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님의 스물

개똥같은 인터뷰 #23

by 태희킷이지
개똥같은_인터뷰_로고(흰).jpg

https://youtu.be/T50dVmycuCo

여느 때보다 느린 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는 너님이 천천히 여유롭게 걷길 바라요. 나도 좀 그래야지.



사장에서 인턴까지 균일하게 임금을 받고 있다며 동료들을 모집하던 글에 댓글이 하나 달렸어요. 댓글의 주인은 이 회사가 맘에 들었다면서 인턴으로 일하고 싶대요. 신이 나서 이제 동료가 생길 수도 있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했어요. 하지만 친구들은 사장도 인턴도 균일하게 무임금으로 일하고 있는 현실을 알면 도망갈 거래요. 진짜 그 사실을 알아낸 건지 댓글의 주인은 한동안 연락이 없었어요. 그리고 다섯 달 뒤에 편지 같은 메일을 한 통 받았어요. 서로 많이 기다렸던 인터뷰를 드디어 해요.




오래전에 댓글을 달았잖아요. 인터뷰하고 싶다고.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떻게 아시고 신청하신 거예요?


입학원서를 다 수시전형으로 써서 학교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놔야 했어요. 제 1순위가 경희대 언론정보학과여서 구석구석 찾아보다가 경희대 블로그에 들어가게 됐어요. 거기에 너님 블로그가 소개되어 있더라고요. ‘뭐지?’ 하고 들어가서 개똥같은 인터뷰를 하나 봤는데 좋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대학에 가게 되면 이런 거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있었는데 경희대는 떨어졌죠. 불합격 뜨고 좌절해서 너님 블로그에 바로 댓글 단 거거든요.


원래부터 수시에 초점을 맞추고 입시를 준비하신 거예요?


사실 입시 준비라고 생각하고 준비한 건 아닌데 그냥 제 성향이 수시 쪽으로 더 맞아서 수시전형을 생각하곤 있었어요. 워낙 교내외 활동 같은 거에 재미를 느껴서 많이 했으니까요.


학생회도 하고 대외활동도 해서 바쁘셨다고 적어주셨어요. 어떤 활동하신 거예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의 줄임말로 정세청세라는 활동을 했어요. 청소년들만 참여 가능한 인문학 토론 행사에요. 인디고 서원이 주최를 하긴 하지만 기획부터 행사 집행까지 다 청소년들이 하는 행사에요. 20개 지역의 도시에서 동시 진행되는데 토론이라고 해서 찬반 토론은 아니고요. 예를 들어서 ‘나’, ‘사랑하다’ 이런 주제라면 기획팀이 그에 관한 영상이나 자료를 찾아 행사 기획을 해요. 그러면 청소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와 ‘사랑’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거예요. 전지에 토론 중 나온 생각들을 모아서 적어본다던가 관련된 활동 같은 걸 하면서 생각을 나누는 거예요. 지난번엔 <만주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녹음해서 녹음본을 만주에 보내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어요. 정세청세도 하고 제가 학생회장이라서 회장역할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많이 했어요.


우어 바쁘게 사셨구나.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고 싶어서 일찍부터 이런 걸 찾아보셨나 봐요?


사실 저는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단 나가서 직접 보고 듣는 걸 좋아해서요. 게다가 입시 체제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 것도 있어요. 저희 학교가 유난히 좀 그런 게 심했어요. 종합고등학교라고 전문계랑 인문계랑 같이 있는 학교였거든요. 근데 인문계로 전환하는 과도기라서 특반을 만들고 특반 학생들을 엄청 돌려서 실적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엄청 기계처럼ㅋㅋㅋ 시 수업 같은 게 있어서 신청을 했더니 니 국어 성적이나 올리라고 시 수업 못 듣게 막아버렸어요. 시 수업 들으러 가면 자습실이랑 사물함 다 빼버린다고 할 정도로 그런 압박이 엄청 강했어요.


시 수업은 뭔데요?


