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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좋은 생각

개똥같은 인터뷰 #37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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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8Zd3Fe6Glkg


오늘처럼 더운 날에 예비군에 끌려간 건 어쩔 수 없지만, 제가 싫어하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편이에요. 나한테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은 엄청난 불안감을 몰고와서 안 그래도 작은 마음을 더 쪼그라들게 하거든요. 그렇게 노력해도 항상 내 마음에 건강한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라서 마음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쾌함을 맞이하는 법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어요. 요즘 너님의 마음이 너님의 지시를 잘 따르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주고 받은 말들이 너님의 마음보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일단 인터뷰 신청해주셔서 감사하고...


ㅋㅋㅋㅋ 뭔가 조금 오글거리는 거 같아요.


원래 시작할 땐 다 그래요. 신청을 언제 하셨더라.


2월인가 했던 거 같은데 제가 아팠어가지고... 미뤄졌죠.


지금은 몸 괜찮아요?


네. 회복 중인데 괜찮아요.


갑자기 아프신 거?


스트레스 많이 받아가지고... 제가 오늘 인터뷰 신청한 게 좀... 어디 가서 할 수 없는 얘긴데. 그냥 답답한 거예요. 제가 벌써 7년 됐나. 우울증이 되게 심했어요... 근데 이런 얘기해도 돼요?


하고 싶은 만큼 하세요.


처음부터 우울증은 아니었고 강박증 아세요..? 강박증이 있었는데 제 기억으론 되게 어렸을 때부터 있던 거 같아요.


어떤 식으로?


제가 초등학교 내내 제가 되게 말랐었는데, 항상 제가 얼마나 뚱뚱한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친구들한테 좀 강요하듯이 물어봤었어요. 나 뚱뚱하냐고. 근데 그렇게 물어보고도 10분 지나면 또 물어보고 싶어요. 그러면 또 물어봐야 돼요. 계속 그렇게 물어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는 친구를 안 만나요. 그게 강박증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건강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 어디 살짝 다치면 엄청 울고 그랬었어요. 근데 그게 중학교 고등학교 때 좀 잠잠했다가 대학교 1학년 때 너무 심해진 거예요. 그땐 학교 빠지고 병원을 세 개씩 다니고 그랬어요. 하루에.


건강이 신경 쓰여서...?


네. 그 당시엔 머리 빠지는 거에 신경이 쓰여서요. 이렇게 머리를 쓸어 넘기면 머리가 빠졌어요. 두 개 이상 빠지면 막 우는 거예요.ㅋㅋㅋㅋ 한 마디로 정신병이죠. 처음에 머리가 약간 빠졌을 때 병원에 다니느라 학교를 거의 일주일 빠졌어요. 그리고 집에서... 머리카락을 다 모아놔요. 머리 감을 때마다 빠지는 걸요. 그리고 그걸 다 세어봤어요.


그러던 중에 제가 안압이 높다는 걸 발견했어요. 어지러워서 쓰러졌거든요. 그 이후로 너무 무서워서 학교를 못나가겠는 거예요. 그때는 저만의 방식으로 내 눈이 괜찮은지 계속 확인을 했어요.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게요. 그게 뭐였냐면 지하철 타서 눈을 하나씩 감아 봐요. 그런 다음에 양쪽 눈에 똑같이 보이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지하철 정중앙 자리에 앉아서요.


그 행동을 계속 하니까 나중에는 미치겠는 거예요. 아예 지하철을 못 타겠고. 그래서 그 때 처음으로 학교를 하나도 안 나가서 다 F를 받았어요. 그땐 그게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강박증이었더라고요. 그렇게 비슷하게 매년... 그렇게 살았어요.


너님이 느끼는 강박증 증세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거죠?


지금 신체의 일부를 아무데나 말해도 그 고민은 이미 다 해봤을 거예요. 코도 귀도 그렇고. 요즘은 귀가지고 걱정하거든요. 잠자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뇌도 그랬어요. 그냥 제 몸에 있는 것들 중에 걱정을 안 해본 오장육부가 없어요. 아무리 잠깐이라도, 살면서 한 번씩은 다 걱정해본 거 같아요. 그게... 계속 되다보니까 이제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강박증이라는 걸 안 건 언제에요?


