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 25일(12만 4천 원)
7월 24일 - 25일(12만 4천 원)
알바공고는 원하는 바를 담백하게 밝혔다. '글쓰기를 잘 하시는 분 찾습니다'
무슨 알바일까 궁금해지기보단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제목이 무척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공고를 눌러본다. 직접 쓴 글을 요구하길래 잠시 머뭇대다가 결국 블로그 주소를 적어 지원서를 냈다. '글쓰기를 잘 하시는 분'이라는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지만 한 달이 넘도록 알바 하나 건지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애써 못 본척한다.
오늘의 하늘만 촘촘하게 붙여놓느라 아마 저품질에 걸린 듯한 이 블로그에서 어떤 글을 읽으셨는지는 몰라도 다행히 담당자분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공고와 다르게 알바기간은 3일에서 2일간으로 바뀌었지만 시급은 7,000원에서 7,800원으로 올랐다는 기쁜소식을 전해주신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셔서 마음이 좀 편해진다.
신분증과 출입카드를 교환하고 파티션으로 가득찬 사무실로 들어간다. 기업의 CSR을 담당하는 재단이었는데 다들 무척 바빠보인다. 정확하게 말해서 피곤해보인다. 대장으로 보이는 분께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빈 회의실로 안내됐다. 이 재단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보낸 지원서를 알아볼 수 있는 글로 정리해 홈페이지에 소개글을 올리는 게 내가 할 일이다. 받아든 지원서 중엔 논리가 전혀 없거나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 심심찮게 발견됐고, 세상에 있는 어렵고 멋진 말을 모아 덕지덕지 포장해놓느라 정작 알맹이는 없는 글도 많았다. 대체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를 찾느라 땀 좀 흘리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흐른다. 새로 글을 쓰라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린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이어지는 일은 담당자 분으로 빙의해 행사 후기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간단하게 행사 설명을 듣고난 뒤 관련 사진을 보면서 없는 기억을 만들어본다. 자판 위에 올려 놓은 손으로 허공을 몇 번 휘적거리다 거둬들였다. 한 글자도 못 쓰곤 눈만 비비다가 지금은 종이컵을 두 손으로 쥐고 물어뜯고 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을 쓴다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무지막지하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알바를 뽑았을 거고, 담당자분도 블로그에 글 쓰는 것처럼 가볍게 쓰면 된다고 얘기해주셨는데도 손끝을 움직이기가 조심스럽다.
겨드랑이로 열정을 뽑아내며 어찌저찌 문장을 만들어냈다. 사진 사이사이에 넣어서 그렇지 그냥 이어붙이면 일곱 줄도 안되는 짧은 양이다. 담당자님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쫄아있는데 특별한 확인 절차도 없이 그냥 업로드하라고 하신다. 그닥 중요한 일이 아닌데 쓸데없이 끙끙대며 시간만 잡아먹은 건가... 집에 오는 버스에서 습관적으로 블로그를 뒤적이는데 여태 글이라고 썼던 건 다 내 일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서 보고 듣는 동안 튀어나온 생각들을 정리하는 일기가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이자 유일한 글인 것 같다.
비록 밥 시간은 시급 포함이 안 됐고, 밥도 공짜가 아니었지만 여름 날 실내에서 시원하게 일할 수 있어서 꽤 만족한 알바였다. 일이 좀 늘어져서 셋째 날에도 출근을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출근을 못 했다. 아침에 세수하다 다리가 풀리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나더니 곧 눈 앞이 핑핑 돈다. 3년 만에 다시 이석증이 왔다. 큰 몸뚱이가 너무 쉽게 픽 쓰러지는 모습이 좀 우스워서 낄낄대며 하루종일 누워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