창작 수업이었어요. 말 그대로 시 쓰는 거요. 제가 시를 좀 좋아해서 듣고 싶었거든요. 그런 수업 같은 것도 제한이 있고 입시에 대한 압박이 강했어요. (학교에서 만들어 놓고 학교가 못하게 해요?) 되게 좋은 선생님께서 자기 나름대로 애써서 시인 제자를 불러와 개설한 거예요.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저는 제 나름대로 정세청세를 하면서 그 균형을 맞춘 거예요.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 같은 것들을 풀었죠. 항상 열한시 반에 자습을 끝내고 집에 오면 열두시인데 그때부터 새벽까지 행사 준비하고 기획서 올리고 하면서 사실 되게 바쁘긴 했어요. (그걸 동시에 하는 거예요?) 행사 날에는 하루에 거의 서너 시간 자면서 준비했는데 바빴지만 무지 좋았어요. 사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만큼 저한테는 그 활동이 일종의 지지대 같았어요.


근데 학생회장도 했다면서 이런 활동을 시간 쪼개서... ㄷㄷ 원래 일을 찾아서 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가요? 어릴 때부터 학생회도 많이 했다고 했잖아요.


솔직히 학생회장이 특별한 자리라기보다는 정말 힘든 자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자기 시간은 다 내놓는 데 반해 어떻게 보면 큰 혜택이라는 건 대학 올 때도 별로 없어요. 회장은 전국에 몇 만 명이 있으니까. 전 그냥 그 활동에 애정도 되게 크고 모두를 위해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인데 학생회 활동 같은 걸 하다 보면 주위 친구들이 “아 나는 네가 할 줄 알았어” 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진 않았어요. 마치 제가 항상 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거길 찾아들어가는 이야기하는 뉘앙스라서요. 그래서 이번에 대학 와서는 학생회를 좀 안 하려고 생각했어요. (‘다 해 먹으려고 한다’ 뭐 이런 건가요?) 사실 다 해 먹기보다는 그 친구들한테 퍼 먹여주는 게 훨씬 많긴 하지만 그런 말이겠죠. 근데 내가 정말 나도 모르게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템포 쉬고 뒤에서 있어보자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결국 지금도 학생회 한다면서요.


수시 6개 중 5개를 언론, 신문방송 관련 학과에 지원하고 1개만 국문과에 넣었어요. 문학을 좋아해서 플랜 B라는 생각으로 국문과에 지원해봤어요. 국문과가 지금 이 학교였는데 결국 여길 왔네요. 물론 문학을 많이 좋아하긴 하지만 입시 준비할 땐 1순위였던 경희대에 올인했었던 탓인지 스스로 괴리감이란 게 좀 있었어요. 학생회를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학과에 대한 애정이 필요해서라고 할까요. 학과에 관련된 일을 알고 행사에 많이 참여하다 보면 애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적응하기 위한 이유였어요.


전공 공부는 어때요?


학과 때문에 고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좀 더 넓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요. 언론정보학과라면 커리큘럼이 좀 더 전문화되어 있을 텐데 국문과라고 하면 글, 말단위로 배우는 게 더 넓으니까 시야를 넓힐 기회려니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너님이 되게 큰 역할을 하신 게 언제든 찾아오라고 하셨잖아요. 경희대 불합격 통보받고 저는 언론정보학과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 학과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고 관심 있는 일을 아무것도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언제든 찾아오라는 댓글 보면서 ‘어딜 가든 간에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으면 끝까지 내가 찾아서 가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덕분에 나름대로 살아났거든요. (좌절감이 꽤 크셨나 보네요.) 좀 많이 컸죠. 아무래도 인문학 행사를 많이 하다 보니까 인문학을 그나마 중요시하는 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사실 어떤 대학들은 순수학문을 많이 포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경희대 같은 경우는 아직 순수학문을 많이 존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뭐 제가 볼 수 있는 건 이미지밖에 없지만 되게 가고 싶었어요. 저야 밖에서 바라 본거지만 제가 생각하던 거랑 되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바쁘게 살았으면 대학 와서는 힐링 타임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님?


