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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아홉수

개똥같은 인터뷰 #38

by 태희킷이지
개똥같은_인터뷰_로고(흰).jpg


https://youtu.be/iXfALnm3UFc


너님과 나님의 거리는 항상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조금만 애쓰면 A+를 맞을 수 있었던 체육 교양을 함께 들었던 스무 살 때도. 서로에게 아는 척 할 수 있을만한 일상보단 업데이트 해야 할 근황이 많은 지금도. 잠깐 편한 분위기 만들어보겠다고 애써 오버하는 게 너무 싫은 나는 그 적당한 거리감 때문에 오히려 편안했던 것 같다. 지(2019), 지(2018), 지난(2017) 초여름의 어느 날 덕분에, 너님과 나님의 사이를 좁히지도 넓히지도 않았던 그 시간 덕분에, 이제껏 그랬듯 앞으로도 나는 너와 부담 없을 예정이다.

아 물론 인터뷰가 올해도 넘겼으면 솔직히 좀 부담일 뻔했다.




질문을 적어온 건 아니고 너님이 써준 거 뽑아왔어. 근데 거슬리는 답변이 있었는데. 해야 할 일이 없다면 하고 싶은 것이라는 질문에 여자친구랑 요리하고 싶다라니...


만난 지는 이제 1년 정도... 아 이거 존댓말로 해야 하나요?


욕설을 포함하여 편하게 해


이제 1년 좀 넘었는데 처음에 만난 건 수업 듣다가. 일단 우리 집안 쪽에 일본 피(?)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섞여 있긴 하니깐. 그래서 뭔가 좀 더 만날 때 공통분모라는 게 있던 것 같아. 친해지다가 어떤 계기로 발전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친하게 술 먹고 친한 동생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자친구 되어있더라고.


한국말 잘하심?


따로 말 안 하면 일본 사람인지 몰라. 한국에 온 지 4~5년 정도 됐고 그 전에 동방신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일본에서도 외국어 고등학교 나왔더라고. 거기서도 한국어를 배웠고 학교에 유학 와가지고 만난 거지.


근데 너님한테 일본 피가 섞여있다는 건?


친가 쪽에 가족 중에 일본 분이 있어서. 친척들도 일본에 사는 친척분들도 많아.


국제 연애라고 써 있길래 그냥 떠올렸던 건 언어 때문에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친구가 그 정도로 잘하면...


내 쪽에서 불편한 건 없었는데 그런 건 있는 거 같아. 강박관념? 걔가 잘 하니깐 나도 일본어를 잘해야하지 않을까 싶은 거. 난 하나도 못 해.


익스큐즈미 나마비루 쿠다사이~


그런 건 하지.ㅋㅋㅋㅋㅋㅋ 근데 문제가 되는 게 지금 같이 살고 있다보니깐 빠른 시일 내에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


둘 다?


응. 여자친구가 우리 부모님을 최근에 만나기도 했거든. 근데 걔는 언어가 되니까 자유롭게 소통을 하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되게 고마운데 내가 만약 일본에 갔을 때 그 친구의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말을 할 수가 없잖아. 그게 되게 미안한 거야. 저번에도 걔 친구가 한국에 한 번 왔는데 내가 스스로 얘기를 할 수가 없으니까... 공부를 좀 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지.


실천은 아직 안 하는구나.


실천은 이제... 일드 보고 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제연애가 힘든 것보다 즐거운 게 많다고 했는데 거기서 힘든 게 언어가 아니었구나.


힘든 건 문화 차이가 아닐까. 학교 다니면서 여자친구 한 명을 꽤 오래 만났어. 5~6년 정도. 그 친구랑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하게 되더라고. 처음에는 일본 여자라고 하면 갖고 있던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 그런 부분에서 편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좋은 느낌은 있는데 어떻게 보면 문화적인 특성이랄까. 자기 몫은 자기가 해야 해. 내 빨래는 내가 해야 돼. 결혼을 해도 아내가 너 빨래는 너가 해. 라고 하는 거야. 그런 거라든지. 집안 청소를 하면 한가한 사람이 할 수 있잖아. 근데 걔는 자기가 어지른 것만 딱 청소를 하는 거야. 그리고 왜 청소를 안 했냐 이런 스타일이야. 되게 신기했어.


가족 내에서도 개인주의적인 건가.


