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 4일 (30만원)
6월 1일 - 4일 (30만원)
망할 놈의 학과 사무실한테 뒷통수를 맞은 날, 스물 두 번째 졸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빨간버스 안에서 축처진 목소리로 전화를 한 통을 받았다. ㅁㄹ이는 회사 전 동료가 이직한 여행 정보 어플 회사에서 홍콩으로 3박 4일 영상소스를 찍으러 갈 사람을 찾고 있는데 나를 추천해줘도 괜찮냐고 물었다. (사실 이건 나중에 통화해서 알아먹었던 얘기고) 당시엔 버스 안도 내 마음 안도 매우 시끄러운 상태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넙죽 알바자리를 받았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홍콩에 무조건 가야만할 것 같다. 예전같지 않은 알바 사냥 솜씨 탓인지 벌이가 전혀 상태인데다 요새 전시를 한답시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느라 빚은 늘어나고만 있다. 제시된 경비는 총 120만원이었는데(그 중 촬영 알바비는 30만원) 홍콩에 다녀온 형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30만원보다 훨씬 더 남겨올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학과의 만행으로 몸 속 깊은 내장부터 코 밑의 수염까지 분노가 묻어나오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탐라파라다이스행 비행기 값을 들여다보고 있는 요즘의 나에게 꼭 필요한 기회인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영상 편집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니깐 테마에 맞는 영상만 부지런히 찍어오면 된다고 하신다. 부담 갖지 말라는 의도로 말씀하신 걸 아는데도 없던 부담감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참고하라고 하는 영상을 보니 마음은 더 불안해진다. 블로그 언니들의 조언대로 3박 4일 홍콩일정을 채워본다. 난 집 밖에서 자는 걸 미역만큼이나 싫어해서 여행도 잘 안가는데다 여행 계획은 짜본 적도 역시 없어서 다들 간다는 무난한 코스를 복사해 붙여넣었다. 여행계획을 짤 때부터 설렘이 시작된다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나는 비행기도 타기 전에 피곤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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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돈 좀 아껴 보겠다고 빌어드실 아침 비행기를 예약했고, 공항버스에 몸뚱이를 실어 어찌저찌 비행기는 탔다. 생각해보니 혼자서는 처음 가는 해외 여행이다. 아 그래도 첫 나혼자 해외여행인데 좀 설레야 하나 라고 잠시 생각했다가 해외 알바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고 하늘을 보고 있다. 비행기가 안정적인 성층권에 도달하면 몽실몽실한 구름이 깔린 아랫하늘과 색만 파란색이지 뭔가 우주같아 보이는 윗하늘로 하늘이 분리된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좀 설렌다. 하지만 창문을 닫아도 그대로 전해지는 태양열 때문에 금세 팔이 뜨거워진다. 아무래도 괜히 창가자리에 탄 것 같다.
공항으로 나와 시간을 보는데 원래 도착시간 보다 1시간 늦게왔다. 어떻게 한 시간씩이나 늦게 도착할 수가 있는지 화가 났지만 홍콩이 조선보다 한 시간 빠르다는 사실을 깨닫곤 마음을 진정시켰다. 홍콩섬으로 가는 2층버스에 몸을 얹어 놓으니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특별한 목적이 없는 온전한 내 여행이면 길을 잃어도, 멍하게 시간을 써버려도 그저 해맑을텐데, 아무리 내 마음을 속여봐도 결국 할 일을 하러 왔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마음이 무겁다.
먹고 싶은 베이컨토마토디럭스를 포기하고 먹어줘야 하는 완당면과 하가우로 첫 식사를 한다. 영어를 더듬더듬 내뱉은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 답답해서 그냥 손가락을 이용해서 주문을 했다. 뜨끈한 기운이 올라오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주섬주섬 동영상을 찍는다.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하고 왼손으로 오스모를 들고 있는데 무진장 흔들려서 몇차례 다시 찍었다. 그래도 맘에 들지 않아서 짜증이 난다. 뭔가 덜 익은 듯한 꼬들꼬들한 완당면이 생각보다 맛있었지만 다 먹고 나니 김치가 먹고 싶다.