저는 솔직히 지금이 그 힐링 타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수능 전에 대학이 발표 났어요. 수능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수능 끝나자마자 알바를 시작해서 서울 오기 직전까지 계속 알바를 했어요. (무슨 알바하셨어요?) 마트에서 면도기 팔고, 음식 팔고, 이런저런 거 했었는데 그러느라 애들이 한창 미치도록 놀자 이럴 때 저는 안 놀았거든요. 못 놀았다는 게 더 맞을 거 같네요.(왜요 알바는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에요?) 알바를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는 필요하니까 하는 거죠. (네 저도요ㅠ) 마트 알바가 학생치고 일당은 센데 오후 1시부터 9시 반까지라서 사실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대학에 오면 저한테는 그게 힐링 타임이 되는 거였어요.


꽤 벌어놓으셨어요?


한 200 정도 벌었는데 120 정도는 기숙사비로 다 넣어버려서 남은 돈이랑 집에서 조금 보태준 돈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기숙사비를 혼자 내심?) 네 급한 건 제가.


기숙사 생활은 재밌어요?


기숙사 생활은 되게 좋아요. 워낙 시설도 좋은데 무엇보다 룸메이트랑 잘 맞아서요. 부산 사람인데 한마디 나누자마자 아 경상도!이래 가지고 무지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다른 룸메이트끼리도 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다른 친구들 얘기 들어보니까 그냥 같이 살기만 하는 사람인 경우도 있더라고요. 아프면 좀 챙겨주고. 술 많이 마셨을 때는 데리고 와주고 그럴 줄 알았는데..저랑 룸메 언니는 언제 어디 같이 가자! 쇼핑하자! 하면서 같이 놀기도 하고 지나가다 생각나서 야식 사 오고 이러거든요. 룸메이트랑 관계가 좋아서 기숙사 생활은 만족해요.


친구들은 서울로 많이 왔어요?


친한 친구들이 많이 왔어요. 제일 친한 친구들이. (많이 힘이 될 거 같아요.) 근데 아직 못 만났어요. 지금도 보자고 난린데 서로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보고 있어요. (한창 고등학교 친구들을 그리워할 때잖아요. ㅋㅋㅋ) 네 엄청 그리워요. 엄마 아빠는 볼 수 없으니까 친구들이라도 보는 게 엄청 크고. (저도 친구를 통해 대리 경험하는 거지만 집 밖에 나와 사는 서러움이 있더라고요.) MT 준비물이 쌀 한 줌인데 나와 살면 쌀 한 줌을 따로 살 수가 없잖아요. 그런 거 생각하면 ‘아 집이 아니니까 쌀 한 줌도 못 챙겨가는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라면 하나 사 가야죠. 뭐) 아 맞다 라면 사가야 하네. 오늘 엠티 가는데 까먹었었어요.


이야기가 샜지만 이전에 워낙 바빴던지라 요즘 여유가 느껴진다고.


여유를 느끼고 있다기보다는 전에 비해 그냥 덜 바쁜 거 같아요. 제가 학생회를 하는 이유 중에 그런 것도 있어요. 사실 다 놓고 싶은데 다 놓아버리면 다시 못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제 스스로를 봤을 때 아무것도 안 하거나 열심히 하거나 두 가지 타입이거든요. (적당히 못하고?) 좀 그런 거 같아요. 시작을 하면 끝을 내야 하는 스타일이라서. 움직일 땐 확실하게 움직이고 놓을 땐 아예 다 놓아버리기 때문에 적당히 못해요.


그래도 비로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가치 있다고 느끼고 있다면서요.


자기 시간이 많이 부족했었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있지만 고등학교 땐 그냥 쉰다는 게 허용이 안 되는 체제였기 때문에 저한테는 정세청세가 쉬는 거였죠. 그나마 정세청세라는 타이틀을 보여줘야 자율학습 빼고 나가는 게 승인이 되는 학교였으니까.저희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교를 나가서 오후 6시까지 자습시켰어요. 저는 다 그런 줄 알았는데 대학 와 보니까 다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주말에도 학교 안 가고 가도 일찍 마치고.