이치닌마에라고 자기 몫은 자기가 하는 대신 타인에게 피해는 끼치지 말자. 이런 게 공유 되는 생각이래. 그런 게 사귀면서도 나타나더라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남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무조건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 걔 말은 그거야. 내가 청소하는 걸 보면 너도 청소를 해서 치워놔야 나한테 피해를 안 끼치는 건데 너는 왜 청소를 안 해서 나에게 피해를 끼치느냐 이런 거지.


맞네. 같이 있는 시간에 청소기를 들면 같이 하면 되는 거잖아.


나는 뭐... 딴 거 했겠지ㅋㅋㅋㅋㅋㅋ 되게 재밌는 거 같아. 문화 차이 이런 것도 하나씩 보면 되게 신기하고. 솔직히 시야가 넓어지는 듯한 느낌은 들어. 외국 사람하고 연애를 한다고 하면 외국인의 특성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 자체를 내가 배우는 거니까. 사실 최근에 힘든 게 많았긴한데 여자친구 얘기를 내가 거기다 많이 적었다는 건 그만큼 그 친구한테 내가 위로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같이 산 지는 얼마나?


동거한 지는 이제 3개월? 그전에는 따로 살고 있었는데 여기 집 구하면서 합쳤어. 그 당시에 생각했던 게 내가 한창... 여자친구랑 같이 살려고 집을 알아보고 있었던 때 같아. 그래서 함께 요리하고 싶다고 썼나봐.


아 동거를 시작해보니 어떤 게 다르고 어떤 건 예상대로인지.


뭐 부부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준 부부처럼 살고 있는데 밖에서 먹는 게 의외로 많아. 둘 다 어디 갔다 오면 피곤하고 하니까. 요리는 뭐 주말에나 하고 평소에는 밖에서 사먹지.


주말에도 매끼를 해먹진 않을 거 같은데.


한 두 끼 정도 하지. 같이 요리하는 게 재밌긴 하더라고. 파스타는 뭐 평소에도 했으니까. 특이한 요리라고 하면 내가 일본 요리를 좀 배웠어. 명란 스파게티나 니꾸자가라고 일본식 감자조림 같은 것도 배우고. 샤브샤브 같은 스키야끼 이런것도 해 먹고.


너님도 한식을 알려주기도 하는 거야?


걔가 된장찌개를 되게 좋아해. 뭐 알려줄 수 있는 건 알려주고. 나는 양식 요리 하는 걸 좋아해서 뭐 또띠아 같은 걸로 피자 만들어 먹고 재밌게 살고 있어ㅋㅋㅋ 근데 너는 여자친구 있어?


입 조심해. 여튼 지금은 아닐 수 있지만 신청서 작성 당시에는 여유로운 삶을 즐기면 취업 정보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는데. 오늘도 면접 갔다 왔다니까 느낀 것도 있겠고 그 사이에 여러 일이 있었을 텐데. 업데이트된 근황은?


이제 막바지인 것 같아. 취업 준비를 오래한 건 아니지만 이제 6개월 됐나. 그 전까지는 취업에 대해 생각을 사실 덜 했었고 미뤄놨거든. 그냥 졸업할 때 되면 어지간히 되겠지 싶어서. 1, 2월부터 지원서를 내는데 서류가 다 붙는 길래 자신감이 막 왔지. 근데 막상 서류를 붙고 나서 면접장에 가서 보면 내가 생각하던 거랑 다르더라. 예를 들어, 면접 질문 같은 것도 정말로 쓸데없는 질문들이 많던데. 내가 생각하는 업무에 필요한 질문을 하는 회사보다 정말 그냥 쉽게 말하면 꼰대 같은 회사들이 있더라. 아니 아버지 직업을 왜 물어봐.


에 실제로 물어봐?


어 물어보더라고.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 집은 몇 평사느냐 이딴 질문을 하는 거야. 소위 대기업이라고 하는 면접장에서. 처음에는 뭐 대기업 돈만 잘 주니까 어찌저찌 들어가서 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더라고.


그런 질문 자체에서 느껴지는 회사의 이미지가 있을 거 같은데.


