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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발바닥 Jul 07. 2022

2. 14살 노견, 하루아침에 걷지 못하게 되다

14살 닥스훈트의 투병일지

건강했던 11살 탁구의 장난스러운 모습.


한 달 전, 3월 중순의 일이었다. 산책을 너무 많이 한 것이 화근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1시간 넘게 공원을 산책했으니 관절에 무리가 갈법했다. 어느 날 탁구가 뒷다리 한쪽을 절기 시작했다. 14년 동안 잔병치레만 해왔으니 그저 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호전되는 것 같았던 상태는 금세 악화됐다.      


“정확한 건 MRI와 CT를 촬영해봐야 알겠지만, 척추와 경추 디스크가 의심되네요.”    


서둘러 찾아간 집 앞 동물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척추 디스크는 가장 두려워했던 질병 중 하나였다. 허리가 긴 닥스훈트가 유독 취약한 퇴행성 질환으로, 척추 뼈와 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 물질이 이탈하면서 신경을 압박한다. 최악의 경우 뒷다리로 이어지는 신경전달이 끊겨 하반신 마비로 이어질 수 있었다.     

 

탁구는 전형적인 척추 디스크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허리가 구부러져 있었고, 뒷다리를 절다 몸의 중심을 잃고 풀썩 쓰러지길 반복했다. 집의 가장 외진 곳에 숨어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기도 했다. 아파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안아주려고 하면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극심한 통증 때문이었다.      


확진을 위해선 MRI를 촬영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장시간의 수면마취는 노견에게 부담이 될 수 있었다. 간혹 수면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노견들도 있다고 했다. 수의사는 “약물 치료를 하며 경과를 지켜보거나, 바로 MRI를 촬영한 후 수술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무리한 수술은 피하고 싶었다. 완치 가능성이 높지 않은 수술에 탁구의 말년을 걸고 싶지 않았다. 고통 없이 편하게 살다가게 하고 싶었다. 만에 하나 응급 상황이 오면 그때 수술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땐 틀림없이 척추 디스크라고 믿었다.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조차 몰랐다.      


하반신을 일으키지 못해 계속 쓰러지는 탁구의 모습.


반려견의 시간은 사람보다 3배, 혹은 4배 빠르게 흐른다고 한다. 반려견의 1년은 사람의 7년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진위를 가리지 않아도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10대, 20대의 격동기를 함께했던 유년시절의 친구는 홀로 시간을 추월해 노견이 돼있었다. 이제야 인생을 조금 알 것 같은데, 오래된 친구는 벌써부터 무지개 다리를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살의 나는 미성숙했다. ‘그땐 다 그렇다’고 하지만 사춘기가 아니었다. 30대가 된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가 인생의 바닥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찾아온 발목 통증으로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고통이 심해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도 잠에 들지 못했다. 집 앞 정형외과에 찾아가니 “성장통”이라고 했다. 오진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대학병원 정형외과에서 “뼈에 종양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악성 종양은 아니었지만 수술 후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치료에 전념했다. 불치병도, 희귀병도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몸의 감옥에 갇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완치 후엔 학업을 따라가는 것이 어려웠다. 마침 아버지가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 받으면서 함께 러시아로 출국했다. 그땐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더 깊은 동굴 속으로 고립시키는 계기가 됐다. 몸이 낫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 정신을 좀먹는 부정적인 생각들만 믿었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불신했다. 바닥을 뚫으니 지하가 나왔고, 그 지하엔 바닥이 없었다.      


탁구의 어린시절. 생후 2개월이었던 탁구를 집으로 데려온 직후 찍은 사진.


그때 집에 덜컥 데려온 것이 탁구였다. “강아지는 절대 안된다”며 줄곧 반대하던 부모님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2008년의 어느 선선한 날,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시장에서 한 강아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한번 만져만 보겠다”며 종이 박스에서 강아지를 안아 들었는데, 축 처진 올망졸망한 동공에서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2개월 된 작은 강아지는 나의 평생 친구가 됐다.    