저는 선덕여왕 보러 간다고 야자도 안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옛날 얘기임?) 아니요. 선덕여왕 기억나요. 저도 봤어요.


자신 있게 꿈이 기자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질문에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다고 하셨어요. 대학 지원하신 것만 봐도 꿈이 확고하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르겠어요. 뭘 하고 싶으냐고 하면 나오는 말이 기자밖에 없긴 한데 지금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 답답한 것 같아요. 고3 때는 대학에 가면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겠다는 계획이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 관련된 활동도 안 하고 뭔가 노력을 안 하고 있는데 그냥 말로만 던지는 것 같아서 좀 머뭇거리게 되더라고요. 원래 언론정보학과에 갔으면 전공 공부가 그런 분야니까 이런 얘기도 쉽게 했을 수 있는데 지금 국문학을 배우고 있으니까 기자가 되겠다는 말이 말뿐인 것 같아요. 말로만 하는 것 같아서 그게 싫고요. 어쨌든 제가 그렇게까지 열망했던 직업이니까 이제는 관련된 활동을 하나 해보려고 해요. 일단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 학교에 있는 학회나 동아리도 아무것도 안 들어갔어요. 좀 밖으로 나가서 찾아보려고요. 학교 안에 있는 것보다 학교 밖으로 나가서 원했던 걸 해 보고 결정을 할 거예요.


기자를 하고 싶다는 꿈이 생긴 계기라도 있어요?


커다란 계기 같은 건 없는데. 사실 꿈을 직업으로 얘기 안 해도 된다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게 제 꿈이거든요. 제가 볼 수 있는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게 진짜 장래 희망이에요. 근데 제가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그 두 개를 합쳐보니까 기자라는 직업이 있었어요. 그리고 워낙 좀 사회현상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어서요. 솔직히 혼자 살려면 아무것도 안 보고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제 주위를 돌아가는 것들을 모르고 그냥 나만 아름답게 살 수도 없을 거고요. 그 돌아가는 세상을 알 수 있는 직업도 기자라고 생각했어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봐야 하는 게 일이니까.


무조건 기자다! 라기보단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는 게 진짜 꿈이네요.


기자보다 더 맞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충분히 바뀔 수 있겠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게 꿈이니까 너님을 만난 것도 제 꿈 중에 하나죠. 이젠 움직여야 할 때인 거 같아요. 적응도 어느 정도 됐으니까 꿈과 관련된 활동을 해봐야죠.


인터뷰하는 것도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라고 써주셔서 영광이에요. 하고 싶은 것들에는 뭐가 있었어요?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따로 고민을 해봤던 적은 없어요. 사실 대학 가면 뭐가 달라질 거야 하는 기대는 전혀 없었거든요. 대학 가면 내 인생이 필 거라는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힘들면 힘들었지 고등학교 생활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전 지금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동기부여했던 것 같은데) 글쎄요. 대학이 주는 동기부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거? 11시 반까지 학교에 안 잡혀있어도 되니까.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제가 고등학생이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죠. 인터뷰하러 간다하면 어디에? 누구랑? 무슨 기관에서? 증명서 나와? 이렇게 추궁이 이어지니까요.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자기소개서에 들어가는 스펙으로 보여는 거니까.


진짜 좋아서 하는 정세청세 활동도 선생님 입장에서는 스펙이니까 보내주는 거였어요. 일종의 타협이었죠. 이건 스펙이니까 갈게요 하고 나왔으니까요. 그렇게 안 말하면 나갈 수가 없었어요. 스무 살이 되면 이 인터뷰든 뭘 하더라도 스펙 때문이라고 얘기 안 해도 되고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이 주체적인 것 같아 그런 건 되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땐 워낙 알바를 계속하고 있다 보니까 알바를 안 하고 있다는 것도 좋을 것 같았어요. 알바를 돈 때문이 아니라 경험을 위해 할 수 있는 시기가 될 수 있으니까.


