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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없는 삶

개똥같은 인터뷰 #39

by 태희킷이지

https://youtu.be/sZCHybJzlKo


여덟 살 이후로는 인생에 방학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가을만 빼곤 계절마다 돌아오는 방학이 너무 익숙해서 방학에는 끝이 있어도, 방학이 있는 삶에 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던 것 같아요. 없는 방학도 만들어서 살아가는 제가 방학이 없는 삶을 2년째 살아내고 있는 인터뷰이를 만나러 가고 있어요.





인터뷰 신청 감사합니다. 최근에 올라온 인터뷰를 보고 두 번째 인터뷰 신청해주셨다고요.


엄청 치열하게 살고 있는 친구인 거 같은데 그 친구 얘기 읽으니까 나 취준할 때 생각도 나서 예전에 인터뷰한 거 봤거든. 그 당시에 인터뷰하면서 나중에 취직하면 다시 인터뷰를 해보면 좋겠다했던 생각이... 지금 나서 신청했어. 너님 얼굴도 볼 겸.


아주 좋은 취지 같아요. 뭔가 변화가 있을 때 인터뷰 한 번 더하면.


맞아. 기억이나 감정 같은 걸 기록하면 좋잖아. 보통 사진이나 일기를 쓰는 게 가장 베스트인 거 같은데 내가 평생 3일 이상 일기를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어렸을 때 숙제로 하는 거말고. 그건 일기가 아니잖아. 내 생각을 담았던 게 아니니깐.


신청서에도 생각을 안 담으셨나봐요. 답변이 아주 불성실해요.


Q : 요즘 뭐해요?

A : 일합니다.


Q : 해야되는 일이 없으면 하고 싶은 일은?

A : 일 안하는 거요.


Q : 하고 싶은 말은?

A : 니가 정해주세요.


심지어 오늘은 되게 피곤해 보이는데... 일이 바빠요? 아 지난 번에 만났을 때... 회사에 퇴사 얘기했었다고 했잖아요.


그땐 진짜 마감에 시달려서 처절하게 일할 때고. 지금은... 사람들이 더 나가고 해서 좀 꼬였어.


에... 그때도 갑자기 떠맡은 일이 있었잖아요.


그때는 누가 퇴사 한 게 아니라 출산휴가 가시는 분이 있어서, 내가 내 연차보다 위에 일을 맡아서 했단 말이야. 그러다가 출산휴가 가신 분 대신에 들어온 경력직이 내 일 일부를 가져가기로 했었어. 근데 바로 옆 과에 출산휴가를 한 분 더 갔거든. 그 와중에 그 사람 대신 뽑아놨던 경력직이 돌연 퇴사했어. 결국 옆 과에 두 명이 빠진거야. 보통 과에 3~4명 정도 있어야 하는데, 신입을 하나 뽑아서 4명이 맞춰놓은 상황이었거든. 근데 일 할만한 대리급 두 명이 나가니까 달랑 사원 1명 남은 거지. 그래서 내 일을 가져가기로 했던 경력직 분이 그 과로 갔어.


아...? 망함...?


그래서 그 일이 나한테 다시 돌아왔어. 그나마 예전보다는 나아. 그동안 쳐낸 일이 몇 개 있어서. 아 그래도 계속 뭔가 부당한 상태인 거야. 그때는 2인분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1.5인분인 거지. 그 와중에 새로 전산 개발하는 프로젝트 같은 걸 나한테 하라네. 그래서 안 하고 뻗대고 있는데 점점 그 압박이 세질 수밖에 없잖아. 일단 올해 안에 개발한다고 보고가 올라가 있는 거니까 뭐 죽이든 밥이든 뭐라도 만들어봐라 이런 상황인데. 원래 하던 일을 좀 덜어주고 전산개발을 하라고 했던 거야. 근데 지금 마감 업무 포함해서 회계의 중추적인 업무가 넘어가려다 다시 돌아왔는데 이 상태에서 개발을 왜 안 하냐는 듯이 계속 얘기하니까..


그래서 초강수를 다시 두시려고?


아니. 그냥 뻗대는 거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모르겠어. 1~3월은 바쁜 시즌이라서 야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매일 잘 퇴근하고 있거든. 또 여자친구 생기고 나니깐 쉽게 그만두진 못할 거 같은... 사실 지금은 뭔가 동등한 입장이지만, 그만두게 되면 불확실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거니깐. 1~3월처럼 바쁘면 취업 시장이 어떻건 개나 주라고 하고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인데 지금 정도 같을 때면 ‘어떻게 일을 안 할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이 짜증 나는 거지 못하겠다는 건 아니라서 당장 그만두자는 생각은 안 하는데. 이게 되게 멍청한 거지 나중 가면 결국 또 바빠질 거 아니야.


뭐 지금 상태에 집중하면 버틸만 하니깐


비오는 날을 대비를 해서 이직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터뷰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일 수도 있죠. 근데 한다면 생각해놓은 건 있어요?


아 근데 괜찮은 공고가 안 올라와. 그리고 내 눈도 그냥 높아지는 거 같아. 솔직히 지금 회사가 엄청 나쁘다고 할 수도 없고 직무 자체가 내가 원하는 일이다 보니까 더 까다로워지는 거 같아. 내가 만약 직무가 맘에 안 들면 ‘아 무슨 직무를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할 텐데.


그게 아니니깐


회사 문화는 맘에 안 드는데 돈은 또 적당히 줘. 많다고 느끼진 않지만, 또 어디가서 이 정도 받으려면 또 피곤해질 것 같은...?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친구가 있거든. 걔가 얘기하더라. “너네 회사가 나아지긴 하는 것 같아. 근데 많이는 아니고 너가 되게 그만두지 못할 정도로만 아주 조금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한선이 있네요ㅋㅋㅋㅋㅋ


야근하는 것도 야근 신청서 안 올리면 못하게 하는데 그 야근 신청서 결재라인에 임원이 있단 말이야. 올릴 때마다 뭐 야근 꼭 필요한 거 맞냐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데... 바빠 죽겠어서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사람 불러다가 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서를 만들어 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한단 말이야.


