설정된 이러한 아이러니는 나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근 미래의 사람들은 현재보다 앞선 과학의 발달로 완전하게 이성적일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만신’을 믿으며 오히려 감성적인 것이 이성적이게 되어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정가람이 절대적 다수라니. 씽크홀이 빈번해지고 알 수 없는 악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그들을 점령한 불안한 기운들이 근미래를 '만신'국(國)으로 만들어 버린 걸까. 나는 현재의 시선으로는 한심해 보일지 모르는 ‘만신’ 광신도 정가람과 다수의 평범한 근미래 사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사주도 대단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 사주의 8자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태어난 연도, 달, 날 시간에 정해진 글자들이 종이에 올라가고, 그 글자들이 서로 어떻게 합쳐지고 부딪히는지, 그 복잡한 역학 관계를 보다 보면 ‘잘 사는 거 참 힘들구나’ 싶기도 하다. ‘만신’도 그렇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고는 하나 어떻게 빅데이터가 쌓이고 그 데이터 하나하나의 정확도가 몇 퍼센트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저 하루의 운세 예언이 나와 맞았던 것 같아서, 것도 아니면 내가 아닌 타인을 우연히 구해주었기 때문에 신뢰를 받는다.
아마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운명에 안전을 바라던 '만신'을 향한 맹목적 믿음 역시, 어쩌면 악재들을 견뎌내기 위한 나름의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정가람을 포함한 근 미래의 사람들도, 나도 힘이 들 때, 기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별 걱정 없는 사람인데 큰일은 못해내는 사람도 있고, 사사건건 힘들다가 결국엔 빛을 보는 사람도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그 새옹의 마가 어디로 향하는지, 언제 향하는지 걱정되는 게 인간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힘들고 ‘만신’, ‘사주’, ‘종교’는 그들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니 누군가 힘들다 하면 그냥 ‘힘들구나’로 받아들이면 된다. 특정한 잣대를 가지고 핑계라느니, 나약한 사람이라느니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은 지금 그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구나, 이렇게 힘든 삶도 있구나 하고 이해해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