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같은 인터뷰 #40
'평소에 자주 생각하는 것들'이라는 질문에 '똥 싸고 싶다'라는 답변으로 대응한 인터뷰 신청서를 받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대소 구분 없이 화장실은 3초 컷인 내가 본격 변비인 인터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약 두 시간 뒤 이 양반은 안정 심박 수를 찾은 척하며 텐션 높은 메일을 다시 한번 보내왔다. '글이 두서없지만 이렇게 두서없는 사람입니다.'라며 정말 두서없이 메일 써왔는데 첨부된 이미지에는 여행용 노트 위에 그려 넣은 자신의 연표가 펼쳐져 있었다. 이게 참 적당히 구체적이고 적당히 추상적이라 넉넉한 인터뷰 시간을 잡고 찾아갔다.
인터뷰이들이 다들 자기 매력대로 신청서를 써주시지만 메일과 신청 양식 모두 적어주셔서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 친구가 소개해주셨다고 하셨는데 그 친구가 혹시 저를 아는 사람인가요..?!
아뇨 그냥 친구가 블로그 돌아다니다가 봤나 봐요. 그때 여행하는 기차 안이었는데. 제가 이런 거 해보고 싶어. 이러니까. 어 그런 거 하는 사람이 있던데 하면서 소개해주더라고요.
진짜요? 신기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신청하고 나서의 일상을 얘기해주셔도 되고, 오늘 얘기만 해주셔도 되어요.
요즘... 인터뷰 신청했을 때는 여행 중이었고, 지금은 여행이 끝났는데 다음 주에 다시 여행하니까 여행과 여행 사이를 사는 어정쩡한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준비하고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무작정 떠나야겠다 싶었는데 혹시나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까 가기 전에 할 게 많더라고요. 뭐 예방 접종도 받아야 하고. 여행에 필요한 일련의 물품들 있잖아요. 그런 게 하나도 없어서 매일 택배를 받고 있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ㅋㅋㅋㅋㅋ
아? 저는 신청서 읽고 여행을 좋아하시는 걸로 느꼈는데, 이전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나 보네요.
집 밖에 나가는 거 싫어해요. 요새 유튜브에 여행기 올리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거 찾아보면서 굳이...? 약간 이런 타입이어서... 여행 가면 힘들잖아요. 그런 게 싫어서 안 갔는데 어쩌다 보니 여행을 가게 되네요.
오우 재발견을 하신 거예요?
재발견은 아니고. 퇴사하고 할 게 없더라고요. 한국은 있기는 싫고. 정말 선택지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뭘 해야 하나 하다 그냥 다른 데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그냥 가게 됐죠.
인터뷰 신청서 쓰실 땐 야구장 투어 하시는 중이라고 하셨어요. 신선하네요. 야구장 투어! 저도 야구 좋아하는데 전 기껏 3개 구장 가본 거 같아요.
저도 야구장 투어 가기 전에는 그랬어요. SK팬인데 문학이랑 잠실 밖에 안 가봐가지고. 좀 먼 데는 가기는 힘도 들고 원정을 갈 만큼 엄청난 팬도 아니니까. 그랬는데 마침 친구도 백수고 저도 백수고해서 이때 아니면 언제 가겠나 해서. 일 관두자마자 그날 바로 출발했어요.
어떻게 코스를 짜신 거예요?
서울/경기 쪽부터 쭉 내려가서 대구를 마지막으로 찍고 다시 올라오는 걸로 했는데요. 서울에서 잠실/고척을 돌고 인천으로 갔어요. 원래 강화에 있는 SK 2군 구장을 가려고 했는데, 김포까지 건너갔을 때 비가 와서 우천 취소가 됐어요. 그래서 강화까지는 못 가고 수원으로 내려가서 KT 구장 갔죠. 제 친구는 한화 팬이어서 서산에 있는 한화 2군 구장에 갔는데 그날도 구장에 도착하자마자 우천 취소가 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2군 경기는 못 보셨네요.
네. 그래서 구장 구경만 하고 바로 대전으로 와서 한화 경기 보고, 광주 가서 기아 경기, 부산 가서 롯데 경기 보고. 저랑 친구랑 야구 보는 날이 아니면 따로 활동을 했는데, 친구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저는 싫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보통 카페에 있고... 아 부산은 옛날부터 구경을 하고 싶어서 광안리 한 번 갔다 오고 영화의 전당? 거기도 다녀왔어요. 늦어서 정작 영화는 못 보고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었는데 그거 보고 그랬어요. 마산에는 당일치기로 한 번 다녀왔다가 월요일에는 경기가 없잖아요.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경주가 대구 가는 길인 것 같아서 들렀다 왔어요.
와 진짜 알차게 돌아다니셨네요.ㅋㅋㅋㅋㅋ 근데 돌이켜보니까 정말 야구만 보셨네요.
친구는 수원 갔을 때 화성도 돌아보고 이것저것 한 거 같은데 저는... 숙소 앞에 공원에 누워있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진짜... 야구만 봤어요. 야구만 보는데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적극 공감합니다. 저도 여행에서 빨리 지치는 편이라 누워계셨다는 게 격하게 공감되네요.
네 힘들어요. 그냥 이동하는 것도 되게 힘들더라고요. 제가 먹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서 맛집 찾아가고 그런 것에 관심이 없거든요.
아아 안 그래도 신청서에 처음 들어본 말 있었는데...
마시는 거 좋아하는 거요?
네네 이거예요.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냥... 살기 위해서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강해요. 아니면 친구들이랑 있을 때 크게 할 게 없잖아요. 그래서 먹는다? 뭐가 먹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드는데 심할 때는 먹는 게 귀찮아요. 안 먹고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우 굶으시기도 해요? 음식이 안 땡기실 땐?
혼자 있을 땐 좀... 근데 제가 위가 좀 안 좋거든요. 그래서 챙겨 먹어야 한다는 그런 걱정은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위가 안 좋으니까 많이 먹지 못하고... 그냥 귀찮은 거 같아요. 먹긴 먹어야 하니까 먹는데 귀찮아요.
안 먹어도 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그러면 정말 땡큐죠ㅋㅋㅋㅋㅋㅋㅋㅋ 먹을 돈으로 마시는 게 좋아요.
마시는 건 어떤 걸 좋아하세요?
종류를 가리진 않는데 커피나 차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캔음료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때그때 꽂히는 것들이 있는데 데자와나 포카리? 그런 거 꽂히면 밥 대신 계속 마시고 그래요.
새로운 음료가 나오면 찾아 마시는 편이에요?
관심이 있는 종류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좀 마셔요. 탄산수도 좋아해서. 요새 제품이 리뉴얼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이즈를 새로 한다던가. 사이즈만 다를 뿐인데 그래도 한 번 마셔보고.ㅋㅋㅋ
야구장 투어에 이어 효도 여행도 가셨고 이어서 또 멕시코를 가신다고... 여긴 좀 길게 가시는 걸까요?
