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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유배의 시작

1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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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1.


버스터미널 같은 분위기의 김포공항을 거쳐 유배길에 올랐다. 먼저 탄다고 이득이 아닌데 탑승구가 열리자마자 줄은 길게 늘어졌고 줄 설 사람은 다 선 것 같을 때쯤 기차놀이에 합류했다. 그 와중에 앞에 서있는 사람 티켓에 써있는 구매금액을 슬쩍 훔쳐보고선 가볍게 주먹을 쥐는 것으로 세레모니를 대신했다. 내가 더 싸게 샀다.


티웨이랑 이스타에선 일본을 가도 맹물을 한 잔 주던데 진에어는 무려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감귤쥬스와 옥수수수염차 그리고 맹물. '역시 진에어가 훌륭하구만' 이라는 생각을 하며 맹물을 마셨다. 왜 그랬지.


집에서 쓰던 화장품이 바닥이 보이길래 제주가서 하나 사자는 마음으로 도착하자마자 이니스프리에 갔다. 직원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아 물론 중국어로. "쒸야오 빵망 마" 중국어는 모르지만 이런 뜻이었을 게 분명하다. 오사카 신발가게 앞에서도 중국어로 신발 구경하고 가라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이제 중국에서만 현지인 취급을 당하면 한.중.일 삼국 제패다. 나는 어디서든 중국인인 것이다. 학교에서 나한테 중국어로 선교하던 아줌마도 생각난다. 나는 끝까지 다 들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중국어를 사용해 대답했다. 뚜이부치 워씨한궈런 짜이찌엔!


버스정류장에 와서 털썩 앉았다. 바람은 불지만 넘나 더워서 노트북이랑 사진기가 담긴 백팩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버스가 오자 난 캐리어를 힘껏 들어올리고 버스에 올랐다. 네 정거장인가 갔는데 등뒤가 서늘하다. 버스정류장에 남겨진 백팩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하며 급하게 버스를 내렸다. X 됐는데 자꾸 웃음이 나온다. 캐리어랑 신나게 달리다가 내 몸뚱이는 그리 빠르지 않다는 생각에 경찰서에 분실물 신고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달렸는데 나중에 보니 뒤만보고 달리는 바람에 멍청이처럼 3킬로는 뛴 것 같다. 백팩과 다시 만났다. 백팩은 자신 앞에서 온몸으로 눈물을 뿜어대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기만했다.


다시 탄 버스는 다행히 환승이 됐지만 안다행히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려줬다. 그래서 다시 1km를 더 걸었다. 두 차례 승차거부를 당하고 버스에 탔다. 환승은 되지 않았다.


유배생활은 역시 첫 날부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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