아오 그거 상대하는 것도 일이겠어요.


그때부턴 일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짜증이 나는 거지. 사실 일할 땐 윗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윗사람이 쓰레기라서.


입사할 때부터 말했잖아요. 잘 안 맞는다고.


잘 안 맞는 게 아니라 이쯤되면 그 사람이 쓰레기인 거야. 모두가 그와 잘 안 맞아. 나이는 좀 있으신데 결혼을 아직 안 하셔서 매일 저녁을 먹을 사람이 필요하고. 그리고 술을 엄청...


좋아하고?


좋아하는 게 아니고 남을 먹여. 원래 같이 마셨다는데 자기 건강이 안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부터는 본인은 안 마시고 남을 먹이게 된 거지. 약간 가학적이야 사람이.


친구들이 이제 일 시작하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업무가 연관되어있는 사람들이 회사생활에 되게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그만큼 중요하고.


내가 누구랑 일하게 될지는 되게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거잖아. 취업이나 이직을 하면 뭔가 다른 사회에 들어가는 거니까. 나는 솔직히 이직이 머뭇거려지는 게 우선 지금 부장이랑 안 맞지만 다른 사람들이랑은 잘 맞기도 하고. 내가 본사에 있으니까 서른 다섯 개의 사업장이랑 수시로 연락을 하거든. 그걸 내가 거의 신입사원 때부터 맡아서 계속 해와서 무슨 일이 있을 때 그냥 전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어떤 이슈가 생기면 여긴 누구한테, 저긴 누구한테 전화할 곳이 있는데 이직하면 그런 네트워크를 다시 쌓아가야 하잖아. 그런 거에 대한 아까움도 있으니깐 눈이 더 높아지는 거 같아.


네트워크를 쌓아둔 게 있으니까 일 처리가 좀 더 수월하다는 거죠?


그렇지. 아무리 우리 회사 시스템이 쓰레기 같아도, 쓰레기 같은 그 시스템을 내가 알잖아. 내가 이직한다고 해서 무조건 승승장구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회사의 시스템을 알지도 못하니까 아예 새로운 환경인 건데 아무래도 부담이 있지. 그리고 지금 회사도 부장이 안 좋은 거지 다른 사람들하고는 되게 좋아. 내가 운이 좋아서 그런지 어딜 가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기는 한데 또 이런 사람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어.


사실 그 부장이 내가 무시할 수 있는 직급도 아니고 위에서 업무 방향을 이리저리 틀어버리니까 영향력이 있긴 해. 그래도 나랑은 연차 차이가 있으니까 직접적으로 계속 부딪힐 일은 없단 말이야. 예전에는 술 맥이는 것도 짜증나고 그랬는데 몇 번 쌩깠더니 요새는 술도 같이 안 먹어. 사적으로 술 먹은 지는 한 1년 된 거 같네 깽판 좀 쳤더니ㅋㅋㅋㅋㅋㅋㅋ


...?


아아 막 깽판까지는 아니고. 술 먹고 기절해서 실려갔어.


...?


앰뷸런스말고 택시에.ㅋㅋㅋ 그 부장이 나랑 동기들을 데리고 술 마시러 갔던건데. 한 명은 술을 엄청 못 마셔. 다른 한 명은 그 부장이 엄청 싫어서 결국 퇴사한 친군데 그 날도 술 마시러 가면서 이번에도 맥이고 그러면 그만 둘 거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서 들어갔는데 걔한테 양주를 막 맥이는 거야. 그래서 그냥 내가 뺏어서 마시고 더 달라고 해서 마시고 그랬거든. 병을 비워야 나가니깐. 그러다가 난 기억이 안 나는데 택시 기다리다 밖에 벤치에서 잠들었대.ㅋㅋㅋㅋ 그래서 고생 좀 했나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사 이외의 삶은 어때요. 아주 짧겠지만...


아니야 요새 굉장히 길어.


아 어제만 유난히 늦게 끝난 거예요? 그전에 비하면 일찍 끝나네요.


일찍 퇴근한다는 게 한 7시쯤? 근데 뭔가를 다 끝내고 퇴근한다는 게 아니라 ‘아 몰라~’ 이러면서 집에 가는 거야. 요새 여가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일하는 걸 모토로 삼고 있어서.


그 지장 없는 여가 생활은 어때요?


주로 여자친구 만나고.


탐라국에 서핑도 다녀왔잖아요.


여자친구가 그런 걸 좋아하면 좋을 거 같은데... 전혀...


어떻게 만났는데요.


소개팅했어. 근데 업무에 여유가 생겼을 때 만나게 돼서 시기가 잘 맞은 거 같아. 올해 3월까지 너무 바빠서 연차를 하나도 못 썼거든. 회사에서는 연차수당 주기 싫으니까 월에 하나씩 연차 쓰라고 지침이 내려왔는데 나는 하나도 못 썼으니까 약간 몰아서 써야 하는 타이밍이었어. 그러던 중에 토요일에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는데 괜찮은 거야. 근데 마침 월요일에 연차를 써놨었거든. 그래서 사는 곳으로 갈테니까 한 번 더 보자고 했지. 그렇게 몇 번 봤는데 괜찮더라고.


오오 되게 행복한 상태겠네요. 그나저나 취업 전에 했던 인터뷰 읽어보셨다고 했잖아요. 그 당시와 현재, 내 모습과 비교해본다면?


솔직히 지금은 일을 해서라기보다 여자친구 만나면서 바뀐 게 많은 거 같아. 예전에 잠깐씩 사귀긴 했어도 서로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 제대로 연애한 게 처음이라서 그 차이가 가장 큰 거 같아. 예전에는 누굴 만나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그냥 내 안에 그런 감정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럴 수도 있잖아. ‘아 나는 그냥 혼자 살아도 좋은 사람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제가 그러고 있어요. 그랬는데?