반년...
오오 그래서 조금 급하게 인터뷰를 신청하신다고 하셨는데.
근데 뭔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급한 상황에서 이렇게 신청을 하는 게 상대방의 일정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ㅋㅋㅋㅋ
뭐 제가 거절할 수도 있었겠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되게 조심스러운 게 느껴졌어요. 시간이 주는 변화도 있을 테니 텀을 두고 봤어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퇴사 이후 촘촘하게 여행을 계획하셨는데 즉흥적으로 하신 거예요?
그냥 퇴사 전부터 생각을 했던 건데. 원래 퇴사를 하고 대학원에 복학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는데 너무 돌아가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원 그만둬야겠다 했는데 그러면 막상 할 게 없잖아요. 보통 다 비슷할 거 같은데 공부하고 일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걱정이었던 거죠. 결정할 때는 되게 즉흥적이었던 거 같아요. 적금 만기 되면 수중에 얼마가 생기고, 이 돈이면 어디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신청서에 썼던 듯이 제가 반년 정도 아르헨티나에 있었거든요. 5년 정도 지났는데 그 친구들이 계속 보고 싶어서 아르헨티나를 가야겠다고 즉흥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처음엔 아르헨티나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멕시코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주위에 멕시코 선생님들이 많은데.
선생님들이요?
제가 스페인어 전공을 해서 멕시코 출신 선생님들이 많았었어요. 내 주변의 멕시코 사람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고 친구들도 멕시코 가서 행복했다는 얘기밖에 안 하니까. 안 가봤지만 거기 가면 왠지 행복할 수 있을 거 같고ㅋㅋㅋㅋ
또 그런 장소를 원했거든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인데 언제든지 귀를 닫으면 들리지 않을 수 있는...? 제가 교환학생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제일 신기했던 점이 스쳐 지나가는 얘기들이 다 들린다는 거였거든요.ㅋㅋㅋ 근데 일을 하면서는 모든 소리가 나에게 다 들리고 이해되는 언어라는 게 가장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서울이 너무 싫었거든요. 너무 시끄러워서요. 제가 사는 동네는 인천에서도 월미도 가까운 쪽인데 주택지구라서 굉장히 조용해요. 아무것도 없거든요. 교환학생을 했던 스페인에서는 다른 건 정말 힘들었는데 좋은 점이 있었다면 귀를 닫으려면 얼마든지 닫을 수 있다는 거? 제가 언어를 막 잘하는 게 아니니까 의식을 해야 들리잖아요. 내가 의식을 하지 않으면 안 들리는 환경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멕시코.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학교에서 행정조교를 했었어요. 2년 일했는데 성격에 너무 안 맞더라고요. 교수님들, 선생님들, 다른 행정실 직원들, 학생들을 모두 다 상대해야 하는 직업인데... 힘들더라고요. 그것도 항상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는 게 아니니까 사무실이 되게 무방비로 열려있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되게 컸거든요.
어느 정도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으면 좋겠는데 사무실 환경이... 그게 전혀 보장이 안되잖아요. 심지어 파티션도 없어서 제가 억지로 가구들을 붙여서 저랑 방문자들 간의 벽을 만들었는데...ㅋㅋㅋㅋㅋ 제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더라고요.
꽤 오래 견디신 거 아니에요?
네ㅋㅋㅋ 그래서 죽을 거 같아서 나왔죠. 일하면서 몸이 많이 망가졌는데. 스스로 위험하구나 생각했던 게 파쇄기에 문서를 막 갈면서 다 죽여버리고 싶다. 그 대상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다 죽이고 싶다 라는 마음이 계속해서 드는 거예요. 이 마음이 어디서 들까... 왜 이런 마음이 들까 라고 생각했을 때... 그냥 이 일을 싫어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 공간 없이 사람들을 계속 마주해야 하는 일의 특성이 저랑 안 맞았던 거 같아요. 지금 생각엔
고생은 하셨어도 어떻게 보면 분명히 내 화의 원인을 찾으신 거네요. 앞으로 구직을 하실 땐 기준이 하나 생기시겠어요.
사실 이 일이 맞는 사람들한테는 괜찮을 거 같거든요. 주변을 봐도 잘할 거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요즘 인스타 엄청 하신다고. 커밋 계정도 따로 있으시다고. 아 그 개구리...? 원래 안 하셨는데 최근에 시작하신 거예요?
인스타에 올릴 게 없었어요 사실ㅋㅋㅋ 일을 하니까 매일매일 똑같잖아요. 매일매일 우울한데 우울한 걸 올려서 남의 피드를 더럽히기도 싫고ㅋㅋㅋㅋㅋ 그래서 제가 그린 그림만 종종 개인 인스타에다 올리다가 일 관두고 여행 다닐 때 자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자랑을 하려면 역시 인스타지! 싶어서 그날 뭐 했는지 꼼꼼하게 적어놓고 사진도 올리고 그랬어요. 커밋 계정... 은 제가 커밋을 여행에 데리고 다녔는데 커밋 사진을 찍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뭔가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걸 얘는 갖고 있으니까 걔 인스타 계정을 팠어요. 제가 약간 연극 같은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니까 저 혼자 하는 연극?
ㅋㅋㅋㅋㅋㅋ상황극이요?
맞아요 상황극 되게 좋아해요.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도 저 혼자 상황극을 막 하거든요. 약간 이런 식이에요. 룸메가 어느 날 방청소를 안 해놨다고 하면 다짜고짜 시작하는 거죠. “애미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밋도 약간 역할극의 일종인 것 같아요. 커밋... 얘는 인격이 없으니까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느낌? 그런 게 되게.. 재미가 있었던 거 같아요.
여행 다니는 거 자랑하려고 인스타를 하셨는데 자랑을 넘어 인스타 셀럽이 꿈이시라고...
궁극적으로는 그 계정을 셀럽 계정으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제 개인 계정은 비밀 계정이라서 진짜 친한 지인들 몇 명이랑만 팔로우되어 있거든요.
여행 사진은 커밋 계정으로 공개되는 거예요?
여행지에 가서 커밋용 사진을 따로 찍죠. (아 너님 사진은 따로 찍고?) 네. 근데 그게 힘들더라고요ㅋㅋㅋ 방콕 가서는 하루하고 관뒀어요.
어머니랑 같이 가셨다고 했는데 그 광경을 보신 소감을 혹시 들어봤을까요?
아 근데 평소에도 인형이랑 대화를 해요. 제 인형 친구들이 몇 명 있거든요. 부모님도 그 친구들의 존재를 다 알고 계시고. 또 제가 인형 친구들을 통해 엄마 아빠한테 대화를 시도하거든요. 그러면 그냥 받아주세요ㅋㅋㅋㅋㅋ 그래서 커밋을 데려갈 때도 굳이 뭐...
상황극의 경력이 꽤 되시나 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나 됐을까요..? 잘 모르겠어요ㅋㅋㅋㅋㅋㅋ 습관이거든요 사실.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도 뜬금없이 상황극을 시작해요. 그래서 그걸 받아주는 애들이랑 친해지는 거 같아요.
