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일기] 한정식 서빙

2010년 7월~8월 (4,300원 정도 받은 듯함)

by 태희킷이지

2010년 7월~8월

(두 달을 못 채웠던 것 같음 / 최저시급 4,110원 시절이었지만 4,300원 정도 받은 듯함)


2010년 3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용돈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살아왔다. 아직 절반도 못썼지만 밀려드는 불안감에 과외 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돈 위에 죄책감을 얹어주는 과외는 더이상 못 할 것 같아 이번 주말엔 집밖으로 나왔다. 처음 와보는 도심역 밖으로 나오니 풀색 쌍용 이스타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낯선 분위기에 눌려 눈을 깔고 바닥만 보다가 창밖을 힐끗 보는데 다리를 건너고 있는지 강 같은 게 보인다.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위가 온통 그린벨트라 산 근처 유일한 식당이라는 이 순두부집엔 주말마다 등산객들이 북적인다. 메인요리는 순두부였지만 유자 드레싱 샐러드와, 궁중 떡볶이, 버섯탕수, 수육(or 오리고기), 과일 후식 등을 내는 한정식집이었다. 그다지 친절하지 않아보이는 굵은 뿔테 안경을 쓴 사장님과 쓸데없이 담백한 대화를 나눴고, 곧 앞치마도 아닌 치마도 아닌 중간 단계의 천쪼가리를 건네 받았다. 그 쪼가리는 허리앞치마였는데 그때 나에겐 처음 보는 물건이라.


두 달을 못 채우긴 했지만 몇 시간짜리 찌라시 돌리기를 제외하면 첫 알바였던만큼 신기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아줌마들한테 이모라고 불러본 것도 허리랑 발바닥에 통증을 느꼈던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발바닥 느낌이 이상하다고 징징댔을 때, 엄마 표정이 뭔가 오묘 했는데 그때 무슨 느낌이었는지 내일 아침에 물어봐야겠다.


주말에 산을 찾는 사람들이 밥 시간에 맞춰 딱딱 들어오는 게 아니라 몇 시간 동안 늘어지는 점심 장사를 정신 없이 하고 나면 금방 피곤해졌다. 잠깐잠깐 시간이 날땐 어디에든 엉덩이를 붙이고 싶은데 주방 한 쪽에서 비닐에 비지덩어리도 담아내고 주차 안내도 하러 들락날락해야해서 자주 그러진 못했다. 아 지금 생각하니까 알바복지가 무진장 별로였는데 시간이란 놈이 또 기억조작 해버린 것 같다. 첫 알바라고 환상을 한 스쿱 섞어줬네.


이모들은 가끔 아니 꽤 자주 먹을 걸 입에 넣어줬고, 코스까진 아니더라도 매 끼니를 꽤나 훌륭하게 먹어서 이 기억이 나쁘진 않지만 아직도 아쉬움은 남아있다. 이 집에는 나말고 다른 알바형이 있었는데 아마 군대 갔다온 스물 네 살 정도 됐던 것 같다. 그 양반은 이모들한테 살갑게 말도 잘 걸고 일도 효율적으로 잘 해서 주방에 들어가 오리고기를 자주 먹었다. 그 때 못 먹은 오리고기가 아쉬워서 꿈에 나온다는 건 아니고 그냥 이 식당 안에 있는 그 양반의 움직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내가 원래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랑 관계 없이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대한 필요성 비슷한 걸 느끼게 되서 그런가. 실제로 내 의지로 상황를 비틀었다면 더 잘 먹고 더 재밌게 일하느라 더 느끼는 게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과외로 모아놓은 돈은 좀 있었고 하루종일 서 있느라 발바닥이 생각보다 많이 아팠지만 그렇다고 두 달만에 끝낼 생각은 없었는데 뜬금없는 사건 때문에 이 집에선 일을 그만 하게 됐다. 이 집은 순두부를 만드는 집이었는데 어느 날 한 테이블에서 급히 사람을 부르길래 뛰어갔더니 두부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며 침을 튀기며 대노하셨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서빙하다가 머리카락을 흘린 것 같아요."

라고 말씀드리곤 속으로 와 졸라 프로 알바같았다며 혼자 기특해하는 순간,

"XX, 두부 안에서 나왔다니까 뭔 개소리야!" 라며 격노하셨다.


욕설소리에 달려오신 사장님은 왜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냐며 나를 끌어내셨고 그날은 주눅이 들어서 밥이 맛이 없었다. 내가 먹는 거에도 머리카락 나올 것 같은 기분이라 불안하기도 하고. 주급을 받는 날이었는데도 기분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 조금 참았다가 풀색 이스타나를 안 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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