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같은 인터뷰 #2
BGM - 현아의 버블 팝
책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답니다.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이 책을 읽으신 건지 내가 집에서 자기 전에 대충 선별한 질 좋은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않는 인터뷰이를 만났다. 녹취록을 기반으로 인터뷰를 풀어놓으니 그녀가 한 대답보다 내가 한 질문이 더 많아서 땀이 난다. 그래도 가볍다 못해 경박한 나의 목소리로 줄줄이 이어진 질문의 시간보다 그녀의 고심이 묻어 나오는 5분 24초의 정적이 그녀에게 더욱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확신한다. 확신이 드는 지표가 필요한 그녀와 허구한 날 그 지표가 바뀌어대는 내가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티스트 현아님의 노래를 인터뷰이님께 선물한다.
너에게 날 맞추진 마
나에게 더 바라진 마
있는 그대로 생각해 봐
보이는 대로 날 바라봐 줘
- 현아님의 <버블 팝> 中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지금 간호학과 1학년이고요. 14학번이고, 22살이고, 음.. 저번에 다른 학교 다녔었고, 그때도 간호학과였고...... 지금은 학교생활 만족하고 있어요. (아 학교 졸잼?) 그냥 학교생활....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메일로 자기소개 보내 주실 때도 1학년이지만 22살임을 은근히 강조하시던데 간호대에는 많지 않나요? 비 현역들.
아뇨 생각보단 많이 없어요. 특히 올해는 현역이 많네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간호학과에서 공부하셨다고 했는데 수능은 왜 다시 보신 거?
학교가.. 그냥 학교 이름이.... 맘에 안 들었어요.
재수할 때도 더 좋은 학교 가고 싶어서 한건데 생각하지도 않던 학교에 가게 된 거에요.
사실 작년에 간호학과도 제가 정말 가고 싶어서 선택한 게 아니라 학교도 좋은데 못 갔는데 취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 과를 선택한 거거든요. 그나마 학교에서 밀어주는 학과니까요.
원래 간호학과에 대해 약간 거부감 같은 게 있었는데.... 제가 간호사에 대해 잘 모를 때 의사들 심부름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막상 가니까 교수님들도 진로에 대해 되게 희망적으로 말씀해주시고 하니까 그러면 ‘대학은 올리고 과는 간호학과여도 상관은 없겠다.’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지난 번 학교엔 얼마나 다녔어요?
1년이요.
고3때는 가고 싶은 과 는 있었어요?
고3때는 이과였고 그때도 뭐 사실 정한 건 없었어요. 앞으로 뭐 할지도 몰랐고, 수능도 잘 못보고 문과로 바꿨고, 재수해서 전 대학 다니다 이번에도 또 문과로 여기 온 거에요.
작년에 직접 간호학과에 다니게 되면서 간호학과에 대해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근데 올해 수시 넣을 땐 또 다른 과 위주로 넣었어요. 막 언론정보학과도 넣었고요.
재수할 때 간호대 지원한 건 어떻게 지원하게 된 거에요?
그건 그냥 제 성적으로 그나마 개인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했고 취직걱정도 덜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다보니 간호학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에 수시로 다른 학과를 갈 수 있게 된다면 과를 바꿀 생각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어요. 근데 어떻게 또 이렇게 됐네요. 간호학과가 대체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 중에서는 입결이 높은 편은 아니니까 제 성적에 제가 할 수 있는 선택권은 이것 밖에 없었죠. 일단 올해는 무엇보다도 학교 간판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젤 컸어요. 네임밸류라고 해야 하나? 솔직한 마음으로 남들 시선도 신경 쓰였고, 뭐 가족들한테도 좀 더 좋은 모습 보이고 싶었어요.
본인이 고3때부터 지금까지 진로고민하고 있다고 봐도 되나요?
그렇죠 뭐. 지금도 이 학교 와서 사실.... 전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봉사정신이 투철한 것도 아니고, 너무 남들 시선도 많이 의식하는 것 같아요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지긴 했다지만 일단 제가 이미 인정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정이 안 간다고 할까요? 뭐 간호사가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아 그럼 원래 하고 싶었던 게 있었던 건가요?
아뇨 그걸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고민은 어렸을 때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어렸을 땐 성적 좋으면 어떻게 선택은 할 수 있겠지 이런 생각만 갖고 있었죠.
아 생각하던 거 있어요. 초등학교 선생님. 근데 이건 그땐 제가 좋아서 지원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튼 교대를 넣었는데 지방교대는 다 비슷하잖아요. 입결이 비슷한데 입학 할 때 내신이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제가 내신이 별로 좋지 않아서 수능을 잘 봐도 못가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원서를 잘못 넣기도 하고 계속 떨어지고, 두 번이나 그랬거든요. 처음에 엄마가 교대를 추천하긴 했어요. 저는 옛날부터 별로라고 했는데 요즘 다들 취업 안 된다는 말을 하니까 선생님하면 좀 안정적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말 듣고 뭐........
아 그럼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아니 또 엄마가 말을 그렇게 하시니까 해도 그냥 무난하게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도 살면서 아 진짜 이거 해보고..) 그런 거 없어요. 제가.
가끔 그런 건 해 보고 싶어요. 맛집 같은 거 차리는 거? 요식업을 하는 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도 이것도 그냥 막연하게 드는 생각이에요.
뭐 그럴 수도 있죠. 다들 하나씩 맘에 품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품고 사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왜 난 하고 싶은 게 없지?’ 자체도 지금 고민이에요?