그렇지. 하다가 내가 그냥 가기 싫어서 그만 둔 기업도 있고 떨어진 데도 있고. 붙은 곳 중에는 되게 갈등이 많이 됐던 게 지방 근무를 하래. 지방 어디 가서 4~5년 있다가 서울로 올라와라. 이런 식으로 조건을 거는 기업들이 되게 많아서. 막상 안 가게 되더라고. 그런 걸 내가 자르고 자르고 떨어지고 하다 보니까 이미 시간이 3~4월까지 온 거야. 인터뷰 신청했던. 그때 신청할 때도 되게 할 게 없으니까. 그냥 내가 갖고있는 생각들도 말할 데가 없고. 주변에 친구들은 다 공부하고 있고. 만날 사람도 없고. 얘기할 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


약간 텀이 있었나보네.


보통 원서 쓰면 자기소개서 100장은 쓴다고 하잖아. 나는 지금까지 썼던 게 열 몇 군데. 상대적으로 시간이 널널했어. 쓴 다음에는 기다리는 것밖에 할 게 없으니까 중간중간 오토바이타고 여행 다니고...


(녹취록 파일 오류)

아 망할 잃어버린 20분은... 아 눈물 나네 이런 상황 처음이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만나서 얘기하면서 “내가 살아온 길을 정리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정리하고자 표현을 했던 건.. 생각을 해보면 작년 한 해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해인 것 같아. 일단 아버지와의 마찰이 가장 컸고. 두 번째는 큰 사고도 한 번 났었어. 오토바이 타다가 교통사고.


아이고 수리했다는 게 사고나서 그랬구나. 오토바이 때문에 아버지랑 마찰이 생겼던 거야?


아니야. 아버지도 오토바이 타셔ㅋㅋㅋ 아버지의 주사가 있는데 폭력적이 되는 거..? 그 동안은 나한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어. 술을 마시고 들어오시면 방안에서 핸드폰으로 동영상 보고 있는 나를 때리는 거야. 괜히 그냥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던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푸는 거야. 그걸 또 어머니가 말리고, 동생이 말리고 하는데도. 그냥 무작정. 근데 뭐 어떡해 아빤데. 내가 대들 순 있어도 거기서 맞상대를 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이십 몇 년을 살아왔는데.


오래됐구나...


처음에는 그 폭력의 대상이 엄마였는데 그것 때문에 엄마가 집을 한 번 나갔었어.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집을 나간 그 밤에 나도 사실 깨어 있어서 울면서 잤거든. 그 다음 날 학교에 와서 점심시간에 도시락 가방을 열었는데 어제 먹은 도시락통이 그대로 있는 거야. ‘아 맞다. 엄마가 나갔지.’ 이게 되게 나한테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그때가 계기였던 거 같아. 아빠가 그때 대상을 바꾼 거지. 내가 좀 더 만만하니까.


술 드실때마다 아주 전쟁이겠네.


그 다음 날이 되어서 술이 깨면 항상 사과를 해. ‘내가 왜 그랬지’ 하시면서 사과를 하는데 이걸 또 어떻게 안 받아줘. 받아줬지 항상. 이런 식으로 계속 지내오다가. 작년 내 생일 전날에 갑자기 시비를 거는 거야. 왜 화장실 앞에 서 있냐고. 동생 나오면 화장실 들어가려고 서 있다고 하니까. 막 욕을 하면서 시비를 거는 거야. 그날 내가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그 상황을 도저히 못 참겠는 거야.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으면 잘못했습니다 하겠는데. 평소엔 때려도 그냥 묵묵히 있었는데 그날은 나도 유난히 조절이 안 되어서 맞상대를 했어 진짜. 몸 싸움을 하다가 아예 서로 주먹질을 했어.


아이고


그 일 이후로 짐 챙겨서 집을 나와버렸지. 근데 막상 나오니까 갈 데가 없잖아. 친구 집에 갔어.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걔도 나랑 비슷한 가정사를 겪고 있어서 상황을 이해해주니까 거기서 지내게 됐지. 그렇게 같이 사는데... 되게 불편하지 아무래도 친구 어머니도 계시니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우리집으로 오라고 하는 거야. 같이 살자고. 그렇게 여자친구 집에 들어가 살면서 학교를 다니게 됐어. 근데 내 생활이 아무리 괴로워도 이 생활을 계속 하기엔 민폐잖아. 지금까지 모아둔 돈은 오토바이에 다 투자를 한 상황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토바이를 팔기에는 너무 아까운 거야. 인턴이다 뭐다 해서 직접 번 돈으로 산 건데. 되게 아까운 거야. (판다고 제값 받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여자친구네 집주인한테 걸렸어. 그때부터 터치를 졸라 하는 거야. 빨리 나가라 아니면 여자친구도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그래서 다시 갈 데를 찾는데 그 친구한테 다시 가기엔 너무 미안해서 자취하는 후배한테 가게 됐어. 가서 한 달 정도 같이 지냈는데 되게 불편해하는 게 느껴지더라. 아무리 친하다곤 하지만 형이니까 싫은 소리 못할 거 아니야. 그런 게 느껴질수록 나는 걔한테 아무 말을 못 하겠는 거야. 미안하니까