정신과에 가도 의사들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라고 하지 강박증이라고 안 했어요. 예전에 어디선가 강박증에 대해서 읽었는데 제 증상이랑 비슷한 거예요. 제가 계속 상태를 체크하잖아요. 그렇게 확인을 안 하면 약간 미칠 거 같거든요. 여행 가서도 체크를 하고 싶으면 갑자기 이렇게 있다가 어디 가서 체크를 하고 와야 돼요. 예전에 당뇨병 걱정을 했을 때가 있는데 그때 약간 소변에서 거품이 많이 나왔었어요. 그러면 불안하면 안 마려워도 가서 확인을 하고 와야 해요.


누구랑 약속을 해도 못 나가는 거예요. 알바도 되게 많이 했었는데 하다가 결국 그만두는 게 많았어요. 갑자기 불안해지면... 약간 누가 죽은 거 같아요. 가족 중에 한 명이 죽었을 때 느낄 것 같은 불안함이에요. 한 번은 너무 힘들어서 손, 발이 다 마비가 된 거예요. 다 저리고. 그렇게 7년을 살았는데 진짜 지치더라고요. 뭔가 제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인 거 같았어요.


이번에 휴학을 신청한 게 아니라 자퇴를 하러 갔거든요. 이미 휴학을 다 써가지고 이제 휴학을 못 하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학교에서 해준다고 해서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휴학하고 왔어요. 그러다보니까 대학교 친구들은 많이 없어요. 수업을 같이 들어도, 조모임을 하다가도 제가 갑자기 학교를 못 가거나, 갑자기 약속에 나갈 수 없다거나 하는 상황이 있어서요. 그걸 보통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저도 솔직히 이해가 안 될 거 같아요.


요즘은 친구들이랑 연락을 잘 안 해요?


요즘은 외출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예요. 그래서 사람을 잘 안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도 집으로 오게 해요. 가족하고도 사이가 되게 안 좋아져가지고 더... 연락을 잘 안 해요.


근데 집 나와서 살면 더 힘든 거 아니에요?


제가 힘들었던 원인이 가족한테 있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 폭언 이런 게 심하고 불화가 지속되어 와서 제가 그렇게 몸에 집착을 하게 된 거라... 지금은 좋아요. 항상 몸이 안 좋아지면 다시 집에 들어갔었어요. 엄마, 아빠한테 병원비도 지원받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이젠 그냥 나왔어요.


치료는 어떻게 받고 있어요?


병원도 다니고 약도 많이 먹었죠. 상담도 몇 년 했어요. 그래서 많이 나아진 거예요. 이제는 체크는 안 해요. 이제는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좀 불안해하는 정도. 나아졌어요 좀.


조금은 다스릴 수 있는 상태인 거예요?


이제 많이 불안하지는 않아요. 근데 인생의 기쁨이 하나도 없어요. 진짜 잿빛 같아요. 강박증이 있는 사람은 강박증 체크를 하면서 거기서 기쁨을 얻는대요. 결벽증이 있는 사람은 깨끗함을 느끼려고 손을 씻는 거고, 저는 제가 건강하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계속 확인을 하는 거예요. 근데 이제 그 행동을 안 하니까 그냥 우울한 거예요.


그래도 지금이 나은 거 같아요. 진짜 힘들어서 자살시도도 했었거든요.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는데 귀가 안 들리는 거예요. 청력은 다시 돌아왔는데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느 날 자낙스였나... 약을 80알 먹었어요. 술 마시고 힘들어서 자고 싶은데 약을 먹고 싶더라고요. 제 정신 아닌 상태에서 80알을 먹어가지고 병원간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괜찮아지고를 반복하면서 그냥 그렇게 지금까지 살았던 거 같아요. 한때는 술도 엄청 마시고 클럽도 엄청 많이 가고 만나던 남자친구한테는 항상 의존적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다 소용이 없고 내가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런 생각은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저는 가족이면 항상 나를 엄청 생각해주는 존재인줄 알았는데 가족도 솔직히 지치잖아요. 남자친구도 저의 문제로 인해서 계속 헤어지게 되니까 그런 생각을 한 거 같아요. 이제 사람들한테 절대 힘든 거 얘기 안하거든요.