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은 안 나는데. 한 번은 수업 같이 듣는 다른 과 친구가 엄청 심리학과를 가고 싶어 하는 거에요. 수시로 붙어서 그냥 왔지만 우리 학교에는 심리학과가 없어서 너무 아쉬워하면서 반수를 해서라도 꼭 심리학과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 친구는 아동인권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국제기구에도 막 찾아보고 자기 진로에 대해 그 분야에 맞춰서 알아보고요. 다들 자기 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 거에요. 그런 모습이 자기가 하려는 일의 분야나 진로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 것 같아서 멋있어 보여요. 대단하다 싶어요. 나도 저렇게 꽂히는 게 하나 있었으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고요.
좋아하는 취미는 뭐에요?
취미 물어볼 때도 무슨 말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취미 물어봐도 뭐라 해야할지 남이 신경 쓰여요?) 음 요즘 그래지는 것 같아요.... 취미 물어보면 옛날엔 영화 보는 거 좋아한다고 했는데 이젠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제가 지금 말하면서 생각이 드는 건데 제가 지금 막 꽂히는 게 없다고 했잖아요. 그러다보니 주위에서 선생님 좋다더라, 간호사 괜찮다더라 하는 이야기에 휘둘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럴 일도 없을 텐데..... 진짜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안정성이나 금전적 문제 같은 것도 제가 충분히 포기할 의향도 있긴 있다고 생각하는데....
원래 성격은 어때요?
우유부단하고.... 음.. 뭐라 해야 하지. 좀 고집이 센 거 같기도 하고 안 센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자존감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요? 1부터 10까지 숫자가 있다고 하면.
4정도? (낮은 편 인 것 같아요?) 네. 너무 낮다 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낮은 편인 것 같아요.
저는 제 장점 생각이 안 나요. 그냥 떠오르는 게 없어서 방금도 우유부단하다 고집 세다 이런 것만 이야기 한 거에요.
자신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을 평소에도 자주해요?
네. 혼자 있는 시간도 가지고, 인식하게 하는 계기 같은 사건이 있을 때 저에 대해 생각도 하고.
어디까지 생각이가요. ‘아 고민이다.’까지 아니면 고민이니까 ‘이렇게 해 봐야겠다.’까지?
‘해 봐야겠다,’ 까진 안가고 바꿔야 하는데... 까지 가는 것 같아요
본인을 바꾸기 위해 한 실천적 노력이 있나요?
(정적)없는 것 같아요. (못하는 걸림돌이 있나?) 그냥 나태해서 그런 건가.....
그냥 전 불만만 느끼고 어떻게 개선하려고 하진 않는 것 같아요.
까놓고 누가 해결해줬으면 좋겠죠. 확실하게 결정해줬으면 좋겠고.
네 그냥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어요. 근데 방금 질문하신 것처럼 지금 노력한 게 없으니까 되게 한심해 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충 제가 생각해 놓은 게 이 일이 저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니까 단정짓고 있지는 않아요. 졸업하고 나서 보통 병원에서 임상간호사를 3년 정도 해야 경력인정이 되는데, 해봐야 아는 거니까 3년은 버틸 생각이거든요. 맞으면 하는 거고 좀 아니라던지 그때라도 제가 좋아하는 게 생기면 다른 쪽으로 알아볼 생각도 있어요.
본인이 돌아온 2년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래도 일단 조금이지만 성적도 올리고 학교도 다시 왔으니 뭐. 20살, 21살을 공부하면서 보냈지만 멀리 내다보면 지금처럼 나중에 이렇게 될 거 알았어도 2년 이렇게 썼을 거에요. (지금와서 2년이 신경쓰이나?) 동기들은 조금이라도 어린데 조금 더 빨리 즐기는 것 같아서 부럽긴 해요. 그래도 그 2년이 엄청 크게 의미부여 되지는 않아요. 후회는 없어요.
본인이 2014년 지금 22살이라고 생각해요 아님 1학년이라고 생각해요? 주위에 22살 친구들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닿나요 아님 1학년 친구들 얘기가 와닿아요?
1학년. 1학년 생활을 제대로 하는 건 여기가 처음이니깐 (본인이 생각하는 제대로 된 대학생활?) 그냥 동아리활동 같은 것도 하고 놀고 싶은 거 놀고, 이것저것 해보는 거요. (뭐하고 노는데요?) 저요? 그냥 친구만나고 수다 떠는데. 아 친구랑 여행가보고 싶어요. 가족끼리는 자주 가는데 막상 친구랑은 가본적은 없어요. 친한 친구들이 저처럼 수능을 많이 봐가지고 비슷한 처지에요. 수능 끝나면 항상 놀러가자 얘기는 많이 했는데 자꾸 흐지부지 되네요.
끝이다. 막연한 꿈이라도 들어보겠다고 습관처럼 던지려던 마지막 질문은 하지 않았다. 각자 사는 기준의 선정부터가 중요한 일이겠지만 나는 요즘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다. 될성부른 떡잎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엄마 기대에 따라 쑥쑥 잘 자라날 자신도 없으니까 그저 소소한 재미만 맛보면서 그렇게 가도 될 것 같다. 정작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뭐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인터뷰이에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말로 생각해도 괜찮지 않느냐며 긍정으로 유도하는 녹취록 속의 내가 소름끼친다.
노답인 세상에 답을 내려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답이 진짜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인터뷰 중 ‘우리 아빠는 저금도 안 해 놓는 것 같던데...’ 라며 뜬금없이 아부지를 걱정하던 인터뷰이를 보면서 오늘도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전적으로 내 기준에서 끊임없이 살펴보려한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내 마음 하나뿐인데, 비록 여자 친구는 못 가진다해도 내 마음 하나 못 가지면 창피해서 못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