스무 살이니까 낭만을 뱉어 봐요. 다른 거 다른 거.


사진이요. 사진기 들고 돌아다니는 거에 대한 로망이 컸어요. 그래서 알바한 돈으로 사진기를 샀어요. 알바를 해서 엄청 보람차다 뭐 그런 건 없었는데 그 돈으로 사진기를 사서 의미도 있고 제가 아끼는 물건이에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요. 너님 사진기처럼 생긴 사진기만 봐도 좋거든요. 제꺼 생각나서. (서울에 사진 찍으려고 어디 찜 해둔 데는 있음?) 아직 서울 지리를 잘 모르지만 남산 좀 가고 싶어요. 깁스 때문에 2주간 돌아다니진 못했는데 제가 사는 기숙사에서 남산이 보여요. 그 위에 올라가서 여길 좀 내려다보고 싶은 거예요. 제가 앞으로 돌아다닐 곳이니까.


그리고 그냥 ‘사랑하자’가 스무 살의 계획이에요. 사랑이 이성 간의 사랑도 포함을 하겠지만 더 넓은 범위로요. 항상 사랑하면 이성 간의 사랑을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사람이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은 사람뿐만 아니라 개 같은(?) 동물도 공간도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 서울 땅에서 사랑하는 장소를 하나 만드는 것도 계획 중에 하나에요. 사랑하는 카페나 사진 찍는 장소도 만드는 것도요. (사랑하는 걸 많이 만들자!) 그래도 저부터 사랑하는 게 먼저에요. 사랑하는 걸 만드는 일 자체가 절 사랑해서 하는 일이니까.


키야 인터뷰 준비해오신 거 같아요.


ㅋㅋㅋㅋ 어제 어떤 인터뷰일지 상상해보긴 했는데 글쎄요. 사실 정제된 대답을 하는 건 아닐 거 같아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왔어요. 저도 몰랐는데 자기소개서 파일명을 ‘개똥같은’ 이라고 저장해놓고 보냈더라고요. 너님이 답장으로 ‘개똥같은’ 자기소개서 잘 받았다고 하시길래 왜 이렇게 썼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ㅋㅋㅋㅋㅋ 하여튼 너님이 하고 있는 이런 인터뷰가 왜 개똥같은 인터뷰일까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개똥을 무슨 의미로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똥도 약에 쓰인다고 하잖아요. 개똥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이 인터뷰를 보면 별로 쓸모도 없어 보여도 아는 사람 눈에는 그 가치가 보이는 인터뷰인가? 이런 생각했는데 너님한테 듣고 싶었어요. 왜 개똥같은 인터뷰인지.


처음 황색언론이라는 말이든 개똥같은 인터뷰든 같다 붙인 건 가치를 낮춰 부르는 말이었어요. 이걸 들여다보는 상대의 기대치를 낮추면서 결국엔 내가 내 맘대로 막 할 거라는 의미 ㄲㄲㄲ


개똥같다고 하니까 되게 마음이 놓였어요. 근데 진짜 들어준다고 하셨잖아요. 들어줄게 니 얘기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학과 친구들한테 하지도 못했고 사실 집에 이야기하는 건 걱정 끼치는 것 같았어요. 일단 깁스 한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거여서.... 기숙사에 마산, 부산 친구들이 많이 사는데 어디서 삐끗했냐고 물어 봐서 명동에서 그랬다 하니까 하여튼 촌년 티 낸다고 사람 많은데 가서 넘어진 것 보라면서 그래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것도 대학생활의 에피소드죠. 스무 살 개강 셋째 날에 깁스해서 2주간 갇혀있고.... 제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네요.


(눈을 반짝이며) 이건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여대는 어때요.