그 전에는 많이 얘기를 했었어요?


말했다기보다 계속 물어봤어요. 나 지금 체크 좀 같이 해달라고. 근데 이제는 절대 티를 안내요.


그래도 오래 만나온 친구들은 알잖아요.


같이 살던 친구는 제가 겉으로 밝아 보이니까 몰랐다가... 같이 살면 알잖아요. 며칠 동안 집을 못 나가니까. 그래서 그때 되게 힘들었어요. 왜냐면 그걸 보여주는 게 좀. 지금은 오히려 나아요. 혼자 사니까. 근데 막상 나오면 괜찮아져요. 나오면 그날 기분 괜찮은데 그 나오는 과정이 너무 두려워요. 어제도 어디 갔어야하는데 못 갔거든요.


그래도 인터뷰 신청해주셨을 때는 컨디션이 괜찮은 편이었나봐요. “요즘 뭐해요?” 라는 질문에 뉴욕 여행 중이라고.


그 때 좀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봐요. 너무 답답했거든요. 제가 만약 암에 걸렸으면 그건 진짜 슬픈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게 얼마나 아프고 힘든 건지 알잖아요. 그리고 제가 만약 암을 이겨냈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저를 응원해주고 대단하다고 격려해주고 할 거 아니에요. 근데 이런 정신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니까... 다리를 다치면 다리를 다친 느낌을 알텐데 이 느낌은 정말 모르거든요.


겪어보지 않으면 공감해주기 어려울 수 있겠죠.


솔직히 저도 못할 거 같아요. 주위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고. 정말 병인데... 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죽는 병이 아니잖아요. 죽진 않잖아요. 자살 하지만. 자살은 스스로 하는 거지. 병으로 죽는 게 아닌 거니까. 저는 솔직히 정신병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7년의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거든요. 어릴 땐 대학생이 되면 이게 다 해결될 거라고 믿어가지고 고민을 다 미뤄놓은 건데... 너님은 그런 힘든 기억 없으세요?


저는 하룻밤만 걱정을 해도 왜 쓸데없이 이런 걱정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속상한데, 그렇게 오래 생각하고 있으면 자신도 얼마나 괴로울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ㅠ


정신분열증은 자기가 비정상... 자기가 하는 생각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걸 못 느끼는 경우가 있거든요. 우울증에 너무 빠져 있으면 그 자체에 잠식당해가지고 잘 못 느낀대요. 그런데 강박증 같은 경우엔 자기가 하는 행동이 극도로 비정상적이라는 걸 알거든요. 그리고 그거 빼고 나머지는 다 정상이에요. 그것도 자기가 선택한 것만 걱정이 와요. 저도 손 많이 닦거나 천장 같은 거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해 못 하거든요.


저는 인간관계라든지 다른 걱정은 없지만 건강걱정이랑 엄마걱정만 있어요. 근데 그걸 알지만 비이성적이라는 걸 알지만 진짜 이게 머리가 갑자기 락인 되는 거 같아요. 뭔가 자물쇠가 채워지면서 풀 수 없는 느낌이에요. 뭐 하나 걱정이 되는 순간 이런 느낌이 들어요. 아 이제 몇 달은 고생해야겠다. 이거 하나 때문에. 지금 얘기하는 순간에도 머리의 30퍼센트 정도를 그걸 계속 생각해요. 그 느낌으로 그게 잔존해요 머리에서. 되게 신기해요 저도. 이게 진짜 신기해요. 마음만 바꾸면 되는데 그 마음이 잘 안 바뀐다는 게 진짜 신기해요.


