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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 Knowledge Apr 17. 2023

Take Knowledge 제작기 #7

UUID


- 마침내


오랜만에 Take Knowledge 제작기를 쓰려니, 그것도 싱글로 정식 발매된 음원을 소재로 쓰려니 감회가 새롭다. 그렇다. UUID 인트로에서 말한 것처럼 랩을 처음 했을 때부터 10년도 더 지나서 드디어 나의 첫 싱글이 나왔다. 마침내 데뷔에 성공한 것이다.


- 데뷔


Take Knowledge 제작기 #6를 올린 게 2016년이더라. 그때부터 지금 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매우 축약해 결론만 말하자면 그간 이것저것 해보다가 개발 공부에 매진하여 개발자로 전직해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내 20대를 괴롭힌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러자 다시 미뤄둔 꿈에 마음이 갔다. 물론 마음이 간다고 해서 바로 움직인 건 아니고, 싱글 발매를 하기까지는 두 가지 동력이 더해졌는데


하나는 '월간 윤종신'이다. 어쩌다 윤종신의 '나이'란 곡을 인상 깊게 들은 것을 계기로 2010년부터 매달 발매된 월간 윤종신을 시간순으로 정주행 했는데 따로 들으면 싱글일 뿐인 곡들을 쌓인 시간 순으로 쭉 들으니 이 사람이 이때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었으며 그 방향이 어디로 나아갔는지가 느껴지는 게 이 연재 시리즈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힙합의 매력은 앨범에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나도 죽기 전에 죽이는 힙합 앨범 하나는 만들어야지' 하는 나는, 작품 발매를 생각하면 앨범에 먼저 마음이 가고 앨범이라는 단위가 주는 중압감에 눌려 결국 구상만 하다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는데 그때 그때의 내 생각과 감정을 작품으로 남겨놓으면 그 자취가 나중엔 하나의 작품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 마침내 결과물까지 만들어 내놓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친한 개발자 형과의 지난 연말 술자리였는데, 나보다 훨씬 능력 있고, 바쁘고, 돈도 잘 버는 그 형이 얼마 전에 일반인 뮤지컬 극단 작품에 섰다고 했다. 평소 이 형이 노래에 취미가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형 갑자기 왠 뮤지컬이에요?' 했는데  '그냥 하고 싶으니까 퇴근하고 조금씩 시간 내서 준비해서 올렸지'라고 쿨하게 대답하는 걸 보고 나도 좀 더 밀도 있게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출근 버스에서 그냥 자면서 가는 것 대신 예전에 사두었던 비트를 들으며 머리로 가사 쓰기를 시작했고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그걸 조금씩 메모해 가며 쌓아서 이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 UUID


이 곡의 제목인 UUID는 Universally Unique IDentifier의 약어로 중복될 확률이 0에 가까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유일성을 보장하는 ID를 의미한다. 첫 싱글인 만큼 그에 걸맞는 주제를 고민했는데, 랩을 한창 하던 당시의 내가 직업으로서의 래퍼를 포기하는데 일조한, 내 콤플렉스였던 톤과 발음이 어느 순간 나름의 매력을 가진 것으로 다가왔던 경험과 좋은 가사를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해방되었던 경험을 우리는 모두 나름의 유니크함을 가진 특별한 존재다라는 주제로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 방향을 택했다. 거기에 개발 용어인 UUID라는 개념을 빌려다 제목으로 지으면 개발자라는 지금 나의 신분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실제로 그 부분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도 계셨고, 꽤 오래 연락이 끊겼던 아는 형도 '내가 최근에 논문 준비 중이었고, 더 완벽하게 쓰고 싶다는 강박 때문에 힘들었는데 니 가사가 위로가 되었다'라고 연락이 온 걸 보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만족스럽다.


- 녹음


이 곡의 녹음은 오래 알고 지낸 동생이자 동료인 동준이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첫 싱글인 만큼 스튜디오를 빌려서 진행할까 했는데, 그런 곳에선 아무래도 긴장해서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을 것을 잘 알기에 하던 대로 동준이와 함께 했는데 최고의 선택이었다. 익숙한, 편한 분위기도 그렇고 음악 장인이 되어가는 동준이의 향상된 믹싱 실력도 작업을 수월하게 했다. 특히 인트로와 아웃트로, 훅을 녹음할 때 원하는 느낌이 나질 않자 스튜디오 앞 편의점에서 소주와 맥주를 사서 소맥을 몇 잔 말아먹은 뒤 다시 녹음하는 등의 선택은 동준이 작업실이 아니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본인 앨범 작업 중이라 바쁜 와중에도 너무 완벽하게 잘 도와준 동준이에게 감사, 또 감사! 이제는 장인의 경지에 오른 본인의 출중한 능력을 알릴 수 있는 멋진 작품 잘 완성해서 얼른 세상에 보여주기만 기다린다!


- Artwork


Artwork도 역시 오래 알고 지낸 동창이자 동료인 So Richer 작가의 도움을 받았다. 코드를 활용하고 싶단 마음만 있었지 그걸 어떻게 보여줘야 할 지에 대한 구상은 하나도 없던, 미적 감각 제로인 내가 코드만 보내줬는데 그걸 재료로 커버를 너무 예쁘게 뽑아줬다. 처음 보내준 코드는 자바스크립트로 작성했는데 실제 스트리밍 사이트에선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고 여러 의견을 줘서 더 짧게 작성할 수 있는 파이썬 코드로 변경해 보내줬더니 확실히 전보다 좋아졌다. 삶으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선물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게 값진 것인지'를 체크하던 부분이 더는 작동하지 않도록 주석 처리한 것이 이 커버에 적힌 코드의 내용인데, 이 부분에 대한 피드백은 아직 받은 적이 없는 게 아쉽지만 개인적으로는 코딩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품 (ㅋㅋㅋ)이라 생각해 매우 만족한다. 역시 본인 작품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 소작가님께도 감사 또 감사! 대상 받을 수 있을 거야. 난 항상 널 믿어.


- 아무튼


이 정도면 제작 과정에서 기록으로 남길 부분은 다 적은 것 같으니, 이제 노래를 들으러 갈 시간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저의 첫 싱글을 즐겨주세요!


노래 들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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