처음에는 여고 출신이라서 여자들끼리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어요. 아 맞다 대학에 대한 로망 중에 하나는 남자 선배, 남자 동기 같은 다른 성과 함께 있다는 기대도 있었어요. 여대는 딱 하나 지원했는데 하필이면 여대를 왔네요. 올 운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편해요. 그리고 아무래도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에요. 1학년이라고 출석 안 하고 그런 거 없고 거의 전원 출석에 과제도 안 빼놓고 하고 그런 건 나름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아쉬운 건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데 사실 같은 성끼리 모이면 나오는 이야기가 한정적이잖아요. 말 그대로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여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니까. 다른 성끼리는 같은 주제라도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그런 기회를 못 잡으니까 아쉬웠어요. 그래서 다른 학교 남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미팅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아 그래서 미팅에 전념하고 계신가요?


한 번 나가봤나. 아래께에요. 근데 하... 역시 미팅이라는 소재로 만나는 건... (한계가 있어요?) 한계가 아니라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다신 안 가려고요. 전 그 사람들 사는 얘기나 어떤 주제든 편하게 이야기하길 원했어요. 그리고 그런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성으로 말고. 전혀 아니더라고요. (미팅인데 다 놀러 나왔겠죠.) 노는 것도 재미없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찍 파토내고 왔어요.


동아리에서 만나요. 연합동아리. 동아리는 뭐 생각해둔 건 있어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게 영어밖에 없고 그렇게 오래 배운 영어도 잘 못하는데 그냥 외국인이랑 얘기하는 거 무지 좋아해요. 문화 교류단이라고 학교 어학당에 온 친구들이랑 한국 문화를 같이 즐기는 동아리 같은 걸 생각해봤어요. 아직 신청 기간이 아니라 지켜보고 있는데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찾으러 다니고 있어요. 다양한 사람 중엔 외국인도 포함되는 거고요.아 그리고 꼭 배우고 싶은 게 하나 있었는데 그전에도 배우려고 하다가 못 배운 건데 수화를 배우고 싶었어요. 왜냐면 제가 수화를 하는 순간부터 저는 말을 못하는 분들과도 대화가 가능하게 되는 거잖아요. 또 그분들의 생각을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거고요. 그렇게 점점 대화의 폭을 넓혀가고 싶어서 외국어도 수화도 배우고 싶어요.


사람을 좋아하나 봐요.


사람을 좋아하니까 이런 거겠죠. 만나는 것도 좋고 대화하는 것도 좋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좋아요. 얻어 가는 것도 많고. 전 대화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이라서요.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좋아요. 여기 오기 전까지 겁나 우울했어요. 페이스 북에 “보고 싶다 그립다” 이렇게 적고 나왔다니까요. (친구들한테?) 네 고등학교 친구들한테.


너님의 똥 같은 기분도 리프레시 해주는 저희 회사에 대해 욕이나 칭찬. 칭찬은 하지 마요. 많이 받아요. 훗.


칭찬받을 만 하니까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렇게 인터뷰이 만나러 오시고 시간을 들여서 뭔가 하고 계시잖아요. 그것도 자기 혼자 좋은 일이 아니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도 마음이 편해지는 일을요. 살다 보면 자기 이야기를 남한테 할 수가 없을 때도 있는데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는 거니까. 또 동시에 너님도 얻어 가는 게 분명 있으실 거잖아요. 내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혼자 좋은 게 아니라 다 같이 좋은 일을 하고 계셔서 좀 좋아 보였어요. (그러니까요 세상이 그걸 다 알아야 하는데) 저도 뭔가 그렇게 나도 좋으면서 남도 좋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더 좋았어요.