내 마음도 내 것이 아닌 거 같네요. 그래도 신청 하실 땐 요즘 생각하는 것에 행복 이런 것도 써주셨어요.


항상 관심사가 행복이죠.


지금 들은 얘기로는 건강이 1순위로 나왔어야하는 거 같은데 건강은 없던데


건강 때문에 불행해서 그런가...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든 거 같아요.


음식, 요리 등 먹는 것과 관련된 단어가 많이 나왔어요. 음식 요리, 과일, 채소가 하나로 묶여 보였거든요.


건강에 집착하다보니까 음식이 엄청 신경 쓰여요. 신선한 채소 같은 거 보면 항상 챙겨 먹어가지고.


마음에 도움이 되나요?


네네 도움이 돼요. 그래서 더 좋아요. 관심도 가고. 나중에 요리를 하고 싶어요. 배우긴 했었는데 나중에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요.


혼자도 잘 해 드셔요?


요즘 돈이 없어가지고 잘 못 해먹는데, 지출의 대부분이 다 식비에요.


젤 중요하잖아요.


밖에서 거의 안 먹어요. 거식증은 아닌데 그거랑 비슷해요. 거식증은 살찔까봐 음식을 거부하는 건데 저는 살찔까봐 걱정하는 건 아니고 뭘 먹었을 때 건강이 안 좋아질까 봐요. 지난 번에 친구랑 순대랑 삼겹살을 먹었거든요. 먹고 나면 이게 건강에 안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럼 괴로워져요 몇 시간씩.


너님 손으로 해먹어야 마음이 편하겠네요. 음식은 언제 배웠어요?


3월부터 배웠었는데 이사를 하면서 요새는 못 갔네요. 근데 생각해보면 약간 보호받는 느낌이 들 때는 증상들이 나아졌던 것 같아요. 제가 가족한테 보호 받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살면서 거의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불안했고 아빠는 알콜 중독에 가정폭력이 심했고, 엄마는 폭언을 진짜 많이 하셔서 상처를 많이 받았었어요. 가족들이 저한테 사랑을 줄 수 없으니까 남자친구가 있고 관계가 좋을 때는 그런 걱정이 좀 사라졌던 것 같아요. 그럴 땐 음식을 좀 막 먹어도 걱정이 없었거든요.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상담 받을 때는 그런 얘기를 했나요?


했는데... 마지막으로 받았던 상담에서 그 선생님이 얘기하더라고요. 강박증 있는 사람이 잃기 싫어하는 게 건강, 재산, 명예가 있는데 저는 건강을 잃기 싫어하는 거처럼 보이는데 그게 명예랑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니까 사랑받고 싶은 욕구? 건강을 잃으면 사랑을 못 받을 거라는 생각이 있어서 건강에 집착을 하는 거래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지만 건너서 왔다는 거네요. 건강에 반영되어서. 너님이 말대로 관계부분에서 좋았을 때, 사랑받는다고 느꼈을 때 분명 좋아지는 걸까요?


근데 친구들이랑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그런 건 없고, 가족이나 남자친구 빼곤 없어요. 아무리 친구들이 연락해주고 잘해주고 해도 내가 평온함을 느끼거나 이런 건 없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하는 거 같아요. 솔직히 스물 두 살 세 살 때 아팠을 땐 그런 느낌 없었거든요. 지금은 스물 여섯 살이고, 이제 다들 취업하고 하는데 저는 너무 힘들어서 그동안 너무 뒤처지는 느낌이 드니깐...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아요 약간.


근데 저는 블로그 보고 신기했던 게 저는 뭘 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단 말이에요. 집에 나가는 것도 힘든데 너님은 알바 같은 거 되게 여러 가지 하셨잖아요. 되게 활동도 많이 하고. (그거야 시간은 많고 돈은 없으니깐...) 그런 거 보고 멘탈이 되게 좋으시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불안함도 별로 없겠다고요.