침사추이로 넘어가기 위해 페리터미널로 걸어가고 있다. 구글맵만 켜고도 다들 잘 찾아간다는데 나는 세 번이나 길을 물어물어 간신히 찾아갔다. 와서 한 거라곤 짐 놓고 밥 먹은 것밖에 없는데 벌써 집에 가고 싶어진다. 날씨라도 좋으면 아이고 홍콩의 하늘이라도 건졌구나 할 텐데 여전히 하늘은 심기가 불편해보인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할 때까지 이쪽에 있어야해서 골목과 쇼핑몰을 오가며 부지런히 영상을 찍는다. 골목은 덥고 쇼핑몰은 사람이 많아서 피로감이 몰려온다. 조선땅에도 여름은 올텐데 나는 왜 홍콩까지 와서 여름을 마중나와있나 라는 생각을 구룡공원 구석에 앉아 끈쩍한 세븐업 한 병을 들이키면서 해봤다. 돌이켜보니 이 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세븐업을 마실 때인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할 때쯤 시계탑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하늘을 빽빽히 채운 구름덕분에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똥망인듯한데 벌써부터 모여든 사람들은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밝은 얼굴을 하고 셀카를 찍는다. 셀카를 찍는다고 나도 덩달아 여행온 느낌이 들 것 같지는 않아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느릿느릿한 노래를 들었다. 눈에 보이는 속도는 여전해도 귀에 들리는 속도는 늦춰져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나름 신기하고 재밌었다. 원래 하늘 높이 쭈욱 뻗어나가야하는 레이저가 구름으로 싹 지워지긴 했지만 이거 하나로 이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도 신기하고, 건물들이 자체발광하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것도 귀여웠다.
대중교통 영상을 찍어야해서 MTR도 타야 하는데 축축한 몸뚱이가 좀 앉아있길 원하는 것 같아 페리를 타고 숙소가 있는 홍콩섬으로 돌아왔다. 9인실 게하의 공기는 온종일 에어컨이 켜놓아서 그런지 무척 쾌적하다. 사람이 몰리기 전에 빠르게 샤워를 하고 누웠다. 조금이라도 더 맑은 날에 피크트램을 타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머릿속으로 고민을 계속하다가 그냥 내일 마카오에 가기로 결정하고 눈을 감았다. 별 일정이 없었던 오늘도 길을 헤매는 내 꼴이 갑자기 떠올라서 다시 눈을 떴다. 아무래도 마카오에 가는 것까진 계획을 세워 놓는 게 낫겠다 싶다. 옆 침대 친구가 자꾸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는 것 빼곤 평화로운 밤이다.
[2일차]
마카오로 가는 페리도 따로 예약을 안해놓아서 적당히 일찍 숙소를 나섰다. 일기예보는 4일 내내 비오는 걸로 되어 있어서 아주 망했구나 싶었는데 오늘 마카오는 맑음이란다. 터미널이 있는 셩완에서 아침을 먹는다. 죽같은 콘지보다 씹으면 씹을수록 기름을 쭉쭉 뽑아내는 빵(?)맛에 감동하며 번질번질해진 입술을 핥으면서 가게를 나왔다.
처음엔 알바를 해외로 보내주면 그저 땡큐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에 맞춰 어딜 가야 하고, 무엇을 봐야 하는 게 나한테는 은근히 스트레스인 것 같다. 굳이 여행으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지금껏 살면서 계획이랑 친하게 지낸 적이 별로 없어서인지 해야 하는 일을 계획적으로 촥촥 해내는 걸 유난히 어려워하는 것 같다.
마카오 페리 터미널에서 아무 호텔 셔틀버스나 하나 잡아타고 중심가로 간다. 호텔 앞에 세워주는 게 아니라 카지노 안에 떨궈줬는데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계속 카지노만 나온다. 정장 입은 아저씨한테 아이 원투 고 아웃사이드 베이베라고 간절하게 부탁하니까 날 호텔 밖으로 쫒아내주셨다. 관광객이 바글바글 모이는 세나도 광장을 중심으로 골목골목을 걸어다니기만 해도 훅 느껴지는 이국적인 광경에 눈이 바빠진다. 길가다 쥐어준 육포를 씹으면서 누가 정한지는 모르겠지만 '마카오에 오면 꼭 가야한다는 곳'들을 부지런하게 걸어다녔다.
베네시안 호텔에 가서 에그타르트만 먹으면 네이버 블로거가 알려주는 당일치기 마카오 여행이 끝이 나는데 날씨가 좋으니까 뭔가 배경을 바꿔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잠시 고민하다가 사람들로 꽉 들어찬 콜로안 빌리지행 버스를 탔다. 귀에 잔뜩 힘을 주고 안내방송을 기다렸는데 창문 밖 배경에 풀숲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서 황급히 내렸다. 건너편 정류장에 앉아있는 아주머니께 길을 물었더니 지나왔다고 저기 언덕 아래로 걸어가란다.