모든 인터뷰 내용을 읽어본 건 아니지만 고3 때 처음 보고 딱 느낀 건 특별한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어요. 일상생활에선 볼 수 없는 조금은 특별한 배경이나 환경이 전제된 그런 인터뷰만 보다가 비슷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게 막상 글로 풀어놓으니까 또 다르더라고요. 그 사람이 좀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찾는 거 같아서 좋았어요. 최근에 고3 학생 인터뷰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 약간 고민하는 부분이 저랑 비슷했고 이곳을 찾은 루트도 비슷해서요. 인터뷰를 보면서 인터뷰이의 이미지를 조금씩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그리고 인터뷰마다 유투브로 음악 올리시잖아요. 인터뷰를 쓰고 노래를 생각하시는 건지 그냥 원래 좋아하는 노래를 올리시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노래도 좋았어요. 뭔가 인터뷰이들한테 주는 선물 같은 느낌? 지금 저처럼 울적한 인터뷰이한텐 인터뷰 시간이 이미 충분히 선물 같은 시간이기도 한데 그게 기록으로 남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지면 그 페이지를 보고 그 노래를 들으면 다시 그때가 생각나고 다시 힘도 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거거든요. 영상도 좋아하고. 기록은 기억에 남잖아요.


음 욕은.... (멱살 잡고 욕하시진 마시고요.) 그냥 딱 지금만큼만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왜냐면 여기서 조금 더 자유로우면 가벼워지는 것 같고 좀 더 무거워지면 그건 개똥같은 게 아니어버리는 것 같아서요. (무거워진다는 게?) 조금 더 형식적이어야 한다거나 어떤 교훈적인 게 담겨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게 옐로저널리즘이 되지 않아 버릴까 봐요. 조금 더 사람들이 잘 보는 글로 바뀌게 되다 보면 흔들릴 것 같아요. 찾아가서 봤을 때 의미가 더 깊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마지막 질문 자체가 좀 남들의 평판을 의식하고 있는 질문이네요.


그렇죠. 개똥같이 하겠다고 시작하셨으면 개똥같이 하시고 개똥같이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해요. (멋있는 말이네요.) 좀 그러네요. 사실 정세청세라는 그룹도 처음에 뭔가 불안정했지만 그 불안정한 맛이 있었거든요. 애들끼리 하다 보니까 실수도 있었고 문제도 있었지만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던 과정이 좋았어요. 근데 정세청세가 조금씩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해 봤어요. ‘좀 변한 거 같다. 너무 반복되는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그건 우리가 컸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활동을 하면서 컸기 때문에 이게 반복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거다. 너도 맨 처음 이 자리에 왔을 땐 너무 놀랍지 않았냐. 이제 새로 들어온 애들은 이게 놀라울 거다.’


오...


정세청세의 활동이 멈춰 있는 게 아니고 이곳만의 특색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인정하고 떠날 때 떠나야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활동 자체의 특색을 변화시켜야 하는 게 아니고 거쳐가는 사람들이 성장하거나 생각이 바뀔 때 떠나는 거라고요. 비슷한 의미로 여기는 계속 개똥같이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인터뷰이들이 거쳐가는 게 맞다고 보는 것이지 이 인터뷰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마다 특색이 있으니까. 너님이 정확히 어떤 걸 목표로 삼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데 뭔가 구체적이고 전형적인 느낌을 부여하려고 바꾸려고 하다보면 너님이 하는 인터뷰도 그냥 다른 것과 똑같은 것들이 되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항상 발전만이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제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계속 그렇게 개똥같이 남아있으면 좋겠어요. 마이페이스 유지하시면서.




P3230368.jpg


사실 인터뷰를 위해 준비해 간 질문을 하나 빠트리고 와버렸다. 인터뷰이가 보내 준 자기소개의 시작은 ‘다가오는 봄에 어울리고 싶은 ○○○입니다’ 라는 문장이었는데 봄에 어울린다는 게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답이야 인터뷰이의 머릿속에 있겠지만(진짜 답은 댓글로 달아요!) 한 번 넘겨짚어 봐야겠다.

아무래도 눈에 보이게 쑥쑥 자라는 건 여름의 몫이니까 아마도 눈에는 안 보여도 땅속에서 꿈틀꿈틀 대는 게 봄에 어울리는 모습일 것 같다. 그렇다. 아직 봄이라서 땅속에서 꿈틀대느라 이 인터뷰가 빛을 못 보는 게 분명하다. 오늘도 이렇게 난 정신 승리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방학이 없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