음... 약간 반대에요. 저는 스스로 멘탈이 되게 안 좋다고 생각해서... 깨지지 않도록 케어를 많이 해줄 뿐?!


하고 싶은 건 없어요?


뭐 딱히 없어요. 자신 있는 것도 따로 없고. 아직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건 오래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냥 천천히 생각하고 있어요.


건강걱정은 없으세요?


어릴 때부터 엄살이 심하긴 했어요. 이명이 있는 것 빼곤 건강한 편이라...


오오 제 요즘 걱정이 이명이에요. 근데 되게 신기한 게 갑자기 생각하면 들려요.


제 이명은 멘탈의 문제인 것 같아요. 약간 몸이 안 좋거나 하면 튀어나오는 걸 보면. 이제는 익숙해져서 저는 오히려 그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불안함보다 익숙함이 커지면 그게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되게 작아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너님의 경우엔 먹는 것, 요리하는 것이 건강에 대한 불안함으로 비롯된 강박증이 아니라 그냥 내 몸을 챙기는 기분 좋은 과정으로 변화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너무 긍정인가.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밖에서 잘 안 먹잖아요. 조미료 같은 것 때문에. 그러면 궁극적으로는 내 몸에 좋은 거잖아요. 그리고 제가 다른 건 꾸준히 잘 못하는데 항상 집에 있을 때 영어공부를 했거든요. 진짜 매일매일 하다보니깐 불안하면 저는 영어를 들어요. 요즘에도 집에 있을 땐 10시간씩 공부하거든요. 제가 다른 데 자신감이 없으니까 이거 하나라도 제 것으로 만들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너무 외로울 때 영어로 된 컨텐츠 같은 것도 많이 보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우울증이나 이런 것에 대해 말을 잘 안 하는데 유튜브 보면 진짜 많아요. 그런 것 많이 찾아보면서 영어 공부는 안 놨거든요. 아직도 하고 있고. 그래서 언젠가는 이 병이 나아지면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한 상태보다는ㅋㅋㅋ 뭐라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힘든 일 잊어버리려면 다른 것에 몰두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하잖아요.


제가 볼 땐 영어공부가 그래요. 뭐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성취감 들어요. 그리고 내가 이렇게 힘든데도 이걸했구나 이런 느낌도 들고.


다른 부분에서는 오히려 그런 불안함 때문에 쏟지 못했던 에너지를...


그거예요. 진짜. 위로 받는 느낌. 공부하면 위로가 되어요. 그 공부가 책상에 앉아만 있는 게 아니고 영상 보고, 듣고, 말하고 이런 거니깐.


그래서 영어, 해외 이런 것들도 생각하고 있다고 적었었나봐요.


네 맞아요. 영어 공부해서 해외 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어가지고. 혹시 모르잖아요. (해외에서 살고 싶은 거예요?) 그건 모르겠어요. 살아봐야 알 거 같아요.


여행은 많이 다녔는데, 결론은 내가 어디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평온한 게 제일 중요한 거더라고요. 어딜 가든 내 마음이 불편하면 거기는 지옥인 거고.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아직까진 한국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 간 태국, 라오스는 되게 지옥 같았어요. 마음이 불안하니깐 힘들고 덥고 불안하고 음식도 안 맞고 많이 힘들더라고요.


근데 꽤 오래 있었잖아요.


원래 한 달 있으려고 했는데, 2주만 있다가 일찍 왔어요. 너님도 여행 좋아하세요?


저는 여행을.. 많이 안 해봐서 제가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주도 가셨잖아요.


제주도에서는 거의... 집에 있었어요.


저도 여행가면 집에 있어요ㅋㅋㅋㅋㅋ 스페인에서 한 달씩 총 3개월 있었는데 항상 같은 곳으로 가서 같은 곳에 누워 있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 거기 유명하다는 성당들도 안 보고 왔어요. 언젠가 다시 가겠지 하는 마음에. 누워있어도 저는 그게 되게 힐링 되던데.