그래서 항상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면...’ 뭐 이렇게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 이 친구 만나면 나도 달라질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아...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네. 연애가 중요한 거였네. 몇 번 만났어요?


ㅋㅋㅋㅋ 몇 달 전에 인터뷰를 했으면 일 얘기만 계속 했을 것 같아. 서너 번 만나고... 등 떠밀려서?


오잉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 친구가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그 커플이 사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서로의 친구를 소개시켜준 거야. 그게 나랑 여자친구거든. 우리가 처음 만나고 내 친구의 여자친구가 내 여자친구를 엄청 쪼았다고 해야하나. 여자친구도 연애를 많이 해보고 그런 타입은 아니어서 그 친구가 맨날 전화해서 오늘은 카톡 몇 번 했냐 이런 식으로 물어봤대.


ㅋㅋㅋㅋㅋ 닥달을 했구나.


세 번째 만났을 때 사귀자고 운을 띄울려고 했었는데 되게 민망해하더라고. 그래서 그 날은 올림픽 공원 벤치에서 손만 잡았어ㅋㅋㅋㅋ 그러다 네 번째 만났을 때 영화 시간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친구한테 전화가 온 거야. 그 커플도 만나고 있던 거지. 전화로 “언제 사귀자고 할 거야!!” 막 그런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친구가 나 바꿔주더라. 그렇게 영화 보고 나와서 사귀게 됐어.ㅋㅋㅋㅋ


그 커플이 엄청 밀어줬네요ㅋㅋㅋ 근데 여자친구는 서핑을 안 좋아하고...


되게 특이한 거 같아. 나랑 그렇게 잘 맞진 않거든.ㅋㅋㅋㅋㅋ 진짜 뭔가 하나하나 따져보면 안 맞아. 근데 같이 카페에서 얘기만 해도 재밌고, 같이 있으면 시간은 빨리 가고. 같이 밖에서 걸어도 좋고 그냥 좋아. 음식 취향이 맞는 것도 아니고 액티비티도 별로 좋아하진 않고 아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데 막 소리가 크거나 무서운 건 또 되게 힘들어해서 잘 안 맞는데....


진짜 그닥 맞는 게 없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누군가를 통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해 들었다면 ‘나랑은 좀 안 맞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데 만나서 같이 있기만 해도 좋으니까 그게 되게 신기한 거 같아.


여자친구 분이 지금 일을 쉬고 계시다고 했는데 제 생각엔 그게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 맞아. 자주 볼 수 있으니까.


일을 하고 있으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테니까..


그랬으면 서로 심리적인 여유 공간이 없을 수 있지. 지금은 그 친구가 나한테 맞춰주는 게 보이니까 나도 더 고맙고 그래. 아까 시기가 잘 맞았다고 했던 것도 나도 지금 일에 여유가 생기긴 했고 여자친구가 쉬고 있기도 해서인데. 간호사다 보니깐 일할 땐 교대근무하고 응급실에 있어서 엄청 바쁘거든. 일할 때는 아예 뭘 생각해보지도 못했대. 소개팅 같은 걸 해봐도 시간이 안 되니까 꾸준히 만나지도 못하고.


요새는 주변 친구들도 다 비슷한 거 같은데 아무래도 직장인들은 직장인들끼리 소개팅 하니깐 문제가 생기는 거 같아. 일하다보면 서로 일정 안 맞아서 거의 주말에 한 번씩 보는데 카톡으로만 연락은 이어가면 루즈해지잖아.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화하는 것도 애매하고. 그러다보면 처음 만났을 때 괜찮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랑도 그렇게 잘 안 되는 것 같아. 회사 동기들도 소개팅했다는 얘기 들어보면 금방 잘될 거 같은 분위기야.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대. 근데 몇 주 지나서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너님은 초반 기반을 다지는 타이밍이 좋았던 거네요.


응 그게 젤 컸던 거 같아. 회사 다니기 시작하면 처음 시작하기가 더 힘들잖아. 직장인의 연애는 연락하는 스타일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예를 들어 카톡도 자주하고 전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연락을 자주 하기보단 직접 만나는 편을 선호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오해도 생기다보니까 서로 힘들어지는 거 같아. 서로 자주 만날 수 있는 상황이면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을 텐데. 지금 나는 상황이 딱 맞아서 자주 보고 있는데 지금 이 시간이 있어서 나중에 바빠져도 잘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안정감이 있네요. 근데 연애 자랑하려고 부른 것 같아서 집에 가볼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럴거면 하고 싶은 일에 왜 넷플릭스, 게임 뭐 이런 걸 적었어요? 다 혼자 하는 거구만.


부끄러워서...


아 연막? 썼으니 뭐라도 얘기해봐요.


아무래도 큰 시간은 여자친구랑 쓰니깐. 뭘 하기엔 애매한 시간들이 남으면 하고 싶은 걸 쓴 거야. 쉴 땐 스마트폰 긁적이고,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도 보고 싶은 거 뒤적이고 있거든. 근데 영화/드라마가 호흡이 기니까 잘 눌러지지는 않는 애매한 상태야.


아 저도 그래요. 적어놓기만 하고 막상 여유가 생기면 또 안 하고.


근데 영화는 좋아하니까 계속 보려고 하는데 책이 진짜 안 꺼내지는 거 같아.


원래 많이 읽지 않아요?


아니야. 되게 안 읽는 편인데 남들이 착각하도록 만들어버린 게 좀 있어. 예전에 독서모임 할 때는 주에 하나씩은 읽었는데 나는 물론 안 읽고 예전에 읽었던 책 들고 가고 그랬거든. 사실 회사 다니면서도 분명 책 읽을 수 있거든. 근데 안 읽어.


저는 요즘 스케쥴러 쓰기에 맛들려서 삶을 네 개로 구분해놨어요. 놀이/만남/뻘짓/미래. 근데 기록을 해보니까 뻘짓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게 후회되는 건 아닌데 이제 미래 부분에 시간을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스케쥴러를 절대 안 쓴다고 했지만 너님도 구분을 해본다면.