1시간 정도면 구석구석 다 볼 수 있는 콜로안 빌리지를 천천히 세 바퀴 돌면서 짠바람을 맞았다. 이런 날씨에 마음껏 걸어도 좋을 만큼 적당한 크기의 동네를 걷고 있는 순간이 너무 완벽해서 아직 2일차지만 아마 홍콩에서 가장 진하게 남는 기억은 지금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조선인인 걸 딱 알아보시곤 "여기서 뭐 봐야돼요?"라고 묻는 아주머니께 "그냥 걸어도 좋아요" 라고 대답하곤 정류장 건너편 나무 아래 앉았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것인지 누구에게나 유명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명하다고 하는 따땃한 에그타르트를 한 입 물자마자 진한 버터 맛이 흘러나온다. 차갑고 빽빽한 커피랑 함께 먹으니까 몸뚱이가 녹을 것 같다.
내일부터는 홍콩섬에만 있다가 갈 거라서 침사추이로 다시 넘어와 카메라를 들고 레이디스마켓을 쭉 훑어본다. 골목 몇 개를 지나도 축구 유니폼, 캐릭터 USB처럼 비슷비슷한 물건들만 나와서 금방 지겨워진다. 그래도 내가 보러 온 게 아니라 카메라가 보러 온 거니까 꾹 참고 렌즈를 휙휙 돌려가면서 골목을 지난다.
저녁 먹을 곳을 찾다가 오늘도 길을 잃어서 이틀째 라스트 오더로 저녁밥을 먹고 있다. 땀으로 젖은 옷도 축축하고 어깨도 축축처진다. 똑똑한 손전화라는 놈을 두 개나 들고 있지만 한 놈은 구글맵이 안켜지고 한 놈은 GPS가 되질 않는다. 두 놈 다 밉다. 그냥 다 밉다.
[3일차]
내가 지내던 방은 3층 침대가 3개 있는 9인실 믹스 도미토리다. 내 자리는 1층인데 아침에 눈만 뜨면 윗집 이웃들이 떨어뜨린 물건들이 손에 잡힌다. 오늘은 마스크 팩이랑 핸드폰 충전기가 내 옆에 누워있다. 마침 3층 언니가 일어나있길래 물건들을 들이밀면서 이즈 유얼스?라고 하니까 충전기는 자기꺼라며 오 땡큐란다.
가벼운 힙색을 하나 두르고 트레킹을 하러 간다. 홍콩 일정 중 자발적 의지가 충만한 유일한 활동이다. Dragon's Back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는데 MTR을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버스를 타고 언덕을 넘어가야한다. 종점인 섹오 비치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야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다.
홍콩의 날씨는 오늘도 구리지만 트레킹 코스에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서 사람들을 몇 명 만났다. 영상에 헥헥대는 내 거친 숨소리만 들어갈 것 같아서 사람이 보일 때마다 목소리 톤을 올려 하이라고 인사를 해본다. 두피에서 마구 샘솟는 땀이 모자도 뚫고 이마를 따라 흐른다. 고개를 젖히고 땀을 털어내는데 탐라유배시절에 매일 걷던 올레길이 생각난다. 내쉬는 숨결마저 끈적해지는 홍콩의 날씨를 잘 기억해놓으면 아마 오백배 정도 쾌적할 한국에선 여름에도 덥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숙소에 들러 가볍게 물 한 번 끼얹고 센트럴로 가는 트램에 몸을 얹었다. 산을 내려올 때부터 구름사이로 해가 비집고 나오더니 드디어 쨍쨍한 날이 되어버렸다. 어젯밤 숙소로 돌아오면서 맥주 한 캔 쥐고 트램을 탈 때도 신나서 내리기 싫었는데 쨍쨍한 오후에 타는 트램도 너무 매력적이다. 도심을 지나는 이 익숙한 속도는 내가 따릉이를 타고 있는지 헷갈리게 하지만 마음껏 달리고 있을 땐 적당한 바람이 얼굴에 팟팟 부딪혀서 상쾌하다. 그나저나 쓸데없이 뒷맛이 묵직한 크림소다를 산 건 실수인 것 같다. 탄산이 있어도 불청량음료다.
살 것도 없는데 IFC몰을 구석구석 찍어대는 일에 도무지 재미를 못 느끼곤 애플스토어 통유리너머로 하늘을 찍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관람차를 타러 갔는데 오늘은 운행을 안 한단다. 그런데도 주위에는 산미구엘 생맥주를 손에 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아까 아침에 3층 침대 언니가 무슨 페스티벌이 있다고 하던데 이게 그건가 싶어 단체티를 입은 사람 한 명한테 물어보니까 드래곤 보트 축제를 하는 날이라고 한다. 물가 가까이에 가니 웃통을 벗어 제낀 근육 사내들이 득실댄다. 조용히 동영상을 찍었다.