그냥... 스페인 날씨가 좋았어요. 그리고 여행지가면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얘기하다보면 사람들 되게 많이 만날 수 있어요. 로컬들 사는 게 궁금해서 어디 여행가면 항상 친구 길거리에서 사귀거나 해가지고 그 집에서 오래 머물고 그랬었거든요.


오오 용감하시다.


건강걱정을 하도 하다 보니까ㅋㅋㅋ 다른 건 겁이 없어요. 스페인에서도 한 달 친구 집에서 묵었고. 미국 여행 갔을 때도 내내 친구 집에서 묵었고. 이탈리아에도 그렇고 어디 여행가면 다 그런 식으로 지냈던 것 같아요.


건강걱정이 안 될 정도로 건강킹이 되시면 삶의 질이 엄청 높아질 거 같아요 너님.


저도 약간 그럴 거 같아요. 선입견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여튼 여행가선 어디 돌아다니는 것보다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고 그래요. 그래서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 여행 다녀오면 항상 생각이 바뀌어 있어요.


태국 여행 다녀와서는 영어 공부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거기서 만난 사람이 약간... 이런 일을 같이 해보지 않을래? 라고 물어보는데 제가 너무 실력이 딸려가지고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못했거든요. 일단 제가 영어를 좀 잘하면 나중에 기회가 많아지겠다고 느껴서 다녀와서 엄청 열심히 하고 있어요. 물론 그 제안에는 언어 말고도 다른 능력도 필요했지만요.


다른 여행 때보다 태국 가서 가장 충격 받았던 거 같아요. 사람 사는 것도 그렇고. 아시아인데도 오히려 더 다르더라고요. 유럽이나 미국 갔을 때가 더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잉 어떤 면에서요?


태국은 불교랑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잖아요. 집 밖에도 잿밥 같은 거 내놓고. 사람들 사는 방식 곳곳에서 종교와의 관련성을 발견하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태국 같은 경우는 유럽애들도 많이 오는데 제가 여태 유럽에서 만난 유럽인들이랑 되게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진짜 놀자!! 하는 애들이 많이 오는 거 같아서요. 거기서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종차별은 아니겠지만 약간 벽 같은 게 느껴져서요.


유럽 호스텔에서 만났을 땐 막 쉽게 어울리는 느낌이었어요. 왜냐면 각국에서 오니깐. 근데 태국에선 서양인들이 되게 많다 보니깐 딱 인종끼리 나눠서 놀더라고요. 언어의 장벽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그냥 인종의 벽 같은 거 같아요. 같은 방 쓰던 남자애가 있는데 저나 동양인들한테는 한 번도 말을 안 걸다가 서양인들이 오면 무조건 말을 걸더라고요. 러시아 사람들도 온 적도 있는데 생긴 게 서양인이면 말을 걸더라고요. 물론 단편적인 예지만, 태국에선 서양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한 적이 몇 명 없었어요.


너님이 요즘 생각하는 것들 중엔 “친구”도 있었어요. 이어서 가족, 남친, 그리고 돈.


내가 왜 이런 거 썼지?ㅋㅋㅋㅋㅋㅋ 가족이랑 그때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 그런 거 같아요.


근데 아까 한 얘기 들어보면 어머니 관련해 안 좋은 기억도 있는 거 같은데 동시에 엄마 걱정을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그게 애증이죠. 엄마가 조울증이 있어서 저한테 엄청 잘해주다가도 폭언을 하기도 하고, 갑자기 다시 잘해줘요. 그게 반복이 되니깐... 그런 감정이...힘들었어요. 너님은 부모님이랑 사이 좋아요?


저는 부모님이 별로 압박 의지가 없으신데다 제가 워낙 탈압박 능력이 출중해서... 그냥 후리했어요. 기대도 크게 안 받고. 아니 그나저나 왜 갑자기 제 인터뷰를


ㅋㅋㅋㅋㅋ 아니 궁금했어요. 일탈 이런 것도 안하시나. 저도 이제는 술도 잘 안 먹고 기도 열심히 하거든요. 교회 가서. 예전에 더 힘들 땐 한 1년 동안 망나니처럼 살았어요. 그 때 이태원에서 살았었는데 거기 마음 둘 곳이 없어가지고 돌아다니는 사람 되게 많아요.


