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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Jul 05. 2019

날것의 미학

해리빅버튼과 박원

날것 : 말리거나 익히거나 가공하지 아니한 먹을거리. (출처 : 네이버 사전)



핑크 플로이드의 명곡 Another Brick in the Wall을 편곡한 해리빅버튼(HarryBigButton)의 무대는 신선하게 충격적이었다. 신선하다는 표현이 적절한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런 편곡 스타일의 하드한 록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들려왔고, 곡 역시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아주 새롭게 느낄만한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하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원곡의 웅장하고 비장함을 기타(+보컬), 드럼, 베이스 이 세 개의 악기로만 구사하는데 사운드가 꽉 들어찼으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다른 어느 밴드에서도 못 들어봤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MTR도 안 튼 것 같은데 말이다.


소리를 정말 잘 꾸며서 날것의 느낌이 났다. 이상했다. 날것이라면 꾸밈이 없어야 하는데 잘 꾸며서 날 것 같다니. 해리빅버튼의 리더 이성수(기타, 보컬)는 밴드 크래쉬를 그만둔 이후 몸이 아파졌다고 한다. 그래서 15년만에 음악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의 지향점을 찾아 음악을 다시 시작한 그의 본래 모습이 고스란히 사운드로 담겨 있다.


2집의 'Man of Spirit' 은 해리빅버튼이 추구하는 방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느릿하면서도 묵직하게 울리는 기타 리프는 사람 이성수 그 자체 같다. Control, Fxxx You Very Much, Angry Face 같이 달리는 곡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Man of Spirit, Desire 에서처럼 묵직하게 단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듯한 처절한 사운드는 아주 압권이다.


올해 발표된 곡 Wild East Blues를 듣고도 정말 놀랐었다. 덤덤하고 나직이 부르는 보컬과 추운 겨울의 러시아 시베리아 황야가 겹쳐지는 풍경이 '빡센 메탈' 이 아니어도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까지 느꼈다고 하면 너무 오버스러울까. 요즘 러시아 밴드와 아주 활발한 교류를 하던데 메탈이 사랑받는 러시아에서 훨훨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이상하게 이 '빡센 메탈'에서 느꼈던 날것을 박원이라는 보컬리스트에게서 다시 한번 느꼈다. 장르가 극과 극이고 전혀 접점이 없는 두 아티스트 사이에서 표출되는 매개체만 다를 뿐, 해리빅버튼에게선 사운드의 날것을 박원에게선 한 인간의 나체를 본 것 같았다.


보컬리스트 박원은 이전 팀 원모어찬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본인의 치부까지 모두 가사에 그대로 드러낸다. 단어를 꾸미거나 무언가에 비유하지도 않고 돌려 말하지도 않는다. 가사를 해석할 필요도 없이 곧이곧대로 꽂히는데 매우 직설적이고 시원하기까지 하다. All of my life 에선 '네 얘기가 맞아' 하며 대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나'에선 '나는 내일도 변하지 않겠지'라고 하며 본인을 한계를 대놓고 곱씹는다. 그의 가사들을 보며 웬만한 빡센 곡에서도 찾기 힘들었던 직설화법이 두드러진다.


보컬리스트라는 아티스트의 가창력은 언제나 도마 위에 오른다. 곡과 완벽히 어울린다면 가창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히 박원의 노래는 단순히 가창력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참 무의미해 보인다. 내뱉는 소리 하나하나가 꼭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의 중얼거림 같다. 그렇다고 가창력이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노래를 너무 잘하다 못해 그것이 의미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지금까지 발매한 개인 앨범에서 소위 건너뛰는 트랙이 단 하나도 없는 것도 아주 아주 놀랍다. 무엇보다 곡을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잘 쓰고 편곡까지 아주 아주 아주 완벽하다. 그래서 향후에 나올 그의 곡은 기대를 넘어서서 '이번엔 박원이라는 저 인간의 어떤 면을 보여주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어쩌면 처절하게 작업하여 일구어냈을 그들의 음악에서 날것의 미학이라는 교집합을 보았다. 사운드의 날것. 목소리의 날것. 역시 소리로 전달되는 그 황홀함은 정말 위대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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