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일차
2017. 1. 1.
우진해장국 앞에서 ㅅㅇㅈ의 스파크로 환승했다. 좁은 차 안에서 카운트다운을 외쳤고 손전화의 년월일이 동시에 바뀌는 순간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하면 새해느낌이 날 것 같았는데 딱히 그것도 아닌 것 같다고 ㅅㅇㅈ한테 동의를 구해본다.
나는 얘가 코트를 입고 왔길래 아 패딩은 뒷자석에 있던 짐보따리에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패딩 따위 없단다. 모자도, 장갑도, 아이젠도. 함께 산에 오르는 형들이 걱정을 하신다. 물론 체력 면에서 이 인간은 내 상상 이상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겨울 산행인데 준비한 게 없어도 너무 없다. 주위에서 하도 괜찮겠냐고 물어대니까 장갑이랑 아이젠은 성판악 입구에서 산다. 재잘거리면서 등산로의 1/3쯤을 넘어선다. ㅅㅇㅈ은 가볍게 돌을 몇 개 밟더니만 산위로 빠르게 사라진다. 쟤는 전생에 산짐승이었나보다.
하늘이 유난히 깨끗해 쏟아져내릴 것 같을 별로 가득차있다. 여태껏 '와 별 진짜 많다'라고 했던 말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산을 오르다보니까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별을 보면서 걷게 된다. 크으 진짜 별빛 산행이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김밥과 라면을 펼친다. 저 중 한 줄의 김밥엔 생와사비와 다진 고추를 잔뜩 들어가있는데 그걸 알고 있는 건 나와 형밖에 없다. 하나 둘 김밥을 집어드는 걸 보고 새해부터 액운을 선사할 생각에 우리 둘은 미소를 짓는다. 다들 한 입씩 김밥을 맛 본다. 내옆에서 김밥을 한 입 크게 베어물던 형이 조용히 김밥을 뱉는다. 새해는 좋은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
해가 뜨는 타이밍에 맞춰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진달래 대피소로 들어가 몸을 구기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나왔다. 발 밑의 돌만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묵묵히 걷다가 아 이젠 정상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봤다. 하나 둘 켜지는 새벽 불빛들 뒤로 하늘 색이 느릿느릿 바뀌고 있다. 해머리가 빼꼼 나오면서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우오오옷 탄성을 내뱉던 그 순간보다 새까맣던 하늘에 빛이 살짝 새어들어와 주위의 하늘을 파랗게 물들게 했던 그 순간이 더 좋았다. 아직 보이지도 않는 정상을 향해 관성적으로 발을 옮기면서도 슬쩍슬쩍 고개를 돌려가며 조용히 새해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더 기억난다.
하루만에 뚝딱 모든 게 새로워지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적어도 1월은 각자의 2017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2017이라는 낯선 숫자가 어느새 당연해질 때의 스스로가 어떤 1년을 보내고 있을지 궁금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