정신이 너무 혼란스러우면 분산시킬 데가 필요하잖아요. 이태원에는 호스텔 이런 거 되게 많거든요. 거기 가 있으면 사람들이 거실 같은데 모여서 계속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다들 계속 거기 있는 거예요. 저도 그렇게 산 적이 있거든요.


그 사람들 다 불안한 사람들이고 각자 다 가정사가 있어요. 어떤 오빠는 좋은 학교 나오고, 집이 되게 부자예요. 오빠라고 하기엔 지금 마흔 살이긴 한데ㅋㅋㅋㅋ 처음 만났을 땐 서른 여섯 살이었으니깐. 여튼 그 오빠도 되게 똑똑 했거든요. 근데 외로운 건지 병이 있는 건지 이태원 와서 4년째 살고 있어요.


4년 째 사니까 호스텔 주인이 남은 방 1인실로 보내주겠다고 해도, 공짜로 보내주겠다고 거기 살라고 해도, 10인실에 계속 남아있어요. 새벽에 펍 같은 데 가서 아침 8시까지 일 하는데 귀가 잘 안 들려요. 몇 년 동안 시끄러운 데서 일해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음이 좀 허할 때 그렇게 되더라고요.


뭔가 나를 소진시키고 싶은 건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너무 힘든데 이따 놀 생각에 좀 기뻐져요. 놀고 나면 또 우울해. 근데 이따 또 놀거니까 다시 괜찮아요. 설명하자면 뭐 이런 상태인데... 너님은 마음이 안정되어서 그런가... 그럼 자기계발 이런 것도 하는 거 있어요?


아뇨 그냥 그때그때 별 도움은 안 되고 하고 싶은 것만 해요.


주변에 보면 진짜 자기계발에 미쳐 사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래서 그냥 물어봤어요.


너님은?


없어요.


영어공부도 자기계발이잖아요.


자기계발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건 진짜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 (운동은?) 저 운동하면 되게 기분 좋아져가지고. 근데 저번에 너무 무리했거든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한 두 시간씩 운동하고 학교가고 그랬어요.


무엇을 위한 운동이었어요?


정신건강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거 하다가 정신이 무너졌어요. 힘들어서 (ㅋㅋㅋㅋㅋㅋ) 이제 그런 거 안 하고 이따금 등산이나 다니려고요. 매일 해야 하니깐 스트레스 받아서요.


돈, 직장 이런 얘기도 적었었는데.


그땐 멘탈 좋았거든요. 지금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별로 생각 안 하는 거 같아요. 걱정은 되는데... 당장 그걸로 나를 괴롭히고 싶진 않아요.


그럼 그 얘긴 패스~


일단 과연 학교를 마칠 수 있을까 이게 걱정이에요. 아직도 1년 남았어요.


저도 졸업 아직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졸업 이후엔..?


최근에 만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직을 되게 많이 했어요. 항상 자기계발 하려고 계속 스터디다니고 그러더라고요. 계속 더 나은 자리를 찾기 위해서. 그런 얘길 들으니까 아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좀 압박감이 들긴 했어요.


쭈욱 들으면서 궁금한 건데 너님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요?


그냥 알던 사람들요. 여행가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이태원에 있을 때 사람들 되게 많이 만났거든요. 그 때 가족이랑 안 좋아서 집을 나왔는데 지하철 안에서 계속 건강 체크하다간 돌아버릴 것 같아서 통학을 이태원에서 했어요. 4월부터 알바를 했었는데 그러다 남자친구를 만났어요. 남자친구가 호스텔 사업을 하고 있어서 저한테 방을 공짜로 줬어요. 호스텔에 공짜로 있으니까 거기서 사람들을 되게 많이 만났죠.


별 사람 다 봤겠네요.