평소에 자주 생각하는 것들에 관한 질문에는 결혼/연애 등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대체로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하기 싫은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셨네요.
어... 그렇네요.ㅋㅋㅋㅋㅋ 일단 연애에 관해서는 주변의 압력이 되게 많아요. 특히 엄마 아빠... 저는 대학 와서 엄마 아빠랑 가장 많이 싸운 주제가 연애였거든요. 연애해라, 소개팅해라 이런 것들? 그런 공격들에 ‘그냥 하기 싫은데’라고 반응을 했을 때 전혀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상대를 전혀 설득시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전방위적으로 얘기를 듣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도 제가 연애도 안 하고 소개팅도 두세 번 해봤나... 근데 그때마다 ‘아 나는 소개팅할 사람이 아니고, 저 사람과 연애를 할 사람이 아니구나’를 매번 깨닫고 돌아오니까 친구들도 왜 연애를 안 하는지 만날 때마다 계속 뭐라고 하는 거예요. 자주 보는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한 마디씩 하죠.
제가 연애를 하고 있으면 잘 되어가고 있냐고 했을 텐데 안 하니까 왜 안 하냐가 되는 거겠죠. 근데 그 말들이 되게 어느 순간 너무 지치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되게 좀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니까 내가 정말 이상한가 하고 돌아보게 되는 거예요. 한때는 되게 노력을 했거든요.
아 연애를 하시려고?
네. 사람들 말대로 뭔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연애를 하려면 뭘 해야 한다. 머리도 기르고 화장을 하고... 그런 것들을 노력했는데 되게 우울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노력을 해보자. 내가 원할 수도 있잖아.’ 싶어서 그 과정이 즐겁다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즐겁지 않았던 거죠.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연애와 결혼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게 된 거 같아요.
가장 답답했던 건 저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은 건데 사람들은 제가 연애를 못 해서 되게 의기소침해 있다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물론 그런 시기도 있었는데 그건 진짜 저의 욕구를 몰랐을 때니깐. 제가 그런 얘기를 하면 “걱정 마. 곧 좋은 사람을 만날거야.”라고 하는데 제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거든요. ‘좋은 사람이 내겐 필요 없어.’가 사실 나에게는 정답인데.
이건 앞서 얘기했던 혼자 있는 시간과 연결이 되는 거 같은데 저는 외로움이 주기를 가지고 오는 거 같더라고요. 그 증상들이 있어요. 그 증상들에 이렇게 대처를 하면 되겠다 하는 저만의 매뉴얼이 있거든요. 그렇게 그 시기를 잘 보내면 저는 다시 혼자 있는 게 너무 좋고. 굳이 내 인생에 누구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데 이게 정말 이상한 걸까 그런 생각을 했었죠.
의심도 했었어요. 왜 연애를 하기 싫어할까. 이게 진짜 마음일까? 아직 그 부분에 대해 확답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의 저에겐 연애가 ‘굳이?’라는 일종의 선택지인 거지. 저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억지로 만든 자리와 이성으로 비쳐야 하는 시각, 연애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식의 연애가 싫었어요. 혼자를 되게 불안정한 개념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요. 연애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텐데 연애를 해야 한다, 연애하면 좋지 라는 생각들에 은근한 강요와 핍박이 있지 않나 싶은 거죠.
어떤 게 있을까요?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보통 이성애를 얘기하잖아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친구가 없다고 하는데 저는 있다고 믿었거든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친구가 없다고 하는 대전제를 가진 사람과 제가 친구 관계를 맺었을 때 제가 상처를 많이 받더라고요. 이 사람은 연애를 하는 순간 저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니까
그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까 이제 세계관이 다른 사람한테는 내가 스스로 멀어져 주는 게 예의겠구나 라고 해서 조절을 하지만 20대 초반에는 그게 굉장히 힘들었던 거 같아요.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남자 여자로 그 구도를 몰아가는 것도 너무 싫고. 물론 예쁘게 연애하는 커플도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발전적인 관계들은 많이 못 봤던 거 같아요 주변에서.
너님이 생각하는 발전적인 관계는 뭘까요?
음...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제가 이해가 안 됐던 거는 왜 저렇게 하루 종일 붙어있지 싶은 거요. 저한테는 구속 같아 보이는 그런 상황들이 보이는데 왜 저 사람들은 그걸 선택하는지 그게 제일 이해 안 되는 지점이었거든요. 또 연애를 하면 감정적으로 극단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봤을 땐 너무 납득할 수 없는 수준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다들 그렇겠지만 그 감정의 기복이라는 게 특히 연애 초기에 심하잖아요. 근데 제가 그걸 되게 싫어하거든요. 감정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는 거.
연애 말고도 타인이랑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은데 왜 굳이 저런 배타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할까 싶은 거죠. 연애를 하는 게 벼슬은 아니잖아요. 근데 그 관계를 되게 특수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 그걸 허용하는 사회? ㅋㅋㅋㅋㅋㅋ 사회까지 갔네. 그게 화가 났던 거 같아요. 사실 친구나 애인이나 비슷비슷한 것일 수 있는데 왜 연애를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하고, 필수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환상이 되게 많다고 생각해요. 그게 좀 아니꼬왔던 거죠.
지금까지 이야기들이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입장이었다면 너님을 당사자의 입장으로 가져오면 어떠실까요? 연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셨다고 했는데.
그래서 인정하기 싫었던 거 같아요. 같이 사는 친구는 너 좋아하는 게 맞다고 하는데 정말 죽어도 인정하기 싫은 거예요. 왜냐면 좋아한다는 걸 인정해버리면 내가 싫어했던 모습으로 살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되게 지속적으로 했던 노력이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계속 객관화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오 자신의 감정을요?
네. 좋아도 들뜨지 말자 이런 거. 차분하게 좋아할 수 있어.
차분하게 연애를 하셨던 적이 있나요?
아니요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때 정말 글을 많이 썼어요. 내가 뭘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차분해지려면 글을 써야... 되는 성격이거든요. 일기를 많이 썼죠. 무슨 생각을 하고 뭘 느끼고 왜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는지. 저는 감정에 있어서 ‘왜’라는 질문을 되게 많이 던지는 편이라서 계속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썼던 거 같아요.
그 일기장엔 매우 논리적이지만 매우 솔직한 감정을 쓰시는 거네요.
솔직한 감정을 쓰는데 제 나름대로 분석을 하는 거죠. 제가 되게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데 만약에 이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된다면... 난 정말 할 수 있을까? 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많이 썼던 거 같아요. 내가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근데 사실 그분을 좋아하게 됐던 큰 이유 중 하나가 되게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거든요.
오우 마이웨이.