미안하다는 말하는 것도 미안하잖아.


맞아. 미안하다는 말 자체도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게 서럽고. 얘한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우리 엄마 도시락집을 하시거든. 맨날 거기 있는 반찬 가져다 같이 먹고 했는데. 그래도 불편해하는 건 계속 느껴지고 대화도 점점 없어지고. 그런 과정에서 내가 얘한테 그러면 안 됐는데, 그래도 진짜 고마워 해야 하는데, 솔직히 좀 실망을 한 거야. 알고 지낸 지 6~7년이나 됐고 엄청 친했거든. 나 군대 간다고 콧물 질질 짜면서 울던 놈이, 학교다니면서 계속 연락하고 술 먹고 같이 놀고 이랬던 놈이 내가 이런 힘든 상황에 처했는데 이렇게 반응할 수가 있나 좀 섭섭한 마음이 들더라고. 나도 인간인지라.


가까우면 기대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결국 오토바이를 팔고 자취를 시작했어. (서러웠구나) 서러웠지. 나오기 전에 그 후배가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최대한 빨리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너한테 되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 고맙다고 했었어. 그렇게 나가는 날이 되어서 오늘 나간다 그동안 고마웠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나왔는데 내가 그 이후에 따로 연락하는 걸 까먹은 거야. 그 당시에 나도 섭섭한 마음도 있었고, 급하게 돈 마련해서 자취 시작하느라 정신도 없었고. 한동안 연락하는 걸 잊고 있다가 한두 달 지나서 연락하기 뭐하잖아. 그냥 때 되면 보겠지 하고 있다가 걔가 해외로 인턴을 간다는 소식을 건너서 전해 듣고 연락을 했는데 차단됐더라고.


어떻게 알아?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걸어도 차단이고. 카톡을 보내고 해도 1이 안 없어져. 페북 메시지를 보내려 들어갔더니 친구가 끊겨있더라고.


그 친구 굉장히 실망했나보다.


그런가봐. 지금은... 좀 있으면 돌아오는데 내가 직접적으로는 메시지를 못 보내니까 건너서 장문의 메시지를 몇 번 보냈어. 신세 많이 졌는데 내가 너무 좀 소홀했던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보냈는데 아직 답은 없네.


그래도 어떻게 지금은 정리가 잘 되었나보네.


이사 한 번 하려면 졸라 힘들어. 같은 동네라고 하더라도 차를 빌려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짐을 가방에 싸서 옮기고 옮기고 이런 식으로 하는 거니까. 그렇게 학교 근처에 싼 집을 구해서 살다가 여자친구가 그냥 좋은 집 하나 구해서 같이 살자고 해서 여기 들어왔어. 걔도 나도 자취를 하는 입장이고 어차피 우리 맨날 둘이 붙어있는데 같이 살자고 먼저 고맙게 얘기를 해줘서.


다이나믹하네.


작년이 진짜 그랬어. 앞으로도 그냥 계속 생각이 날 것 같아. 지금이야 멘탈이 괜찮아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하는데 당시 그 후배네 집에 들어갈 때 이런 얘기를 꺼내는데 막 눈물이 나는 거야. 서러워서. 그 이후론 여자친구한테 많이 위안을 얻은 것 같아.


그럼 조심스럽지만... 지금 가족들하고는 어떻게 지내?


어머니랑은 계속 연락을 했어. 내가 벌어놓은 돈이 조금 있었다고 하지만 생활비를 혼자 감당할 수가 없잖아. 처음에 알바를 하려다 시작하면 3~6개월 길게 해야할 거고, 막상 이제 취업시즌 되고 하면 내가 여유가 없을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엄마한테 양해를 구하고 생활비를 조금씩 받았지.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딱 지난 달쯤에 집에서 연락이 급하게 왔어. 아빠가 쓰러졌다고. 병원에 갔더니 심장질환 때문에 쇼크가 왔대. 수술은 잘 됐는데 간병할 사람이 없는 거야.


