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 18일 (12만 1천 8백원)
6월 17일 - 18일 (12만 1천 8백원)
뷰티풀 민트 라이프 알바를 했던 곳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파산을 밥먹듯이 하는 요즘이라 페스티벌이라는 얘기까지만 듣고 당연히 한다고 했다. 그저 행복해하다가 알바가기 하루 전 날 장소를 물어봤는데 상암이란다. 아무리 가난해도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여의도를 기준 서쪽으로는 절대 알바를 가지 않겠다는 나의 신념이 무너졌다.
첫 날부터 지각의 향기가 난다. 당산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다 환승을 해야 하는데 빨간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죄송한 마음에 보이는 사람들한테 한 번씩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스마일 러브 위크엔드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1회 페스티벌이라는데 뷰민라보다는 규모가 조금 작았다. 그래서인지 흡연실은 따로 없었고, 텐트 안은 똥같은 담배연기로 채워진다. 도시락을 가지러 갈 때 빼곤 텐트에 다신 가지 않았다
하는 일은 아주 쉽고 단순했다. 페스티벌 무대를 둘러싼 펜스에는 '무슨 행사를 하나?' 궁금해진 동네 주민이 폴짝 넘어가기 딱 좋은 빈틈이 두 군데 있었는데 거기에 의자를 하나 두고 앉아서 3교대로 지키는 일이었다. 입장할 때 줄을 세우고 안내하는 일만 끝나면 마음을 맑게 비우고 나무그늘에 앉아있는 게 일의 전부라서 특별히 힘든 것도 재밌는 것도 없었다. 그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의자의 위치를 바꿔가며 빛고문을 피하면서 30분을 보냈다.
쉬는 시간에도 여전히 심심해서 그때마다 다른 걸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무 그늘에 누워서 흙바닥에서 개미들과 잠도 자고, 자전거 길 따라 산책도 하고, 공원 옆 야구장에 가서 사회인 야구도 보고, 무대 뒤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음악도 듣다보니 해가 저문다. 차가 없으면 찾아오기 힘든 난지한강공원에서 하는 행사라서 DMC행 셔틀버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깊은 잠을 자도 아직 상봉이다.
어제의 지각을 만회해보고자 부지런히 나왔더니 당산역에 너무 일찍 와버렸다. 버스타면 7분이면 가는 거린데 한 시간 먼저 가서 뭘 하고 있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며 버스를 탔는데 얼마 가지 않아 경찰이 앞길을 가로 막는다. 룸미러에 비친 기사님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버스는 기껏 건넌 다리를 반대로 다시 건너더니 일산이라고 써있는 녹색 표지판을 스쳐간다. 버스를 처음으로 혼자 타던 99년, 그 때만큼 심장이 빨리 뛴다. 어리둥절한 발걸음으로 기사님께 비틀비틀 걸어가는데 어제 맡았던 지각의 향기가 다시 나는 듯 하다.
오늘 오전에 <자전거 대행진>이라는 행사덕분에 도로통제가 되었단다. 버스 기사님도 아까 경찰한테 들어서 도로통제 사실을 처음 알게 되셨다니까 할 말도 없어진다. 세 시간 일찍 나와도 지각꼴을 면하기 힘들 게 됐다는 충격적인 현실에 눈물 나오려 한다. 이번 알바를 통해 나의 알바 신념도 잃었고 고용주의 신뢰도 잃은 것 같다. 일산 방향으로 가다가 떨궈줄테니 길 건너서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신다.
1회 페스티벌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많지 않은 사람이 이틀간 무척이나 꾸준하게 계속 들어와서 티켓팅이나 입장안내하는 분들은 꽤나 힘들었을 것 같다. 어제보다 날씨가 뜨거운 것 같다. 계속되는 빛고문을 피하려고 의자와 계속 옮겨다녔음에도 반바지 자국이 그대로 남을 정도로 다리가 시뻘겋게 탔다. 10분 전까지 꽤나 차가웠지만 미지근해진 물을 삼키면서 졸음을 참고 있는데 자전거를 끌고 공원에 오신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신다.
"이봐 이거 돈 내야 들어갈 수 있는 공연이야?"
"예"
"왜!"
"...네?"
공연 사운드보다 파워넘치는 공원 안내방송(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오늘 거울 분수 운영 안한다고 뭐 그런 거였는데 이 멘트 듣느라 돈주고 공연 보러 온 사람들은 좀 빡쳤을 거 같다.)이 뚝 끊기자 <수고했어 오늘도>의 전주가 흐른다. 퇴근 12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