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4만원)
5월 11일 (4만원)
탐라국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존재하고 있을 때 데려다 알바를 시켜줬던 ㅈㅇ형한테 연락이 왔다. 망원동에 펍을 하나 낸다고 공사현장에서 청소 좀 하고 가라고 한다. 탐라국에서도 일당은 무조건 현금으로 그 자리에서 주셨던터라 얼만지 물어보지도 않고 내일 뵙겠다고 이야기했다. 매일 아침 뉴스에서 호들갑 떠는 미세먼지보다 진한 공사장먼지 좀 마시러 가야겠다. 잔액이 8천 원이라 선택지가 별로 없다.
6시를 조금 넘겨 출발했는데도 8시를 10분 넘겨 도착했다. 역시 여의도 서쪽으로는 알바를 안 오는 게 맞는 것 같다. 뜯어진 벽지와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을 주워다 마대에 담는다. 아직 남아있는 벽지들은 손으로 툭툭 뜯어내는데 한 때 작은 생명이었던 것들이 함께 쏟아지는 바람에 놀라 짧게 소리를 뱉는다. 이미 폐기물로 가득 찬 마대도 꽤 쌓여있어서 건물 밖으로 하나씩 옮긴다. 바닥을 쓸어내는데 먼지가 너무 많이 날려서 마스크 사달라고 찡찡댔더니 형이 마스크를 사러 나갔다. 급한대로 분무기로 물을 뿌려가며 숨을 참고 빗자루질을 계속 한다.
코팅작업을 하는 동안 형이랑 아점을 먹으러 김밥극락에 왔다. 나는 네 시간 전에 아침을 먹었고 이제 고작 10시를 살짝 넘긴 시간이지만 이른 점심으로 여기면 되니까 기꺼이 치즈돈까스를 주문한다. 바짝 익힌 돈까스에 손으로 꽉 쥐어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칼을 무심히 가져다대니 치즈가 꿀떡꿀떡 새어나온다.
벽이며 바닥이며 코팅제를 입혀놔서 이젠 먼지가 안 날린다. 이 상태에 느낌있게 칠 좀 하고, 가구 몇 개 들여놓고, 침침한 조명을 달아놓으면 펍이 되나보다. 건물을 첨부터 다시 짓는 것도 아닌데 여러 기술들이 필요한 과정이라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공기 압축기로 약품 분사를 끝낸 아저씨들은 퇴근하시고 나는 시키는대로 다시 뒷정리를 시작한다. 지금이야 보유한 기술의 희소성 바닥이라 업무 자유도도 바닥이지만 6년 안에는 배짱대로 사는 기술자가 되어있으면 좋겠다.
4시간에 현금 4만 원을 손에 쥔다. 물론 김밥극락 다녀온 시간도 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