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알바일기

[알바일기] 문화가 있는 날 어린이 행사

4월 26일 (5만 원)

by 태희킷이지

4월 26일 (5만 원)


청년참 그룹인터뷰 때 만났던 '소풍 가는 날' 커뮤니티에서 연락이 왔다. 문화가 있는 날에 공연을 하신다고 놀러오라고 하신다. 연극을 하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진으로만 소식을 듣고 있기도 했고, 오랜만에 두 분을 뵙고 싶어서 쌍문동으로 놀러가기로 했다. 공연 일주일 전 연락이 왔다. 그냥 관객하지말고 친구를 한 명 데리고 스탭을 해달라고 하신다. 그렇게 갑자기 알바가 됐다.


사실 뭔지도 모르고 놀러간다고 해놓고선 이제서야 포스터를 찾아봤는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체험활동과 공연들이 연이어 진행되는 행사였다. 미취학 아동은 나에게 미역만큼이나 친해지기 어려운 상대지만, 어린이 안전짱이나 베이비 페어를 통해 어느정도 단련이 되어있다고 느껴서 크게 부담은 없었다.


창동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행사장소인 둘리뮤지엄 앞에서 내렸다. 공룡놈이 타고 왔던 빙하는 우이천을 따라 흘렀고 쌍문동에 사는 고길동씨는 그렇게 빌어드실 불청객을 맞이했다는 이야기, <아기공룡 둘리>의 배경이 되는 동네라서 이런 박물관도 있나보다. 계약서를 쓰면서 김밥을 입에 넣는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엄청 맛있다. 김밥극락 맛은 아닌 것 같다고 하니 이 동네에서 유명한 김밥집에서 사오셨다며 몇 줄 더 권하신다. 두 줄하고 반을 더 먹었다.


가면 만들기, 그림 그리기 부스에 준비물을 가져다 놓는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라서 그런지 종이와 사인펜에 친환경, 무독성 이런 딱지들이 다 붙어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부스에서 아동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는데 찾아오는 손님이 대부분 의식의 흐름대로 작품활동에 몰두하시는 미취학 아동들이라 사인펜을 주고 그냥 옆에 조용히 비켜나 있으면 할 일이 끝이 났다. 흥 많으신 아동 한 분께서 가끔 사인펜 뚜껑을 허공에 날려대서 그거나 주우러 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 돌벤치로 튀어나가 빨간 사인펜으로 색칠을 하기 시작한다. 황급히 달려가 폭주하는 예술혼을 저지하고 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둘리뮤지엄 직원 분이 굳게 다문 입으로 다가오신다.


작은 악마놈들은 손끝이 빨개질때까지 색칠된 돌벤치를 물티슈로 벅벅 문지르고 있는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유감이라는 말도 없이 여전히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근데 가만보면 돌벤치에도 거침없이 그림을 그려대는 애들도 있는 반면 선 하나 긋는 데도 생각이 많아지는 애들도 여럿 보인다. 자기가 그린 게 뭔지 아냐고 먼저 물어보는 아동도 있지만 뭐 하나 물어봐도 도망가는 아동들도 있다. 그동안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 불리하면 땡깡시전이나 하는 미취학 아동을 한 번에 싸잡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지만 이제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이들을 고유한 인격체로 바라보려는데 또 다시 돌벤치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은 악마놈과 눈이 마주친다.


야외무대에서 연극 공연도 있었는데 나는 중간 정리를 하느라 볼 수 없었고 삐에로 아저씨의 풍선아트 공연부터 볼 수 있었다. 아이들한테 인기있는 캐릭터를 뚝딱뚝딱 만들어낼때마다 관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진다. 풍선이 완성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다 일어나서 풍선을 달라고 소리치는데 자기만 안 준다고 삐지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다. 이어지는 공연에선 잘생긴 형님이 나와서 저글링을 한다. 어려운 걸 성공할 때마다 주머니에서 꽃잎을 꺼내서 샤랄라하게 뿌리는데 아이들의 미지근한 반응과 달리 어머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풍선아트와 저글링, 마지막 무대로 나온 버블아트 공연까지 보고 있으려니까 저 분들의 보낸 일만시간이 궁금해진다. <생활의 달인>을 볼 때처럼 나만 점점 쪼그라드는 것 같다. 비눗방울 아저씨가 남은 비눗물을 탈탈털어 대량생산한 투명방울들을 하늘위로 날리면서 행사는 끝이 났다. 12시부터 시작이라고 점심 먹여주신 것도 감사한데 저녁도 주신단다. 알바하는 동안 근처 산책로에 세워뒀던 이젤 좀 정리하고 식당에 갔는데 탕수육, 유산슬, 팔보채가 연달아 테이블에 등판하신다. 한동안 이런 꿀 맛은 못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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