회사, 연애. 그 두 개 말고는 카테고리로 나누기도 애매해. 하고 싶은 걸 추가할 수 있다면 운동이 제일 먼저 들어갔으면 좋겠어. 나는 수영이나 스쿼시나, 달리기, 자전거처럼 꾸준히 계속해야하는 걸 좋아해서.


아 근데 나는 내가 피곤하다고 자각을 하지도 않고 있었거든. 근데 너님이 피곤해 보인다고 하니까 되게 놀라면서 피곤함이 몰려온다고 해야 하나...


계속 얘기하자면 난 공부도 좀 더 해야 하긴 하거든. 공부하면 일할 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좀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학교에서 배운 거 회사 가면 개뿔 필요 없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더 했었어야 하는 것 같아ㅋㅋㅋㅋㅋ 공부, 운동. 여자친구, 그리고 일 이렇게 나눠지면 가장 베스트일 것 같은데. 근데 지금 2개밖에 못하고 있네.


가능한 방법은 없을까요?


가장 베스트는 일을 줄이는 거지ㅋㅋㅋㅋㅋ 근데 여자친구가 일을 다시 시작하면, 여자친구가 나보다 더 바빠질 거 같아서 그 때 되면 운동이든, 공부든 뭔가 하지 않을까. 몰라 지금도 할 수 있는데 사실 핑계... 아니야 다 핑계라고 생각하기에는... 내가 지금 운동과 공부를 더하면 나의 피로도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청날 거 같은데...


여자친구 만나서 졸다가 혼나고 그럴 거 같은데...ㅋㅋㅋ 그렇게 생각하면 또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거 같아. 사실 지금은 연애에 더 신경 쓰고 싶은 게 지금 아니면 평일에 3번 만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거든. 일 때문에 피곤해도 같이 있으면 좋으니까 계속 더 만나러 가고 있지.


... 이전 연애랑 확실히 다른 게 어떤 거예요?


이전까지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과는 연애로 안 이어졌고, 연애를 했던 사람들은 그냥 좀 시큰둥했었어. 나는 뭔가를 판단하거나 할 때 딱 보고 정하는 타입이거든. (직관적으로) 약간 그런 타입이라서... 근데 처음 생각했던 게 거의 틀리지 않는 것 같아.


이전에 연애할 때 친구가 그런 얘기를 했었어. 엄청 좋아하고 맨날 만나고 싶어하고 그래야 사귀는 거 아니겠냐고 얘기를 해서. 그래서 나도 노력을 해봤거든. 그 친구가 나랑 되게 멀리 살았는데... 퇴근해서 밤에 가서 잠깐 만나고 돌아오고 그렇게 노력을 해봤었어. 근데... 취미나 이런 게 안 맞다 보니까 서로 못 맞춰주고. 분위기가 그냥 그런?


관심사가 같지 않아서 힘들었다...?


응 여태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여자친구 만나서 생각해보니까 그게 또 아니더라고. 아까 말했듯이 맞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도 상대가 나한테 배려해주는 게 보인다고 해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그냥 끌려가서 봐주고 걷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같이 걸어주고. 그럼 난 고마워서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것도 더 하려고 하지.


솔직히 소개팅 아니면 사람 만날 구실도 별로 없잖아 이제. 회사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회사 아니면 삶이 그렇게 다양하지 못하니깐. 그전에는 딱 잘 맞는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찾으려고 해봤자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서로 좋으면 안 맞는 부분은 그냥 그것대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ㅋㅋㅋㅋ


그 분을 만나서 생각이 많이 바뀐 거 같네요.


이번 인터뷰 주제가 되게 안 잡히지?


주제를 하나 잡고 얘기하려해도 여태 의도대로 된 인터뷰는 단 하나도 없어서..ㅋㅋㅋㅋ


그래도 글 쓴 것들을 보면 ‘아 이맘때쯤부터 주제가 잡혀가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들이 있잖아.


음 그냥 연애든 일이든 저한테는 너무 어려운 주제라 한계를 느끼죠. 특히나 직장 얘기는... 이제 슬슬 듣는 얘기에서 직장의 비중이 커져서... 나는 그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도 많이 되고 그래요.


표현이 마음에 안 들지만 사실 내 삶을 바치는 거거든. 회사한테 나의 삶의 일부를 주고 돈을 받는 거잖아. 근데 한 사람의 삶의 대가로 나는 내가 받는 돈이 거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냥 주어졌으니까 마지노선이라고 느끼는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덜 받는다고 하더라도 삶을 사는데 문제는 없거든. 그런 문제보다는 그냥 짜증나잖아. 존나 일했는데.


과도하다는 거죠?


일부가 아니라 삶을 다 뺏기거든. 그리고 난 이 회사를 계속 다니든 이직을 하든 1년에 1주일씩 휴가가는 것 말고는 없어. 임원 단 사람 놓고 보면 성공한 삶이잖아.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그 임원들 말하는 거 보면 회사에 가치를 많이 둔 삶에 대해서 자기는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근데 나는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기 보단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고, 못 살 것 같다 그런 생각들어. 옛날에는 휴가 쓰는 게 더 눈치 보였을 거 아니야. 뭐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휴가 빼고는 1주일 이상 시간을 낼 수도 없는 삶을 거의 20~30년 단위로 사는 건데...


합리화일 수 있지 않을까요? 20~30년을 해왔는데 이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해버리면 인생의 상당 부분을 부정해버리는 거니까. 그 분들도 너님 나이 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변해갈 수도 있잖아요.


글쎄 모르지. 그때 시대상이나 이런 걸 모르니까 내가 살아본 것도 아니고. 그 당시 얘기 들어보면 맨날 야근하고, 술먹고, 밤새고, 다시 일하는 삶이잖아. 뭐 옛날에도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남자가 돈을 벌어야지’ 라는 생각이 만연하게 있었고. 지금은 욜로니, 아예 일을 그만두고 놀겠다고 하는 사람도 생기는 시대가 된 거고.


