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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마미론

114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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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2.


손으로는 고구마 껍질을 까는데 집중하면서 눈으로는 라스를 보고있다. 그렇게 한참 낄낄대다보니 점심이 됐다.


열흘 정도 형이 게하를 비우는 동안 몇 달간 제주에서 지내러 오셨다는 ㄱㅈㅇ형이 오셨다. 점심으로 알리오올리오 해주셨는데 아 이게 원래 이런 맛이었구나 싶다. 면에 탄력이 살아있어서 입안에 넣으면 찰랑찰랑거린다. 그동안 나는 무얼 해먹은 것인가.


커피 한 잔을 들이키고 차귀도 방향으로 산책을 나왔다. 맑은 날은 아닌데 바람이 그렇게 세진 않아서 꽤 여럿의 사람들이 배낚시집 앞을 서성인다. 하늘 방향으로 사진기를 들이댈 때마다 사진 안으로 등장하시는 갈매기님들을 찍다가 벤치 앉아 멍하니 있는다. 바닷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사진기를 꼭 붙잡고 항구 앞을 벗어났다.


지난 번에 ㅇㅈㅎ이 왔을 때 이 길을 걷다가 봤던 정체모를 까만건물에 가까이 접근해봤다. 이곳이 고산리 신석기유적이 발굴된 장소라는 것 같은데 건물에는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은 걸 보니 아직 오픈을 안 한 것 같다. 한반도에서 찾기 힘들다는 신석기시대의 의미있는 유적지라면 건물부터 신석기시대의 상징인 빗살무니 토기처럼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달부로 공인인증서가 만료되어서 새로 발급을 받았다.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김에 후불교통카드 잔액을 조회해봤는데 어느새 바닥이다. 올라오는 알바가 없어서 일단 마미론에서 급하게 대출을 받았는데 당당하게 월이자 10%를 요구하신다. 경솔했던 것 같다. 후회스럽다.


운동에 다녀오니 오늘 오신다는 게스트 두 분이 게하에 들렀다가 식사를 하러 가셨다고 한다. 30분쯤 뒤에 잔뜩 취한 두 명이 들어왔다. 곱게 주무셨으면 좋겠는데 그럴 생각이 없어보이신다. ㄱㅈㅇ형 말대로 듣지도 않아도 될 말을 듬뿍듬뿍 듣고선 그냥 텐트로 들어왔다. 상태가 심각하신 여자 분은 여기저기 전화해 죽어버리겠다 그래도 괜찮냐는 문의사항을 접수한다. 정신이 들락날락하시는 것 같아 이어폰을 끼고 혼자만의 시간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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