아 어머니 일하시고 동생은 학교 다니니까...


그나마 내가 지금 상황에서는 취업 준비라는 명목 하에 아무것도 안 하잖아. 엄마가 되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더라고 괜찮겠냐고. 근데 또 어떡해 간병인이 무조건 한 명은 있어야 하니까. 처음에는 진짜 내키지 않았는데 결국 갔지. 아빠는 계속 미안하다고 하고, 나는 알았어요. 이러면서 상황을 넘기고 말았는데. 지금은 가끔씩 가족끼리 식사하는 정도가 되긴 했어. 근데 다시 집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 같아. 엄마나 아빠도 아마 그렇게 알고 있을 거야. 엄마도 그냥 내가 그런 꼴 당하면서 사는 거 못 보겠다고 아예 이번 기회에 독립한 걸 잘했다고 생각하시더라고. 그런 거 있잖아. 아홉수? 그런 게 좀 빨리 왔다고 생각해야지. 좋게 생각해야지.


하아 인생 빡세다.


이번에 취업 면접을 보면서 면접관들이 이런 걸 물어봤었어. 가장 힘들었던 순간? 다른 애들이 군대에서 뭐 했다 이런 얘기를 졸라 하는데 솔직히 좀 우스운 거야. 나는 이런 얘기를 하면 끝도 한도 없지만 아버지랑 마찰이 있었고 폭력을 견뎌오는 상황에서 참다 참다 안되어서 크게 싸운 적이 있다. 그게 바로 작년이고 그때가 내 인생에서는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부모님보다는 할머니 손에 커왔는데 키워주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힘들었다. 이런 식으로 얘길 했거든..


다들 보통 군대 얘기를 하거나, 자기가 하려던 일이 잘 안되어서 힘들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아 물론 힘든 거야 상대적인 거지만. 참 그냥... 내가 큰 일 겪었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더라고. 그냥 단순히 아버지랑 싸우고 독립을 했다 정도만 되었어도 좋았겠지만, 내가 심적으로 겪은 건 그 이상인 것 같아서. 근 6개월 동안 어디 있을 데 없이 눈치보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 자체가 좀...


쫌... 서러울 것 같은데.


살면서 더 큰 슬픔이나 어려움을 만나겠지만, 그래도 20대를 돌아봤을 때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어. 지금은 많이 극복을 해서 그런지 도움 줬던 사람들한테 더 고마운 마음도 들고, 이렇게 편하게 얘기도 할 수 있는 것 같아. 이런 걸 어디 가서 얘기해.


쉽지 않지. 굳이 비교하자면 난 되게 평탄한 인생이거든.


너도 굴곡 많은 거 같아. 아니 굴곡을 니가 만드는 거 같아.


ㅋㅋㅋㅋㅋㅋ 내가 힘든 게 그렇게 많지 않아서 들을 수 있는 거 같아. 지금 우리가 반대로 앉아있다면. 솔직히 내가 힘든 게 많으면 남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잘 안 들어올 것 같거든.


뭐 다들 이렇게 얘기를 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되게 큰 힘이 돼


그렇담 다행이고. 말하기 힘들 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끄집어 내서 들을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정리되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마음 속에서 개워낼 수 있는 거 같아. 그거 자체로도 되게 좋은 거 같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내가 잘한 일은 아니지만 결국 맞서 싸워가지고 트라우마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어. 죄책감도 드는 동시에 후련하니까 아 내가 미친놈인가 생각도 드는 거야.


약간 끝났다 이런 느낌 아닐까. 진짜 극단까지 간 거잖아. 사실 너도 놀랐을 거고. 결국엔 아버지의 주사가 다른 가족한테도 이어지지 않는다면 끝이 난 거니까.


잘했다고 생각해. 후회는 안 해. 다만, 좀 더 일이 잘 풀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이지.


작년이 임팩트가 크긴 하지만 그 이전에는 학교 생활은 어땠던 것 같아?


재밌었어. 이것저것 해보고. 대학 와서 해보고 싶었던 건 다 해본 거 같아. 한 가지 못 한 게 있는데 그건 비밀로.