돈을 벌 수 있는 경로가 요새는 다양하긴 하잖아. 옛날 기준으로 포멀한 직업 형태라기 보다는 디지털 노마드, 유튜버들도 있고. 굳이 회사에 가지 않더라도 플랫폼이 있으니까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많고. 펀딩처럼 다수의 돈을 끌어 모아서 새로운 기회들도 많이 생기고. 그런 방식의 삶을 위해서는 내가 또 다른 노력을 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농업학교 갈 생각했었잖아요.


ㅋㅋㅋㅋㅋㅋ 아 그건 내 동기가. (그분은 농사꾼 되심?) 가려고 퇴사했는데. 딱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퇴사하는 시점에 여자친구가 생겼거든. 그래서 서울에 있어야 하니까 취직 준비하지...


그 당시에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었고. 일과 삶의 밸런스 면에서도 고민하는 시기여서 그런 얘기를 했던 거 같아요.


그땐 내가 뭘 하더라도 업무적으로 익숙치 않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처음에 들어오자마자 엄청 고생할 때도 조금 성장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도 위에서 일 받아서 하게 되면서... 지금 보니깐 또 성장을 한 거 같아. 예전에는 새로운 일이 생기는 게 약간 두려웠거든. 아니 두렵다기보다는... 신경을 엄청 많이 써야할 거 같은 느낌? 근데 지금은 새로운 일이 생겨도 그냥 아..... 하면서 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된 거 같아.


사실 이건 내가 회사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거지, 나의 성장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내가 공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얘기했던 건데. 회계는 룰이고 지켜야 하는 베이스가 있어서 내가 만약 이직을 해서 다른 회사에 간다거나 했을 때 이 회사에서 적용하던 게 다른 회사에선 다르게 하고 있다 하더라도 기본 베이스를 알고 있으면 더 좋은 시스템을 가져다 적용할 수 있거든. 그래서... 일단은 공부에 대한 니즈만 있는 상태지ㅋㅋㅋㅋㅋㅋㅋㅋ


동기들이랑 얘기를 해봐도 비슷한 생각을...?


비슷하게 느끼긴 하는데. 나는 이 직무가 딱 마음에 드는 상태라서 더 그렇게 느끼긴 하는 거 같아.


얘기를 듣다보면 자신과 맞는 업무니까 그런 생각도 드는 거지. 그게 아니면 정말 고역일 거 같아요.


내 동기 한 명이 딱 그렇게 나갔거든. 애초에 회계하던 친구도 아니었고. 패션 브랜드나 화장품에 관심이 많아서 마케팅 쪽에 친화적인 친구가 군대 같은 조직 내 회계 부서에 와가지고 개고생을 했어. 그때 인원도 부족해서 업무량도 엄청 많았는데. 회계는 이론 베이스가 없으면 아예.... 기본적인 업무도 못하거든.


어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개고생을 해서 결과물을 가져가도 엄청 깨졌지. 위에서 보기에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게 1+1을 틀리는 애한테 인수분해를 시켜야하는 상황이니깐.. 답이 없는 거야. 서로 힘든 거지. 나는 그나마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고 업무 하면서도 그렇게까지 고생하진 않았거든. 그 친구는 일단 가서 지금을 다시 잘 들어갔어. 브랜드 관리하는 쪽에 가서 이제는 맞는 일 하는 거 같아. 거기서도 힘들다고는 하는데 훨씬 내가 보기엔 나아 보이거든.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전임자들이 다 나가서 아예 모르던 일을 맡는 바람에 개고생을 했었거든. 전임자가 아무도 남아있질 않으니까 직접 물어볼 순 없고 실무자가 아니더라도 위에서 보고을 받아왔던 사람들한테 묻기도 하고 파일 뒤져가면서 어찌저찌 했거든. 그때 나를 봤던 차장님이 “너 그때 초롱초롱했던 눈은 어디가고 요새 왜그러냐...” 이런 얘기를 되게 많이 하거든ㅋㅋㅋㅋ


그땐 의욕적으로 하셨던 거?


의욕이 아니라 그땐 내가 할 수밖에 없으니까. 누가 커버쳐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내가 잘못하면 숫자가 몇십 억 단위로 틀어지는 거니까 되게 조심스러운데 조심스럽다고 해서 내가 실수를 안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ㅋㅋㅋㅋ 그러니까 스트레스 엄청 받았던 것 같아. 그 경험이 남긴 건 딱 두 가지인 거 같은데. 실수를 거듭 하다보니까 실수를 했을 때 ‘그냥 깨지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무사안일함과 아까 말한 동기가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느낀 게 그거였거든. ‘결국 나간 사람이 손해 아닌가.’


물론 그 친구는 다른 직무가 하고 싶어서 나간 거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 있는데 나간다고 하면 내 손해인거지. 솔직히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일 못하는 사람은 일을 덜 받기도 하고 그렇거든. 멍청한 짓을 계속하면 누가 나한테 일을 맡기겠어. 근데 회사에선 실제로 그런 일이 많아. 회사는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한테 시키는 것 뿐이지 일을 공평하게 배분해서 1인분씩 시키지는 않는단 말이야.


그 친구는 되지도 않는 일을 받아서 막 열심히 처리를 하려고 하는데 그 결과가 맘에 안 드니까 위에선 깨지고 시간은 더 부족하고 그냥 욕만 계속 먹다가 나간 거야. 나는 욕은 조금 덜 먹더라도 일단 힘드니까 나가고 싶은데 그 친구랑 다르게 나는 이 일이 마음에 들고, 다른 직장 찾으려고 하니까 또 짜증이 나는 거야.


고생만 하고...


내가 지금 나가면 고생만 하고 나가는 거니까. 그래서 이제부터 일을 열심히 안하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짤리지 않을만큼만 하면.