사람들 좋아하고 잘 지내는데 연애에 있어선 굳이?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어요. 같이 있으면 되게 즐거운 사람인데 저한테는 이성적이고 냉철해 보였어요. 저보다 좀 나이도 많고 항상 차분했거든요. 그게 되게 매력 포인트가 아니었을까.ㅋㅋㅋㅋ 그래서 그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이 사람이라면 연애를 할 수 있겠다. 내가 싫다고 생각했던 연애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신 건 결국엔 그분을 통해 연애관을 좀 더....
확고하게 됐죠. 차이고 나서 훨씬 더 확고해진 면이 많긴 했어요. 일단 제가 고백을 했을 때 거절을 되게 소상하게 해 주셨거든요ㅋㅋㅋㅋㅋ 저는 대면으로 고백을 했는데 거절은 메일로 받았어요. 차마 널 볼 용기가 안 난다며 차분하게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는 이유를 써주셨는데. 결론은 내가 좋지 않다는 건데...ㅋㅋㅋㅋ 그 이유가 제일 컸던 거 같아요.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 결혼을 해야 할 나이고 결혼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너는 너무 어리고. 뭔가 우리가 갈 길이 너무 다른 거 같다.’ 뭐 이런 얘기였는데 이게 무슨 말일까 계속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 그 사람이 꿈꾸는 것도 일반적으로 말하는 연애와 결혼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내가 이 사람을 몰랐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뭔가 연애란 이런 거지 라는 식으로 통념이 섞여버린 그런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는 거죠?
연애로는 표현이 잘 안 되지만 예를 들어 결혼할 때 결혼식을 꼭 치러야 하고, 명절엔 찾아뵈어야 하고, 애는 낳아야 하고. 그니까 어떤 정해진 패턴이 있잖아요. 그런 제도가 싫은 거예요. “결혼을 안 할거야”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사람들이 말하는 제도로서의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거지. 아예 내 인생에 누구도 들이지 않겠어 라는 건 아니거든요.
연애에 있어서도 약간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한다는 행위 자체가 저한테는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뭔가 특별한 관계... 특별하다고 하면 웃기긴 하지만.. 뭐 그런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게 일반적인 틀은 아닐 수 있겠다 싶은 거예요. 그리고 그걸 저 자신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죠. 저 이상한 소리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아뇨 아뇨. 하신 말씀 들으니까 정말 관계의 시작이란 별 게 아닐 수 있겠구나 싶네요. 연애-결혼에 이어 돈과 돈벌이에 대해서도 생각을 자주 하신다고 했어요.
최근이 제가 비정상처럼 느껴지는 시기였거든요. 일이 저한테 너무 맞지 않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사실 회사에 들어가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거죠. 출근 첫날부터 한결같이 내일도 회사 가기 싫다고 생각하고 있는 저를 보면 아 정말 내가 이 일을 싫어하는구나 싶죠. 회사는 학교보다 더 할 텐데 나는 이 사회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때 현대 사회의 노동의 역사에 대해서 저 혼자 생각을 해봤거든요. 지금 노동의 모습이 어디서 출발한 걸까. 그렇게 치면 당장 개화기 조선시대만 들어가도 지금의 모습이 일반적인 노동은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제야 안심이 되더라고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시대랑 안 맞는 거구나ㅋㅋㅋㅋ
개화기에는 노동이 어떤 모습이었나요?
제가 싫어하는 노동의 모습은 컴퓨터만 보고 있는... 흔히 말하는 회사원의 모습이었거든요. 계속해서 전화를 받고 응대를 한다거나. 사실 개화기보다 더 이전으로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잖아요. 그 당시의 일반적인 노동의 모습이었던 농사와 지금 일반적인 노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의 모습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산업의 흐름에 따라서 일의 형태가 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씨를 뿌리는 행위가 마우스를 클릭하는 행위로...
같은 행위일 수도 있는데 지금 시기의 노동의 형태와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노동의 형태가 다양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못하잖아요. 이 고정된 노동 형태를 벗어나는 순간 사회적인 안전망이라는 건 1도 없고요. 내가 사회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나 같은 사람을 맞출 자리 없는 사회가 이상한 거 아닌가 싶어요. 일을 하기 싫다는 건 그 형태의 노동을 하기 싫다는 의미죠.
아... 단지 놀고 싶어요가 아니라...
놀고는 싶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찾아보신 건 중에 가까운 형태는 있을까요? 완벽할 순 없겠지만 맞는 노동의 형태.
정말 모르겠어요. 사춘기처럼 엄청 방황하는 기분이에요. 근데 지금 제 나이대의 사람들이 그걸 찾고 있는 사회가 이상한 게 아닌가 생각을 해요. 아니 물론 찾고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찾는다는 행위 자체도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고 찾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 어떠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게 이상한 거죠. 왜 사회가 정해놓은 큰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절벽에 뛰어내리는 심정이어야 하는가 그냥 그렇게 느꼈던 거 같아요.
앞으로 노동 시장에 나갈 제가 더 고민을 해봐야 하는 생각 같네요.ㅋㅋㅋ 말씀 중에도 자주 나오긴 하지만 ㅋㅋㅋ “하기 싫은 이유를 나열하기”를 자주 생각하신다고 했어요. 아우 하기 싫어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왜 싫어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난 그걸 잘 못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결론도 이끌어내신 거 같은데 이건 어떨 때인가요?
저는 정말 손을 가만히 못 두거든요. 손으로 뭘 하는 걸 좋아하는데 막상 하려면 귀찮잖아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손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는 항상 가득해서 그린다거나, 쓴다거나, 만드는 걸 좋아하고 자꾸 뭘 해요. 그때그때 다른데 얼마 전엔 뜨개질로 반다나를 만들었거든요. 그냥 한 땀 한 땀 이렇게ㅋㅋㅋㅋㅋ
올해는 지금(9월)까지 8개월 정도가 너무 심심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일의 양과 상관없이 인생이 너무 따분하고 지루하고 심심한 거예요. 어떤 일을 벌이고 싶은데 일을 하면 그걸 못하잖아요. 일종의 미친 짓을 하고 싶은데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면 너무 제약이 크니까요.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뭔가를 하고 싶고. 또 막상 하려면 힘드니까 머리에선 하기 싫은데 손에선 하고 싶은...? 이상하네ㅋㅋㅋㅋㅋ 모순적이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다음 질문이 [해야 하는 일이 없다면 하고 싶은 것]이었는데요. 하고 싶은 일에는... 손으로 하는 거 하나도 안 적으셨더라고요.
뭔데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뜨개질 이런 거 하나도 안 나왔어요. 티비로 야구 보기. 아 리모컨은 손으로 하시는 건가...
아 그땐 여행을 끝내고 오는 길이었잖아요. 제가 평소에 보는 게 야구밖에 없는데 티비가 없어서 노트북으로 보거든요. 근데 여행 중에 야구를 계속 야구장에서 봤잖아요. 그러니까 누워서 야구가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집에 가는 기차 안이니까 집에 가자마자 누워서 야구를 봐야겠다 하고 썼던 거죠ㅋㅋㅋㅋㅋ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도 하신다고 했는데 올해만큼 지루한 시간은 없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혼자 있을 때 지루하신 건 아닌 걸까요?