아 그럼 말을 하지 말지... 자소서 열 개 정도 썼다고 했는데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자신을 쪼았던 것 같진 않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여행하면서 그런 시간도 많이 가졌던 것 같은데. 지금도 여전히 그런 거야?


지금 내가 김칫국을 마시는 걸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내가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되게 웃길 수도 있겠지만 붙을 거 같아. 처음에 인정성을 보러 온 사람이 250명이었는데 1차 면접에 30명이 왔거든. 인정성에서 200명 넘게 끊은 거야. 2차 면접 때는 10명이었고.


2차가 최종이야?


4차. 3차가 3명 4차가 나 혼자 들어갔거든. 회장 면접.


만약에 널 안 뽑으면 아무도 안 뽑는 거야?


응. 그래서 될 거 같아.


(*근데 안 됐음)


회장면접에선 뭔 얘기했어?


하필이면 왜 이 회사냐길래 콘텐츠 유통 기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지. 경영대였지만 학교에서 호관대 수업을 몇 개 들어봤는데, 그 중에서도 콘텐츠 수업이 너무 재밌어서 콘텐츠 유통에 관한 수업은 4개를 들었었거든. 그런 부분에서 어필을 했고 이 회사가 사업 분야를 확장하는 시기라서 앞으로 기여를 하고 싶다고 했어.


오올~ 면접도 척척붙었네.


나도 되게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처럼 1~2년 동안 스펙 만들고 뭐하고. 자소서 첨삭받고, 면접 스터디하고 이런 것 보다는 사실 한 게 없거든. 스펙 만들자고 노력한 것도 없고 그냥 했던 거라고는 어학성적 만든 거? 이런 거 말고는 없으니까.


그 회사든 다른 회사든 빠른 시일 내 일을 하고 싶어하는 거네. 결혼도 생각한다고 했고. 올해 안에 직장을 잡았다고 하면 뭐하고 싶어?


첫 번째 목표는 오토바이를 좀 더 큰 걸 사는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ㅁㅊ


지금은 벤리라고 조그만 스쿠터 타고 있는데 그걸 팔고 더 큰 걸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


CC를 늘리는 거야?


CC도 늘리고 지금 마음에 둔 게 800만 원 정도 하는데. (창밖을 가리키며) 저거랑 비슷하게 생겼어 PCX. 저거 일단 카드로 할부로 질러야지. 두 번째는 큰 집으로 가는 거. 지금 이 집도 좋지만 둘이 살기엔 그리 넓은 편도 아니고 고양이도 있으니깐.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해야할까. 내가 그리는 미래에는 여자친구가 있거든. 그 미래를 위해서 큰 집으로 이사가는 것도 목표 중 하나야. 근데 아마 돈을 그렇게 많이 모으지 못 할테니까 대출을 끼고 경기권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 대출 끼면 갈 순 있지 않을까 그러고 있어.


결국 돈 생겨야 이룰 수 있는 목표네ㅠ 결혼은? 다른 계획도 있어?


그 다음이 결혼인데. 늦어도 3년 안에? 서른 가기 전에.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원래 결혼하고 싶었어?


아니 원래 결혼 안 하고 싶었지.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한테도 맨날 얘기했던 게 결혼은 안 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살자고 그랬었거든. 애도 별로 낳고 싶지 않고 만나다가 안 맞으면 쫑날 수도 있는 거고... 뭐 이런 식으로 얘길 했어. 근데 그 친구도 되게 서운할 수 있는데 고맙게 이해해줘서 오랫동안 만났는데.


아무튼 나이가 드니까 생각이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여자친구를 만나서 되게 스스로 세뇌를 시키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얘가 좋은 사람이라서 오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요즘엔. 결혼 같은 걸 해서 제도하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도 하고. 그리고 취미가 맞으니까 여자친구도 오토바이 뒤에 타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 늙으면 그냥 오토바이 존나 큰 거 있잖아. 할배들이 타는 거. 그런 거 타고 전국 일주나 하고 싶고. 최종 꿈이 그거야.


ㅋㅋㅋㅋㅋㅋ 근데 경영학도에 비전에 대해 생각했다는 얘기는 뭐야?