회사는 거의 못 짤라. 좌천 시킬 수는 있어도 짜르기는 쉽지 않단 말이야. 특히 사원은 더 그렇지.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한직으로 보내고 그런 거 아니면. 그리고 그만큼 내가 일을 못 할 가능성도 없고.ㅋㅋㅋㅋ 지금만 봐도 계속 떠안고 있잖아.


적정선을 찾은 건가요?


그냥 놓았다고 해야 하나. 전에는 막 완벽하게 해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완벽하게 할 수 없는 업무량을 주니깐. 예전에는 야근이랑 주말근무로 채워서 보냈던 걸 이제는 검토를 한 번 덜 하고, 두 번 덜 하고, 다음에는 숫자만 채워서 보내고. 그러니까 얘기가 나오는 거지. 너 전에 초롱초롱하던...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직장인이 된다...


되게 애매한 거 같아. 아예 능력이 없거나, 욕먹는 걸 잘 견디는 사람은 계속 있을 거 아니야. 욕 먹는 걸 못 견디거나 퍼펙트한 결과물을 내느라 다 소진된 사람은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고. 회사에서는 남아있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하지. 결국 능력이 쥐뿔도 없는 사람도 남아있으면 임원을 달 가능성이 생기고 실제로 누군가 다는 일도 생기겠지. 실제로 능력있는 사람이 쭉쭉쭉 잘 되어서 가는 케이스도 있지만, 자기 삶에서 일에 보다 큰 가치를 두고, 성장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


아오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어떤 자세로 일을 해야하는지도 어렵네요.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상태를 항상 그만둘 수 있는 상태를 만들려고 노력해왔어. 적금도 장기적금 안 들고. 차 같은 거 안 사고. 자취할 생각 안 하고. 그리고 일정 현금은 모아두고.


뭔 책에서 한 번 읽은 것 같아요. ‘아 이 회사 아니면 안 되겠다!’ 하면 그 회사 그만 두라고.


회사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그것 때문에 내 한계가 오고 그 한계를 느끼면 그만두게 되는 것 같아. 오히려 회사에 대한 미련을 버릴수록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요새 젊은 사람들의 퇴직율이 높은 것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 거 같아. 되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거든. 근데 열심히 하다보면 열심히 하는대로 떨어져 나가는거지.


그런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열심히 하다가 일찍 퇴사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 같거든. 회사 들어가자마자, 1~2년차에 퇴사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무능력하고 게을렀다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가치를 너무 많이 두어서라기보다는 약간 이런 역설에 휘말려서 퇴사하게 되는 사람이 꽤 많지 않을까 싶어.


자신을 격렬하게 소모시키고 유유히 바스라지는...


너무 소진되다 보니까 완전 번아웃 되는 거지. 미생에서도 ‘체력이 떨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몸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단계가 된다.’ 약간 그런 얘기 나오거든. ‘열심히 해야 해. 여기서 인정받아야 해.’ 라고 취직할 때 그런 프레임을 씌워서 들어가잖아. 그 프레임대로 실행을 계속 해왔더니 번아웃 되고, 그뒤론 아예 생각이 안나면서 그냥 때려치게 되는 거지. 나 같은 경우는 지금껏 땅굴 파고 들어가다가 ‘아차! 열심히 하면 안 되지.’ 하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는 그런 단계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신차리고ㅋㅋㅋ


‘정신차려! 너무 열심히 하면 안 돼.’ 하고 다시 즐거움의 길로 가는 거야. 돈 쓰고 사는 재미도 느끼고. 하지만 돈 쓰더라도 차는 안 돼. 회사 없어도 생계가 부족하지 않은 상태를 만들어 놔야 해. 약정 같은 것도 걸지 않고, 현금이 차곡차곡 쌓이는 삶을 지향하게 되어버린 거지.


흠 얼마나 유지될까요?


글쎄 모르겠어. 나도 그게 여자친구 생기면서부터였거든. 회사 그만둔다고 하면 어떤 부모님도 그럴 거야. 이직할 데나 찾고 가라고. 그렇게 되면 좋은데 솔직히 힘들잖아. 돈이 얼마나 있든, 그만두면 얼마나 버틸 수 있고를 떠나서 나는 항상 그냥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친구 생기면서부터 생각이 바뀌더라고. ‘만약에 장기백수가 되면? 되게 어렵게 만난 이 사람이랑 헤어지게 되면..?’


그럼 다시 열심히 땅굴을 팔 수도 있는 거예요?


아니지 회사에서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대충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서!


끝까지 살아남겠다!


ㅋㅋㅋㅋㅋㅋ 약간 그런 것도 있고 아니면 너님이 말한대로 좀 더 열심히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서 가야겠지. 우리 회사도 항상 새로운 사람이 왔다가 나가는 일이 반복되는데 남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고생한단 말이야. 물론 나가는 사람을 욕하는 건 아닌데 상황이 그렇게 계속 바뀌다 보니까 안정되려고 하면 다시 피곤해지고...


최근에도 그 경력직 분이 나가시는 거 아니었으면, 내 입장에서는 안정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완전 뒤틀어진 거지. 솔직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간적인 여유도 생기면 이론적으로 베이스를 밟아보고, 뭔가 알아보고 찾아보고 할만한 건덕지가 주어지는데. 야 그것도 하면서 이것도 해! 이러니까 안 해! 나 안 해! 이렇게 되어버린 거거든. 차근차근 안 볼 거야! 그냥 대충 처리만 할 거야! 이렇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대했다가 흥이 깨졌네요.


새로운 프로젝트에 집중하면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이건 내 성장에 도움이 되겠다 생각하면서 할 수 있던 건데. 이것저것 다하려고 하니까 물리적인 시간도 그렇고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지.


아 회사 재밌네~


재미있기도 하고 재미없기도 하고. 어떤 사람 만나느냐에 따라 또 다른 거 같아. 가깝게 지낼 사람들을 만들 수 있느냐.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사람과 자기가 하는 직무만 맞으면 웬만하면 그냥 나처럼 지랄지랄 하면서도 그냥 다니는 거 같아. 나도 바로 위 사수한테 이러저러해서 못 살겠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투덜대거든.