혼자 있을 땐 만화책을 보든가,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은데. 너무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건 제 인생 자체가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느낌이 되게 강한 거 같아요. 제가 살면서 정말 처음 느껴보는 지루함이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재미를 갈구하는 제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거 같아요.
유난히 올해에 그렇게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도 왜 라는 질문을 해봤나요?
너무 거대해서 안 했어요.ㅋㅋㅋㅋㅋ 그 생각이 드니까 너무 무기력 해지더라고요. 일을 많은데 너무 지루하고 따분하니까 사무실에서 패악질(?)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인생이 힘들어진 거 같아요. 한 번 잃어버린 재미를 어떻게 찾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만화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만화책 말고도 활자 인쇄물 구매행위를 정말 좋아하신다고.
제가 인쇄 자본의 노예예요ㅋㅋㅋㅋㅋㅋ 읽지도 않으면서 책 사는 거 되게 좋아하고 특히 만화책, 잡지, 앨범 같은 경우는 소장 욕구가 엄청난 거 같아요.
앨범은 좋아하는 뮤지션을 콕 찝어서 구매하시는 거예요?
학생 때는 제가 지니나 벅스 같은 걸 안 들었어요. 그 사람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음반을 사거나 아니면 라디오에서 듣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정말 돈을 아껴서 구입한 앨범을 CDP에 넣고 듣는 혼자만의 시간이 되게 소중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앨범을 모으기 시작한 건데 돈이 생기니까ㅋㅋㅋㅋ 그냥 막 사게 되더라고요. 근데 사실 너무 슬픈 게 들을 시간이 없어요.
아....
그때의 감성이라던가 소중한 마음들을 다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못 찾을 거 같아요. 좀 슬프게도.
알게 모르게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계셔서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닐까요? 잡지는 어떤 종류를 보세요?
잡지는... 남성 패션잡지를 좋아하는데. 맨즈논노라고 일본 남성 패션잡지인데. 그 전에는 일본에서 나오는 여성 패션잡지를 다 봤었거든요. 근데 제 취향의 옷들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연히 남성 잡지로 넘어왔는데 다 제 취향이더라고요. 근데 주변에서는 뭔 짓을 하는 거냐, 잡지를 왜 구매하냐는 반응이지만... 잡지 한 번 사면 네다섯 번은 계속 봤거든요. 너무 좋았어요. 그 코디를 보는 게.
패션지는 텍스트도 있지만 비주얼적으로 뽑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텍스트만 있으면 거듭해서 보기가 쉽지 않잖아요.
안 보죠ㅋㅋㅋㅋ 근데 보다 보니까 그 잡지 자체가 일종의 고정된 스타일이 있는 잡지여서 더 이상 새로운 게 안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정말 신박하다 싶은 게 안 나오기도 하고, 옛날 같은 재미를 찾을 수가 없게 되는 것 같아서 잡지에 쓸 돈을 만화책에ㅋㅋㅋㅋㅋ
아 저는 잘 모르는데 어떤 장르를 좋아하시는 건가요?
예전에는 순정만화를 되게 좋아했었는데 몇 년 전에 구입한 것들을 다시 보니까 유치하더라고요ㅋㅋㅋ 그리고 청춘물을 되게 좋아하는데... 이 단어를 쓰면 사람들이 식겁하긴 하지만 치유계라고 만화나 애니 같은 것도 계열이 있거든요.
치유? 뭐 힐링의 의미인가요...?
네네 그냥 잔잔한 일상물이 치유계라고 하는데 주로 그런 일상물들을 많이 구입하죠. 만화는 한 번 구입해서 계속 계속 봐요. 밤에 CD 틀어놓고 혼자 만화책 보면 진짜 좋은 거 같아요.
최근에 그런 일상을 보낸 적이 있으신가요?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음악을 틀어놓고 보진 않았고 그냥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만화책을 꺼냈던 것 같아요. 아 근데 얼마 전에 언니네 이발관 앨범 구매했거든요.
아... 마지막 앨범을 들으신 건가요?
사놓고 아직 못 들었어요ㅋㅋㅋㅋ 지금 사지 않으면 절판된 이후엔 절대 못 사겠구나 해서 걱정이 되어서 바로 질렀거든요.
아 인터뷰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인터뷰마다 맨 위에 BGM을 넣거든요. 언니네 이발관의 곡 중에 하나 골라주실 수 있어요?
좋아하는 건 5집인데 <인생은 금물>..? 첫 소절 듣자마자 아 맞아 이 목소리였지. 이 목소리가 그리워서 내가 이 앨범을 샀지. 그런 느낌이에요. 목소리가 힘이 나는 목소리가 아닌데... 힘이 나더라고요ㅋㅋㅋㅋㅋ
인터뷰에서 무슨 얘기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이야기”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걸 모두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평소에는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걸까요?
몇 년간은 보통 룸메랑 계속 말을 했어요. 룸메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듣는다던가 그런 식으로. 또 같이 일했던 오빠가 있는데 그 오빠가 약간 듣는 기계예요.ㅋㅋㅋㅋ 아무 말이나 다 해도 다 듣거든요. 그래서 정말 아무 말이나 다 할 수 있었어요. 좀 신기했던 게 영혼이 없는 느낌이 아니라 분명 이 사람이 내 얘기를 듣고 있구나 싶은데 정말 기계 같은 느낌...?
이야기를 막 열심히 듣고 있진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듣는 건요?
제한된 환경에서 제한적인 일만 하다 보니까 제가 직접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제한적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뭔가 비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한테서 이야기를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상대방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거잖아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상상을 하게 되는 게 즐거웠던 거 같아요.
혹시 그런 경험이 있던 걸까요?
제가 감정 이입을 잘하거든요. 저랑 같이 일했던 학생 중에 교포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랑 이야기하면 되게 특수하면서도 일반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제가 했던 경험들이랑 연결이 되면서 마치 내가 겪은 것 같은...? 사람마다 다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텐데 다들 그 이야기들을 어디다 풀어놓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그래서 이야기를 찾으러 다녀야겠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너님 블로그를 봤을 때 취지에 대해서 공감이라고 하면 건방진 거 같은데ㅋㅋㅋ 여튼 공감을 했던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저도 이렇게 이야기를 듣는 건 제 욕구를 채우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재밌잖아요. 남 얘기.