너도 많이 보겠지만. 진짜 한 시즌 유행하는 아이템들이 뜨고 지고 뜨고 지고 하잖아. 한창 여기저기 얹혀살 때 친구랑 했던 얘기가 우리는 취업하지 말고 사업이나 할까 이런 얘기 많이 했거든. 그러면서 생각했던 게 회기에 김치볶음밥 제대로 하는 데가 없거든. 세종대 쪽에 또래끼리라고 진짜 맛있는 집이 있어. 아가리가 녹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이 말밖에 없어. 나중에 녹취 들으면서 너도 가봐. 기술 전수를 받아서 회기에 내면 대박 날 거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


진짜 무난한 메뉴잖아.


그 집이 김치볶음밥, 계란찜 2개로 2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데 진짜 맛있어. 졸업생들도 많이 오더라고 그 맛을 못 잊어서.


일 벌이는 것 좋아하는 거 같네


뭐 해야겠다 싶으면 일단 하긴 하지. 포기를 일찍할 뿐이지ㅋㅋㅋㅋ 단순하게 취업이 아니면 봤을 때 성공하겠다 싶은 아이템이 몇 개 보이긴 해. 처음에 쥬씨 같은 것도 지금 들어가기엔 미친 짓이지만 학교 앞에 생겨서 한창 애들 몰릴 때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거든. 이거 무조건 어떻게든 된다고. 프랜차이즈 해가지고 돈 많이 벌거라고 얘기했는데 대박났잖아. 그런 게 몇 개 보였거든. 최근에는 핫도그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보이긴하더라.


관심이 있으니까 그런가보다. 너님도 혹시 뭐 하고 싶은 게..?


욕심이야 있지. 제일 먼저 생각하는 건 김치볶음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너도 가봐야 돼. 가보면 그 생각 할 수도 있어. 처음 먹으면 되게 신기해. 김치볶음밥이 이런 맛이구나. 근데 이제 딱 다 먹고 나서 집 가면 나중에 또 생각나. 아 또 먹고 싶다. 진짜 가봐.


근데 오토바이는 언제부터 탔어.


고등학교 때 처음 타봤는데. 그때는 등록하고 타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어디서 끌고 온 거 타고 그랬는데 그때야 빨리 달리는 거에나 재미를 느꼈지.


지금은 말 그대로 계속 함께하고 싶은...


너도 타봐 재밌어.


난 겁이 많아서


나도 겁 많아. 이렇게 됐는데 탔잖아(다친 데 보여주며)


으 그러면 더 못 탈 거 같아.


또 안 그렇더라고. 고등학생 때처럼 스피드 이지랄 하는 게 아니라 오토바이 동호회가 잘 되어있다보니까 동호회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같이 양평이나 이런 데 나가는 게 재밌더라고.


직장 잡으면 더 투자해서 나가겠네.


그나마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수단이 이거라서. 2014년에 처음 내 오토바이를 샀는데 친구가가 추천을 해주더라고. 지하철로 환승할 거리 오토바이로 직선거리로 가면 십몇 분이면 간다. 더 이상 동묘앞, 청량리행에 목맬 필요 없다 이런 식으로ㅋㅋㅋㅋㅋㅋ 그 당시에 인턴을 할 때인데 야근을 시켜가지고 돈을 좀 많이 줬어. 한 250만 원 줬나. 그 돈 모아 가지고 샀지. 혼자 타면 재미없고 동호회에서 아저씨들이랑 만나고 그러니까 재밌더라고. 직장인 형들도 있지만 자영업하는 형들도 많아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고.


원래 좋아하지?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지. 하여튼 그런 게 스트레스 푸는데 도움이 많이 돼. 스피드는 나지도 않아. 댕겨봤자 100~120이지.


말이 100이지 자동차랑 다르잖아. 체감이.


헬멧쓰면 안 무서워.


근데 인터뷰 읽어보고 신청했어?


응. 안 읽고 신청했겠어? 아 근데 너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게 너가 생각하는 너의 미래는 어떤 거야?


그건 끄고 얘기해줄게.


왜 여긴엔 담을 수 없어?


아니 사실 정해진 게 없어서.


응 직업을 뭘 하겠느냐는 게 아니라 이루고 싶은 게 뭔지 궁금해서. 인터뷰 후기라고 한다면... 이런 게 서로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고 생각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시간을 내서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맙지.


근데 어떤 방향으로 가야 이 짓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자극적인 소재가 좀 필요하지.


이래서 경영학도 싫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IMG_3186.JPG 인터뷰 당시 IQOS가 무려 신상품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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