징징대는구나


특히 회계 일 자체가 서로의 업무 섹터가 나누어져 있거든. 그러니까 담당 업무 관련해서 서로 물어볼 일이 많다보니까 좀 분위기가 평등하게 되는 거 같긴 한데. 선배가 힘들면 나한테 와서 징징대고, 나도 힘들면 반대로 징징대고 그래. 그게 가능한 선배가 여럿 있기도 하고. 나는 제일 좋은 게 내 동기가 있다는 거. 그렇게 친하다고 하는 선배라도 업무적으로는 나한테 짜증나는 상황이 있을 거잖아. 대놓고 일을 넘겨도 아무래도 윗 사람이다 보니까 얘기를 하는 게 어렵지. 근데 동기는 항상 열려있는 거니까. 쟤가 어쨌더라.. 쟤 때문에 회사 다니기 싫다...ㅋㅋㅋ 원래 동기가 5명이었어. 근데 지금은 셋이 나가고 둘이 남았는데.


아 이제 한 명 남은 거예요?


그래도 제일 가까운 사람이 남아있어서 괜찮은 거 같아. 동기들이랑 점심도 같이 먹고, 퇴근할 때도 보고 하다 보니까 ‘아 동기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견뎠지.’ 이런 생각? 아예 없었으면 나도 그냥 없이 다녔을 텐데 동기 없는 사람보면 되게 외로워보여. 사람이 느끼는 고통의 역치가 비슷하다고 보면 내가 봤을 때 내가 저 상황이면 못 견딜 거 같은 거지.


직장생활... 평생 해볼만 한가요.


이 직장에서 평생 있지는 않더라도 직장에 평생 있긴 할 거 같아. 사실 변호사든 회계사든 능력을 공인을 받은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 삶을 문제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있잖아. 그들만 들어갈 수 있는 노동 시장이 있는 거니까.


그런 것처럼 나도 내 분야에서 내공을 쌓고 어느 회사에 가든 적용할 수 있으면, 그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다니지. 내 일이 누구에게나 대체 가능한 일이 되면 어딜 가도 그 회사가 나를 뽑길 기다릴 수밖에 없잖아. “나 이거 할 줄 아는데 나 뽑을래?” 이렇게 얘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지원하고 뽑아주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을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는 거지.


하다 못해 재무회계 쪽이면 사업하는 친구한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거고. 그 상황에도 친구한테 빌어먹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하지만 내가 되게 능력이 있으면 오히려 자신있게 얘기를 하고 그 사업이 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 나는 사업을 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 거 같아.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회사 얘기 재밌네요. 신기하고. 나는 어떨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 회사 다니는 친구를 만나든 동기나 선배들이랑 얘기를 하든 맨날 투덜대는 얘기지 뭐. 지금도 그 얘기 밖에 안 했잖아.ㅋㅋㅋㅋㅋㅋ 상황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색다른 얘기가 되긴 하는데.


그렇죠.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르니깐. 근데 내년에 레벨업해요?


2020년에 하나? 겁나 거지 같은 게 4년이야. 내가 중도 입사라서 15년 6월 입사인데, 7개월 한 건 1년으로 안 쳐줘. 개쓰레기 같은 거지.


예비군이네;; 1월에 전역하면 1년 기다리잖아요ㅠ 16년 입사자랑 똑같다는 거죠?


그니까 2020년 승진이야. 20년 1월. 거지같애...


그때쯤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일 시작하기 전이랑 지금 다른 것처럼


음 변수가 너무 많아. 일단 대리를 달고 나면 이직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을텐데. 근데 이직해도 지금이랑 비슷할 거 같아.


고민하는 부분이?


응. 내가 여기서 쌓은 것도 있고. 딴 회사 가면 잃게 되는 것들을 비교하면... 그런 것 때문에 옮긴 회사가 성에 안 찰 수도 있고. 그리고 일단 이 회사의 가장 특징적인 건 4년이 지나면 부서를 무조건 옮겨.


직무가 바뀐다는 거예요?


직무가 바뀌기도 하고... 가장 큰 건 지방 공장으로 갈 수도 있어. 이 회사에 계속 있는다고 하면 공장은 무조건 갔다와야 해. 공장에서 하는 원가 관련 일이 나는 되게 궁금해서 해보고 싶어. 근데 뭐 그쪽에서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몇 달 해보고 싶은 거지. 나는 본사에서 각 사업장에서 처리한 것들을 받아서 정리를 해가지고 공시를 하는 거기 때문에. 얘기만 듣고 내가 가보질 않았으니까 감이 안 잡힌단 말이야. 근데 막상 지방에서 몇 년 하겠냐 했을 때 이 회사에서 끝까지 간다는 생각이 없으면...


쉽지 않을 거 같은데.


공장간다는 것 자체가... 그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상상이 안 가. 솔직히 본사보다는 편하다는 말이 있긴한데... 또 편하지만 그만큼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고도 하고 ㅋㅋㅋ 또 주변 사람이 다 바뀌는 거니까 거기서 어떤 사람 만나느냐도 크게 좌우하겠지. 이직하는 거랑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바뀔 거 같아. 만약 갔는데 좀 괜찮은 사람들이 있고, 일에 여유도 생기면 공부도 할 수 있고 여자친구랑 관계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아. 그쯤이면 결혼했을 수도 있을 거 같고.


이런 저런 변수가 잘 맞는다면, 공장에서 딱 잘하고 나와서 이 회사에 계속 있을 수 있을 거 같아. 간다면 그맘 때 갔다오는 게 가장 이상적인 거 같아. 원래 본사 출신은 다시 본사에 오는 경우가 많거든. 경험을 살려서 본사 쪽에서 다른 일도 맡아보고 하면 어떻게 잘 될 거 같긴 한데. 하 근데 반대의 삶을 상상하면 끔찍한 거지.