근데 뭔가 저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가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게 좋기 때문에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인터뷰는 아닌 것 같아요. 이번에 사직 구장으로 야구 투어를 갔을 때 저희 앞에 어린 애랑 아버지랑 앉았어요. 근데 아버지가 자꾸 자리를 비우는 거예요. 이 아이는 야구는 보고 싶은데 아버지는 자리에 없으니까 약간 불안해하고 막 그런 상황이었어요. 근데 그게 계속 반복이 됐거든요. 그 순간 저는 그 아이의 마음에 이입이 되는 거예요. 나도 저랬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 아버지가 3번째인가 4번째로 자리를 비웠을 땐 정말 시간이 꽤 지났거든요. 그래서 그 애가 아빠를 찾으러 일어났어요. 일어나서 계단을 내려가려 하니까 주변 관중들이 ‘내려가지 마라! 여기서 기다려라!’ 하는데ㅋㅋㅋㅋ 그 뒤에 그 아이를 저 혼자 그림으로 그렸는데 이건 일종의 가공이잖아요. 경기를 보는 와중에 모두가 이 아이를 신경 쓰고 있었던 너무 재밌는 그 상황을 제가 가공하면 저한테는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이 되는 거예요.
사건의 현장에서 관찰을 하고 제가 한 번 가공하는 과정을 거칠 때 이게 비로소 나한테 이야기가 되는 것 같은 생각? 그래서 제가 인터뷰를 좋아하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느꼈던 부분이 그런 부분이었던 거 같아요. 누군가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사냥하는 와중에도 2차 창작이 일어나야 그래야 나에게 온전한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 거죠.
오오 그렇네요. 저는 인터뷰 앞뒤로 서너 줄을 덧붙이는데, 말씀을 들으니까 저는 그 짧은 몇 줄로 제게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원래는 갖고 있는 이야기가 많은 편이라고 하셨는데 언제부터...
일 하고 나서부터... 사라진 것 같아요.
일이 아주 원흉이네요.
모든 제 불행의 원인인 거 같아요ㅋㅋㅋㅋ
그렇게 다 엮이는데 어떻게 버티신 거예요.
일단 버텨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대학원을 다니려면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한 건데 처음부터 2년을 하기로 계약을 하고 갔거든요. 모르는 사람 같으면 관두고 나왔을 텐데 학부 때 교수님들이 계시니까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돈을 많이 받아서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ㅋㅋㅋㅋㅋ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열심히 저축했으면 금방 관뒀을 텐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활자 인쇄물을 사는 데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ㅋㅋㅋㅋㅋ
구글 신청 양식에 추가로... 무려 너님 인생의 연표를 사진으로 보내주셨어요.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꼬집지는 못하겠지만 “힘들 때”라고 많이 표현하신 거 아세요?
우울하다 힘들다는 말을 많이 쓴 거 같아요ㅋㅋㅋ 원래 좀 경향이 부정적이에요. 부정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해석을 하고. 부정적으로 예상을 해요.
사춘기 이전은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멀리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열네 살인데. 그때 이미 발현되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우울감이라는 건 그 부정적인 성격에 따라붙게 된 거 같은데 고등학교 때부턴 기본 베이스가 부정적이고 우울하고 그랬던 거 같아요. 근데 친구들과 있을 때는 굉장히 말도 많고 상황극 같은 거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웃기는 거 좋아하고 실없는 얘기하는 거 좋아하고요. 그런데 사실 저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의 베이스가 우울과 부정이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과 간극이 너무 커서 힘들더라고요.
그 모습은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노력이기도 했고, 그런 성향도 분명히 있기도 했죠. 고등학교 때 나의 어두운 면을 보이면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저랑 말을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시끄러운 애라고 생각을 했을 수 있고요. 고등학교 때는 그 이중성 때문에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서는 신나게 있다가도 혼자가 되는 순간에는 바로 급격하게 우울이 나타나니까.
대학생이 되어서는 새내기니까 선배들한테 무조건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이러한 고민을 털어놨을 때 선배가 그런 얘길 해줬어요.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닐 거야. 내가 생각하는 너는 되게 밝은 사람인데 너가 힘들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그 얘기를 듣는데 저도 그런 것 같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 시기에 덜 우울해지긴 했고요.
그러다가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갔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말도 안 통하고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스페인 남쪽으로 가면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북쪽에 있어서 사람들이 좀 차가웠거든요. 물론 제 친구들은 참 좋은 친구들이었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제가 위축되어있는 상태이기도 했고요.
초창기에는 정말 하루에 말 한마디도 안 하는 날들이 많았어요. 친구가 없었으니까. 그냥 수업 듣고 집에 오는 걸 반복하니까 원래 제 자신으로 돌아가던데요ㅋㅋㅋ 엄청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그동안 느꼈던 우울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었죠. 감정적인 우울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고독해서ㅋㅋㅋ 대학 초창기에 행복을 끌어올렸다가... 스페인에서는 그만큼 더 극단으로 간 시기였던 거 같아요.
제가 1년 반 정도 나가 있었는데 다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저도 많이 변했지만, 제 주변 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친한 선배들은 다 졸업하거나, 취업 준비 중이어서 볼 수가 없고. 동기, 친구들도 이제 거의 사라져 있고. 그래서 군대 갔다 복학한 것처럼ㅋㅋㅋㅋㅋ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고 전혀 안 하던 학과 활동도 일부러 더 해봤던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들 많은 술자리도 찾아가기도 하면서. 외로운데 나에게 엄청 친밀한 관계는 더 이상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피상적인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관계가 가진 명확한 한계들이 있잖아요.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다 누렸던 것 같아요.
오히려 자유로운 건가요.
애초에 그런 마음인 거죠. 사람들과는 친한 친구가 될 수 없겠구나 싶은? 진짜 새벽까지 놀고 아무 말이나 다 하고. 어차피 안 볼 사람들이랑 그렇게 2년 즐겁게....ㅋㅋㅋㅋ 필요 이상으로 막 다가가는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대학에서의 관계를 처음 경험했던 것 같아요.
나쁘지 않았다는 표정인데요.
네ㅋㅋㅋ 재밌었어요.
그 이후에는 또 변화가 있었을까요? 우울함을 받아들이는 너님에게
그때 혼자 있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밤에는 사람들이랑 놀아도 주말에는 집에 있으니까 혼자 시간이 너무 많이 남더라고요. 그때 알바를 정말 많이 뛰어서 돈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혼자 영화도 보고, 혼자 밥도 먹어보고. 쇼핑도 혼자 해보고. 그냥 혼자 쏟아내는 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혼자의 즐거움을 엄청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제일 좋아하는 게 혼자 영화 보는 건데 아직도 제일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혼자와 우울함을 분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전에는 혼자에 우울함이 따라오는 거라고 느꼈던 걸까요?
혼자일 때 우울함이 많이 발현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감정에 대해서 이유를 많이 묻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우울해질 것 같으면 내가 왜 우울할까. 무엇이 날 우울하게 만들까. 그럼 내가 나를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등등? 그런 생각들로 외로움에 대한 매뉴얼을 구축하기 시작했어요. 외로움이라는 게 외로움! 하고 이마에 외로움이라고 쓰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내가 외롭다고 깨닫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지금 외로운 건가 하고 파악을 못할 때가 많았어요. 이제는 내가 어떤 상황에 주로 외로워하는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훌륭한 매뉴얼이네요. 근데 생각을 되게 깊게, 끝까지 하시는 편인 거 같아요.
