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일차
2017. 1. 2.
산을 타고 내려와 원없이 잠을 잤다. 눈을 뜨니 저녁이 되어 있었고 저녁상 겸 술상에서 술을 마셨다. 거기까진 기억나는데 또 필름이 끊겼다. 지난 밤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빈기억을 채워보았다.
7명이 둘러 앉아있던 상에 3명만 남았다. 나는 함께 한라산에 오른 형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으면서 맞장구도 신나게 쳤다고 한다. 중간중간 잔을 비워가며 대화는 쭈욱 이어졌고 시간이 되어 파하는 분위기가 되니 나는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까지 했다고 한다. 집에 있는 고무장갑이 내 손에는 꽉 껴서 설거지를 다 하고 나선 어쩔 수 없이 뒤집어 벗게 되는데 반대로 뒤집어 입으로 바람까지 후 불어서 온전하게 만들어놓고... 할 건 다 잘 해놓고... 텐트 안에서 들어가더니 죽어버렸다.
10월에 처음 끊겼을 때처럼 하루종일 앉아서 기억을 재생해봤지만 그냥 답답하기만 하다. 그때 ㅇㄷ형이 웃으면서 앞으로는 더 자주 그럴 거라고 그랬을때 아니라고 아닐거라고 장담했는데 진짜 그렇게 된 것 같아서 허무하다. 맛도 없는 알콜탓에 뇌를 재부팅하는 게 기분이 썩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 단호한 새해계획을 세워본다. 무알콜인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