영원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웨이팅이 있던 팀호완에 들러 딤섬 세 팩을 옆구리에 끼고 취식보행을 하고 있다. 홍콩 vs 마카오 에그타르트 대결 뭐 이런 컨셉도 있어서 홍콩식 에그타르트도 사먹어야하는데 배불러서 큰 일이다. 그래도 수분 섭취를 빼놓을 수 없으니 커핑룸에서 들러 칵테일 마냥 흔들어 준 아이스 라떼도 한 잔 입에 문다.
어제 새벽에 깨어있던 ㄴㅎㅇ한테 돈 좀 부쳐달라고 해서 급히 예매를 했던 피크트램을 타러 간다. 패스트 티켓이 아니면 온종일 기다려야 된다는 둥 얘기가 많아서 샀는데 현장에서 사는 거랑 가격차이가 좀 있어서 잘 한 짓 같다. 말도 안 되는 경사로를 올라가면서 언덕 아래로 드문드문 보이는 불빛을 보고 전망대 뷰가 아주 최악은 아니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전망대까지 올라가보니 최악 오브 최악이다. 희뿌연 안개 덕분에 야경은 커녕 바람이 눈에 보인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자연현상들만 다양하게 구경하다 결국 전망대를 내려온다.
전망대는 망했으니 뤼가드로드에 희망을 걸어본다. 어느새 어둑어둑을 넘어서 깜깜해진 길을 걷는데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얼굴을 잔뜩 구긴채로 걷고 있다. 아무리 침착하려고 해도 풀벌레 소리가 아니라 짐승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쉬도 마리다. 아 이게 언제까지 가야하나 싶을 때쯤 모여있는 사람들과 빛이 보인다. 사진으로 본 뷰와 조금 달라서 갸웃대고 있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여기가 끝인 줄 알고 그냥 돌아가려는데 더 깊숙한 곳에서 비싼 사진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걸어온다. 여기까지도 무서운 걸 참고 온 건데 더 좋은 야경 스팟을 못 보고 가긴 억울해서 이즈 데어 베러 뷰? 라고 물었더니 자기 생각엔 그렇다고 한다.
블로그에서 봤던 위치를 찾기까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세 군데 정도 지나왔다. 여기 모여있으니까 이 곳이겠거니 하고 중간에 멈추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비싼 사진기 들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어둠 속으로 걸어가길래 그 사람들만 쫒아갔더니 안개 속에서도 만족스러운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이 동네는 날씨 좋은 날이 많이 없다니까 조금 흐려도 적당히 잘 보이는 야경이 유명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란콰이펑 골목을 지나며 사람들이 술먹고 춤추는 영상을 넉넉하게 찍어놔서 마음이 든든하다. 커피 아카데믹스에 들어가 플랫화이트를 시켜놓고 낱말 퀴즈를 풀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4일차]
손전화 메모리를 가득 채운 영상을 안전한 클라우드에 옮겨놓느라 새벽까지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같은 방 이웃들은 밤새 술을 들이키는지 들어오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방은 여전히 고요하다. 아마 어젯밤은 혼자 잔 것 같다. 아 드디어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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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와서 영상을 옮기는데 파일 몇 개가 깨져서 아예 열리지도 않는다. 오스모 앱을 사용할 때 손전화랑 계속 충돌이나서 오류 메시지가 떴었는데 그때마다 파일이 깨졌던 것 같다. 250개의 영상 중에 30개 정도가 손상된 파일이란다. 깨진 파일이 어디서 찍은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앞 뒤 파일을 열어서 대충 짐작해보는데 빅토리아 피크와 란콰이펑에서 찍은 영상이 날아갔다. 망해도 제대로 망한 것 같다.
벌써 홍콩을 다녀온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다. 그 회사의 페이스북 페이지 타임라인에 홍콩 영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알바는 아무래도 그분들께 아무나 쓰지 말라는 큰 교훈을 주고 끝난 것 같다. 아무나가 되지 않으려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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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여행가선 뭔가 평소에 안 하던 걸 해야한다는 부담이 있었나 보다. 소풍은 좋아하는데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말로, 굳이 어디 멀리 안 가더라도 평소에 하고 싶은 걸 많이 해서 삶의 만족도는 충분하다는 말로 대충 넘겨 왔는데 일상의 차분함을 산뜻하게 건드릴 수 있는 여행은 앞으로 좋아질 것 같다. 물론 심신안정이라는 내 삶의 목표는 변하지 않겠지만 불편함을 핑계삼아 상황을 피하지만 말고 가끔은 부딪혀서 불편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게 더 기분 좋을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 물론 아주 가끔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