요즘엔 그냥 안 하려고 해요. 인생이 피곤해지더라고요ㅋㅋㅋㅋ 그리고 상담을 받았을 때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감정을 너무 억제한다고. 근데 그렇게 감정을 억제하게 하는 기제가 모든 감정의 원인을 찾아야 직성이 풀리고, 그래서 똑같은 감정적인 실수를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 때문이라는 것 같더라고요.
아까 연애 얘기하실 때 그런 느낌을 받긴 했어요.
약간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 제일 무서워요. 제가 차이고 나서도 전혀 슬프지가 않았거든요. 차이고 나서 슬픔을 인지한 게 몇 달 뒤인 거 같아요. 그 사람의 대답을 전부 다 납득할 순 없어도... 솔직히 기대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였는지 의외로 좀 덤덤했어요.
기대가 크지 않았던 게 고백을 하시는 과정에서도 충분한 이성적인 프로세스가 거쳤다는 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죠. 나 싸이코 같네ㅋㅋㅋㅋㅋ 모든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이 사람은 99.9%의 확률로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자꾸 희망을 찾는 제 자신을 많이 혼냈죠ㅋㅋㅋ
그럼 0.1%에 걸고 고백을 하신 걸까요?
아뇨. 그것도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 제가 누굴 좋아하면 되게 기일~게 좋아하거든요. 그전에 이미 짝사랑을 한 3년? 한 상태였는데, 짝사랑의 기간에 대해서 되게 많이 곱씹어 봤었어요. 그때 처절하게 얻은 교훈이 짝사랑에도 기한이 있어야 하는구나 였거든요. 짝사랑을 끊는 방법은 고백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차여야 끊지. 차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끊겠어요. 그래서 저를 위한 고백을 감행한 거죠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조금 미안한 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담은 언제 받으셨어요?
작년 가을부터? 학교 내 상담센터가 있어서요. 객관적인 상태로 바라볼 수 있는 우울은 괜찮은데 우울의 강도가 통제를 벗어났었어요. 나름대로 모든 변수를 다 제거했는데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답답하고 좀 위기라고 느껴서 상담을 받았는데 좋던데요.ㅋㅋㅋㅋ
저는 제 자신을 되게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몰랐더라고요. 감정을 통제하려는 행위 자체가 저를 억제하고 있다는 걸 인지를 못했어요. 차이면 당연히 슬퍼야 하는데 무덤덤했잖아요. 저는 감정이 이렇게 되는 게 싫으니까 조절을 하려고 하는 건데 그럴수록 거기서 오는 우울감 클 수 있다는 게 납득이 되었던 거 같아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 되게 생소하더라고요.
감정이 있는데 저는 그 감정과 되게 떨어져 있는 거예요. 저는 자기 객관화라고 생각했던 게 저를 되게 우울하게 만들었던 거죠. 있는 감정을 처리를 못하니까. 사실 지금도 잘 되진 않는데 노력하려고 약간 기계적으로 생각했던 거 같아요.ㅋㅋㅋ 아 지금은 슬픈 상황이니까 슬픔을 느껴보자. 지금은 행복한 거 같으니까 행복함을 느껴보자. 뭐 이렇게 ㅋㅋㅋㅋㅋㅋ 그런 노력을 하던 와중에 소개팅을 하게 됐어요.
오우!
소개팅을 나가보니까 불편한데 불편한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되게 제가 원하던 조건의 사람이었는데도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고.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렇죠. 그래서 친한 언니를 불러서 막 얘기를 했는데 언니가 저한테 뭔가 걸리는 게 있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밤길을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제가 그분을 아직도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그제야 차인 게 너무너무 슬픈 거예요. 집에 올 때까지 꺼이꺼이 울면서 집에 왔어요. 그때 처음으로 슬픔을 느꼈던 거 같아요. 아 이게 슬픔을 느끼는 방법이구나.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내가 어느 정도 풀어주면 팍 하고 터지는구나. 집에 와서도 한참을 룸메 붙잡고 울었던 거 같아요.ㅋㅋㅋㅋㅋㅋ
많은 얘기를 쓰고 싶었겠지만, 연표로는 요약을 해주셨어요. 1학년 때는 혼자 연극도 보고, 좋아하는 평론가의 수업도 들으셨다고. 행복한 기억인가요?
그때는 뭔가 소소하게 행복한 일들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는데 어른이 된 거 같고. ㅋㅋㅋㅋㅋㅋ 내가 스스로 돈을 벌어서 연극을 보러 오다니! 뭐 이런 것들.
1학년 때에는 얼마나 수업이 듣기 싫었겠어요. 대학도 가기 싫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학기마다 좋아하는 수업이 하나씩은 있었어요. 그 수업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거죠. 그땐 되게 소녀 감성이어서 그 평론가님 보는 게 되게 설레고. 아직도 기억나요. 금요일 수업이었는데 금요일마다 학교 가는 길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리고 2학년이 되고선 그냥 누군가도 아니고 “괜찮은 누군가가 대신 살아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대요.
제 인생에 대한 걱정은 되는 거예요. 때려치우려면 얼마든지 때려치울 수 있는데 나중에 수습을 해야 할 때가 걱정이 되어서. (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또 너무 막살면 안 되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쁘셨네요. 과외랑 알바로.
알바의 노예였죠. 돈은 학생치고 많이 벌었는데 항상 결핍된 상태에 있었어요. 돈을 벌어도 항상 돈이 없는 거 같고. 그때 정말 열등감과 우울감이 폭발을 했던 거 같은데. 왜 나는 금수저가 아니어서 이렇게 알바를 하면서 연명해야 하는가. 나도 엄마, 아빠의 용돈을 받으며, 저 친구들처럼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죠.
졸업학기엔 교생을 하셨다고 했어요.
네 교직이수를 해서... 좋던데요? 제가 그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되게 관심이 많아요. 16~17살? 그 나이대 아이들한테 관심이 많은데 그 아이들을 실제로 만난다는 게 정말 설렜어요.
왜 그 나이대가 유난히 관심이 갔을까요?
제가 그 나이대였을 때 생각이 나고... 가장 소중한 순간이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재밌었던 때, 색으로 표현하면 선명한 색이었던 시기 같아요. 애들이 되게 살아있잖아요. 여튼 교생을 나가서 내린 결론은 선생이 맞지 않다는 결론인데ㅋㅋㅋㅋㅋ
일단 입시가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요. 입시 때문에 아이들이 고민하고, 자신을 싫어하게 되고. 이런 상황이 정말 가슴 아픈데 거기다 대고 나는 “너 수학해야 된다!!” 막 이런 말이나 하고 있으니까ㅋㅋㅋㅋ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냥 애들한테 잠 좀 많이 자라. 밥 좀 많이 먹어라. 친구들이랑 더 놀아라. 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아니 사실 그렇게 얘기하긴 했는데ㅋㅋㅋ 그 얘기를 할 때 애들이 되게 절 멀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교생 끝났을 때 그런 얘기를 한 게 너무 미안했어요. 내가 저 아이들의 사정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 저런 말을 했구나 싶고. 배부른 소리로 들렸겠죠.