  

이 천방지축 친구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파부터 벽지, 원목 가구까지 다 씹어 먹었다. 짖는 소리도 어찌나 우렁찬지, 목소리만 들은 사람들은 집에 대형견이 사는 줄 알았다. 탁구는 활기차고, 튼튼하며 강아지로 자랐다. 영악한 구석도 있었지만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었다. 강아지에게도 충분한 교육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외면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탁구의 존재는 집 안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빈 곳이 없이 자신의 존재감으로 집을 꽉 채웠다. 동그란 눈은 알사탕처럼 발칙했고, 검은 털은 비단처럼 윤기가 흘렀다. 짧은 다리는 길고 굵은 통나무 허리를 견고하게 지탱했다. 꼭 땅에 붙어서 다니는 소시지 같았지만, 방전되지 않는 로켓처럼 집안 곳곳을 쏘아 다녔다. 그만큼 자기주장도, 고집도 셌지만 겁도 정도 많은 강아지였다.      


5년, 10년….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온갖 사건들로 인생의 진흙 구덩이에서 발버둥 치는 동안 탁구는 줄곧 함께했다. 그 사이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함께 비행기를 탔고, 지구 반대편에 정착했다. 한국에서도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함께 7번을 이사했다. 겨울의 나라에서 온 강아지였지만, 겨울만 빼고 다 좋아했다. 선선한 봄을 가장 기다렸다.      


봄과 가을을 가장 좋아했던 탁구의 모습.


곧 4월이었다. 기다렸던 봄이 왔지만 탁구는 예전처럼 산책을 하며 꽃냄새를 맡지 못하게 됐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상태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악화됐다. 처음엔 뒷다리 한쪽을 절더니, 이내 앞다리 한쪽도 아픈지 굽히고 다니기 시작했다. 곧고 반듯하던 척추는 무력으로 꺾은 철사처럼 기형적으로 구부러졌다. 몸의 균형이 무너진 것 같았다.  

   

하루아침에 주저앉은 탁구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기어코 걷겠다고 성하지 않은 몸을 일으키고 넘어지길 반복했다. “제발 좀 쉬라”고 말리면 고집을 부리며 성을 냈다. 침실에서 거실로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어했지만, 꾸역꾸역 베란다까지 가서 대소변을 가렸다. 툭, 툭…. 베란다 문턱에 부딪혀 몸이 고꾸라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마음의 모서리가 쓸려나갔다.     


그렇게 평범했던 일상은 서서히 멀어졌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됐다.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던 탁구의 활동 반경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집 산책로에서 집 안으로, 집 안에서 거실 주변으로, 거실 주변에서 침실로, 침실에서 방석 위로…. 마치 공간이 수축하는 것처럼 자유의 반경이 좁아졌다.      


한 번도 무기력했던 적 없던 탁구가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다. 봄바람조차 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반려동물 전용 유모차를 주문하기로 했다. 리뷰를 확인하던 중 ‘강아지의 마지막을 함께했어요’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엔 탁구와 같은 종인 닥스훈트가 유모차를 타고 있었다.      


‘유모차를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요. 죽기 하루 전날 하루 종일 유모차에 타고 내려오지 않더라고요. 폭 엎드려서 눈 데굴데굴 굴리면서 구경 잘하더라고요. 좋은 상품 판매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 강아지 좋아하는 거 마지막에 해준 것 같아 위로가 됩니다.’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 같았다. 그동안 반려견을 키우면서도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견주들을 보면 주책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섭리대로 땅을 밟으며 흙과 풀 냄새를 맡는 것이 강아지답다고 여겼다. 걷지 못하는 아픈 강아지가 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처음 유모차를 타본 탁구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탁구도 유모차를 사랑했다. 처음엔 어색해하며 목석처럼 굳더니, 곧 유모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폈다. 그러곤 수시로 고개를 돌려 유모차를 잘 밀고 있는지 확인했다. 눈을 마주치면 옅게 웃어 보였다.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에 살랑대는 꽃, 머릿결을 쓸어가는 바람. 봄이 “지금을 즐기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봄날을 기억 속에 붙들어두고 싶었다. 일 년 후 다시 돌아온 봄엔 탁구가 없을 것 같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랬다. 꽃은 다시 피겠지만 함께 보았던 꽃은 아닐 것 같았다. 한 순간도 놓치기 싫어 매일 탁구와 밖에 나갔다. 봄의 산책은 짧았다. 곧 움직이지 못하는 탁구처럼 유모차도 집 밖을 나오지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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