회사는 다니면 다닐수록 점점 나아지나요? 적응을 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직급 상의 변화가 가져오는 일의 편안함이 충분히 있는 거예요?


나는 차장님이나 과장님처럼 일 시키면 못할 거 같아서...


아 그럼 능선이 있나요? 정점을 찍는 게 언제인 거예요?


그게 되게 불확실해. 왜냐면 과장/차장이 고생하는 건 예전 문화가 아직 있어서. 회사에서는 요즘 초과근무 방침을 내리고 하니까 밑에는 일이 있어도 쌩까고 가는데. 가운데 있는 그들은 그러지 못하고 밑에 애들이 쌩까고 가느라 제대로 처리가 안 된 업무도 좀 더 챙기고 그러지. 옛날에는 과장/차장이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놀러다니다가 밑에서 해가지고 오면 “어 됐냐” 하고서 넘기고 그랬대. 회사 체계도 잡혀있고 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IMF 터지기 전에는 일을 엄청 날림으로... 그냥 틀리면 틀리는대로, 회사 입맛대로 가공해서 내보내고 했었는데. IMF 이후에 금융당국에서 계속 푸쉬 하다보니까 그냥 넘어가던 것들이 이제 다 일이 되는 거지. 인원은 그대로인데 업무량은 늘어나니까 위에 사람들도 실무를 어느 정도는 할 수밖에 없고 그런 와중에도 최근 3~4년 간 부장이 사람들을 개갈궈가지고 과장/차장 급이 대여섯 명이 나갔어...


진짜 알 수 없는 미래네요. 뭐 여태 싫은 것들을 많이 얘기했지만 요즘하는 걱정이라도 마지막으로 들어볼까요.


아 성격이 더러워지는 거 같아.


직장생활을 해서?


나는 안된다고 하면 안되나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화가 치밀어올라. 업무상 다른 사업장에 뭘 하라고 얘기를 해야하는데 나는 직급상 되게 밑에 사람이라 씨알도 안 먹혀. 근데 씨알이 안 먹히다보면 내 일이 제대로 안 되는 거지. 그러면 윗사람한테 보고했을 때 깨지니까 점점 막말하게 되는 거 같아. 물론 완곡히 표현하기는 하는데 완곡하게 표현해도 말을 안 듣는 사람이면 지랄을 해서라도 듣게 만들고.


하는 일은 힘이 더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힘이 없으니까...


일단은 내가 말하는 내용이 맞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건데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그렇게 하면 불편하고 번거로우니까 안 하는 거란 말이야. 지랄을 해서라도 그걸 제대로 하게 하는 게 정상적으로 생각해도 맞는 거고, 회사 차원에서도 그렇게 일처리 하는 게 맞거든.


근데 이렇게 해버릇 하다보니까 일상생활에서 그런 감정이 끼어드는데 운전할 때도 화를 내면 사실 내가 힘든 거잖아. 내가 사람을 잡아다가 한 방향으로 가게 할 수도 없고. 나만 힘든 상황은 그냥 넘기는 게 나한테도 더 좋은 건데. 옆차가 운전 막 하고 그러면 내가 조수석에 있을 때도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르는게 느껴져. 특히 규정 관련해서 어긋나면 그럴 때가 더 많은 거 같아. 일 처리 제대로 안 하는 사람들 보면 짜증나.


일종의 직업병 아니에요?


살짝? 선배가 하나 있는데 일할 땐 맞는 말만 딱딱 끊어서 하고, 아니다 싶으면 윗사람들한테도 강하게 주장하고 하니까 막 다 엄청 무서워한단말이야. 다들 헉 할 수밖에 없는 게 사원인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다들 당혹스러워 하거든. 근데 내가 그 선배 바로 옆자리라 듣다 보면 일 거지같이 처리해놓고서 좀 봐달라는 식으로, 그냥 넘어가달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많아. 그렇게 넘어갔다가 잘못되면 책임은 그 선배가 질 수밖에 없고. 옛날에는 멋모르고 해주기도 했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결국 다 자기한테 돌아오는 거니까 아닌 건 끊는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안하면 남들한테 여지를 줄 수 있다면서. 그게 맞는 거 같아.


그래야 편하고.


나도 그것 때문에 힘들었거든. 남들한테 말해도 하나도 안들어먹으니까 대충 넘어갔더니 나한테 책임이 돌아오고. 그 선배처럼 하면 편하겠다 싶다가도 남들이 봤을 때 ‘아 뭐 저딴 새끼가 다 있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하다보면 균형점을 찾지 않을까요. 융통성을 적용하는 나름의 기준이 생기거나..?


근데 이렇게 하다보면 적이 생길 거 같아서 문제지. 난 성격상 적이 안 생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진급하면 부서를 옮긴다고 했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걱정이구나.




방학이 없다면 요런 표정일까



졸업식을 나흘 앞두고 있던 그때의 나는, 그때의 인터뷰이만큼 방학이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김치마냥 잘 묵혀뒀던 녹취록을 풀면서 몇 번씩 고개를 끄덕이고 힘없는 웃음도 뱉어냈던 건 그때는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다 양도해버린 시간과 장소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도 아직 모르겠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건 늘어났고 하고 싶은 게 줄어든 건 분명하다. 그닥 별로인 내 상황을 침착하되 느슨하게 볼 수 있는 방학을 꼭 이럴 때 뺏긴 게 너무 억울하다.

매주 두 손 모아 기도해도 한두 달짜리 방학을 다시 쥐어주시진 않을 것 같고, 갑자기 내일부터 인생이 협조적으로 변할리도 없으니, 생각도 빨래처럼 몰아서 하던 게으른 나도 이제 변해야 할 것 같다. 방학이 없는 삶에 어떻게 대처할지 셀프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이 인터뷰가 그렇듯 내 노력의 지분이 굳이 많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느새 4년 차 방학 없는 삶을 살고 계신 인터뷰이를 조만간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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