네 이상한 사람도 많이 보고ㅋㅋㅋㅋㅋ 론니플래닛 한국판 쓴 사람도 만나고, KBS PD라는 사람도 봤어요. 되게 잡다한 사람들은 많이 아는데 친구라고 할 수는 없는..? 그런 사람들.


잠깐이라도 그 때마다 듣는 신선한 얘기도 많았겠어요.


그렇죠. 되게 신기한 게 그런 얘길 들으면 진짜 다양한 사람이 있는 걸 느껴요. 근데 그걸 또 금방 잊고 살아요.


무슨 얘길 하고 싶느냐는 질문에 인간관계? 라고 했는데.


그땐 관심이 인간관계였나 봐요. 근데 별로 기대를 안 해요 사람들한테. 자연스럽게 기대가 안 되더라고요. 그냥 제가 기대하는 사람이 몇 명 없는데... 그 사람들한테 좀 많은 기대를 하는 편인 거 같아요. 기대 때문에 받는 상처는 별로 없어요.


지금 해야 할 일 없으면 하고 싶은 건 뭐예요.


해야 할 일은 항상 없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질문을 좀 바꿔도 돼요? 마음이 안 불편할 때 하고 싶은 일. 그니까 마음이 자유로울 때. 저는 정신적으로 고통 받지 않는 게 해야할 일이거든요. 음... 저는 사람들 많이 만나고 싶어요. 사람 만날 때 항상 마음이 꾹 닫혀있는 것 같거든요 제가. 같이 웃고 싶은데 웃기지가 않는 거예요. 이 사람한테 어떤 말을 해줘야하는 타이밍인데도 마음이 제가 불편한 상황이니깐 이 사람한테 온전히 집중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근데 제가 만약 마음이 좋아지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저 되게 좋을 거 같아요. 누군가를 만나는 게 재밌을 거 같아요. 그리고 어디 같이 놀러가고 싶어요. 차라리 모르는 사람 만나는 건 편해요. 나에 대해서 모르니깐. 근데 막 아는 친구들 만나면 막 물어보잖아요. 저에 대해서 어떻게 지냈냐고... 근데 그런 걸 말하는 게 마음이 너무 힘든 거예요.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같이 여러 가지 하고 싶어요. 친구들, 가족들이랑.


제가 하는 뻘짓이 더 긍정적일 수 있도록 쓴 소리 부탁해요. 딱히 생각 안 해봤으며 인터뷰 소감을 얘기해줘도 되고요.


어... 되게 속 시원해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 할 수 있어서 좋고 진짜 시원하네요. 건강에 집착하게 된 과정도, 그 자체도 힘들어했는데 그 상황에 대처하는 마음에 대해서 너님이 해준 말이 너무 와닿아서 마음이 좀 후련해졌어요. 되게 좋은 일 하시는 거 같아요.ㅋㅋㅋㅋㅋ 커피까지 사주시고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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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괜찮지만 안 괜찮다고 하면 진짜 안 괜찮을 것 같아서 괜찮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자기 최면 같아서 기분이 찝찝할 때도 있지만 대개 확실한 마음의 평화를 보장해주어서 그때마다 안도하곤 해요. 마음 속 경험치로 차곡차곡 쌓아 뒀다고 생각했던 기분들은 가끔씩 스스로 뒤엉켜 굴러다나는데 괜찮다는 말로 조잡하게 엮어놓아서 흠집없이 풀기가 쉽지 않아요. 적어도 남의 마음은 찌르지 않겠다는 생각에 대충 쑤셔뒀던 내 마음한테 더이상 미안하지 않도록 내 마음에 좋은 생각을 자주 했으면 좋겠어요.


*어쩌다보니 너님들의 얘기를 옮기는 게 점점 늦어지고 있어요. 여전히 자신의 인터뷰를 기다리고 계실 분들께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올해 안에는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아 물론 그다지 자신은 없어요. 날 더운데 기다리느라 너무 힘 빼시진 마시고 그저 맘에 좋은 생각 하고 계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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