여튼 교생 일정이 너무 빡빡하고 해야 하는 일도 많아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애들이 되게 좋아해 주긴 했어요.ㅋㅋㅋㅋㅋ 아르헨티나에서 받았던, 순수하게 누군가를 존재만으로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애들한테서 본 거예요. 그래서 감동했던 거 같아요.
교직이수는 열심히 공부해서 하셨겠지만... 고이 접고 졸업!
교사는 안 되겠다!ㅋㅋㅋㅋㅋ
대학원 생활은 어떠셨어요?
대학원은 실패인 거 같아요. 너무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기도 했고 대학원이라는 환경 자체가 저란 사람한테 맞는 환경이 아니더라고요. 매주 페이퍼를 써서 내는데... 누구나 그게 힘들겠지만 저는 이게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누가 1주일 만에 자기 생각을 정립을 하고 그걸 학술적인 언어로 풀어쓸 수 있단 말인가... 이게 말이 되는 기간과 말이 되는 시스템인가... 이상하더라고요. 약간 글 찍어내는 공장에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재료는 안 주는 공장이요.
그걸 어떻게든 버텨내는 사람이 결국 A를 받는 건데 저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들어간 거지 그렇게 써재끼기 위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저는 책을 읽는 걸 좋아하고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하지만 그걸 나에게 독촉하는 건 너무 싫었어요. 정해진 기한도 양식도 있고요. 그리고 학술적인 언어에 적응을 해야 하겠지만 저는 적응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이렇게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언어로 내 생각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물론 논문 읽는 거 좋아하긴 하는데 논문의 특징이 그거잖아요. 한 마디로 될 거를 쓸데없는 말들로 장황하게 풀어쓰는? 근데 그걸 잘하는 사람이 결국 학자가 된다고 하니깐... 그 시스템 내에서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느꼈어요. 실제로 지도교수님도 저를 되게 무능력하게 봤을 거예요ㅋㅋㅋㅋㅋㅋ
결국 휴학을 쟁취하셨어요. 어떻게 설득이 되던가요? 부모님이 반대하셨잖아요.
그냥.. 밤에 아빠한테 전화해서 죽고 싶다고 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가장 강력한 설득 방법을...
매주 주말에 집에 갔는데 그때마다 대학원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하나도 안 했어요. 일도 너무 힘들고 맨날 우울하고 죽고 싶다고 하고. 실제로 제가 정말 많이 아팠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엄마 아빠가 다 때려치우라고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일과 대학원 둘 중 하나만 그만둬도 살 것 같았어요. 돈이 더 좋은 거 같아서 휴학을 했는데 휴학하고 나서 1~2주일은 계속 실실 댔어요. 이유 없이 너무 기쁜 거예요. 삶이 행복하고. 일이 끝나고 나면 계속 대학원 숙제를 했어야 하니까 주말조차 쉴 때가 없었거든요. 근데 대학원 그만두고 나니까 퇴근하면 시간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돈을 쓰기 시작했죠.
대학원생들이 조교를 많이 하잖아요. 근데 병행이 쉽지 않아 보이던데 되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진짜 꾸역꾸역.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는 거죠. 먹는 걸 포기하거나, 잠을 포기하거나. 제 생각엔 건강과 맞바꾸는 거 같아요. 근데 조교들 보면 친절한 사람들이 없잖아요. 진짜 인생의 극단에 몰려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휴학의 기쁨이 오래가시진 않았나 봐요.
원래 일도 하기 싫었는데 대학원이 싫다 50%, 일하는 게 싫다 50%였다면. 대학원을 관두고 나니까 일하기 싫다가 100%가 된 거죠.ㅋㅋㅋㅋㅋ
이제 퇴사까지 이루셨는데 생각보다 아무 느낌이 없으시다고...
사무실에 남아있는 오빠한테 자랑할 때는 기분 좋았는데 자랑할 때 외에는 아무렇지 않던데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이 다시 시작되니까.
이제 슬슬 마지막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글 쓰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낙서하는 것도. 많이 아니고 적당히 좋아하신다고 했어요.
적당히 이상 좋아하는 것을 경계하는 거 같아요. 음... 덕질을 해도 그 적당한 선을 넘지 못하는 거 같아요. 저한테는 명확하게 보이는 빠순이의 구간을 넘을 수는 없어요. 그 선을 넘는 순간 거기 들여야 하는 감정과 시간과 노력 그 모든 것들이 저한테는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항상 언저리까지만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에요. 아이돌도 야구도. 지금의 취미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오늘 인터뷰도 적당한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어땠어요?
아까 잠깐 화장실 가셨을 때 현타가 왔어요. 모르는 사람한테 별의별 얘기를 다하고 있구나 싶어서요.ㅋㅋㅋ 이 상황 자체가 굉장히 신기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 거 같아요. 제가 원래 말하는 거 좋아하긴 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진짜 장난 아니거든요. 원래 말하려고 만나서 그런가... 너님 재능이겠죠? 사람을 말하게 할 수 있는.
신청은 너님이 했으니 시작은 너님이 한 거죠.
친구랑 얘기하는 기분이었어요. ㅋㅋㅋㅋㅋ 3시간이 참 빠르네요. 아 그리고 제가 블로그를 탐방하며 느낀 게 하나 있는데 가끔 오타가 있어요.ㅋㅋㅋㅋ 약간 강박 같은 게 있어서 제가 쓴 글도 계속해서 읽거든요. 오타를 본 순간엔 오타에 집중이 되어서 그때부턴 약간 오타를 의식하면서 읽더라고요.
오케이 너님 건 특별히 맞춤법 검사 2번 돌려드릴게요.
내가 이 인터뷰를 아주 느리고 천천히 게으르게 적는 동안 인터뷰이는 주변 지인들을 상대로 써 내려간 초상글(?)을 모아 책까지 출판하셨다. (돈을 냈더니) 영광스럽게도 나 역시 초상글을 받을 수 있었고, 인터뷰할 때 내 모습에 대한 인터뷰이의 분석을 듣는 건 처음이라 무척 신선했다.
그제서야 조태희에게 카세트 테이프처럼 A면과 B면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사람은 질문을 하고 다른 사람은 대답을 하는 인터뷰에서는 A면의 조태희가 재생된다. 딸깍.
조태희가 방금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갔나? 날카로운 질문과 명쾌한 분석을 한다.
일상의 대화를 할 때는 B면의 조태희가 재생된다. 딸깍.
조태희, 내 얘기 듣고 있니? 가끔 내가 한 말이 이해되지 않고 조태희를 통과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 글팔이 해옥의 <초상화 말고 초상글> 中
아 이래서 친구들이 인터뷰할 때만큼만 자기 얘기에 집중해달라고 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