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2016. 9. 22.
집이 아니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눈이 떠진다. 멍하니 앉아있다 아침을 먹으러 왔다. 인스타스러운 조식을 뜨뜻한 커피와 함께 괜한 여유를 부리며 입에 집어넣고 있다. 있는 힘껏 여유를 안 부리면 이 식탁에서 나만 유난히 빨리 먹을 것 같다. 30분 정도 다시 뒹굴다가 청소를 배웠다. 근데 전부 눈으로만 배워서 그다지 생생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이리저리 휙휙 돌리는 청소기를 따라서 오전이 후다닥 지났다.
지내기로 했던 게스트하우스에선 2박 3일의 유예기간이 있다. 지내보고 서로 판단해서 스탭으로 일을 시작 할지 아닐지 결정하라고 하시는데 큰 그림(생각) 없이 그냥 온 나 같은 사람한테는 감사한 상황이다. 브런치에 새로 올라온 글을 슥슥 대충 읽으면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 먹고 들었던 얘기가 맘에 걸려서 눈에 활자가 그리 잘 들어오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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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원래 일하시던 스탭이 외출하시기 전에 슬쩍 묻는다. "진짜 여기서 지내실 거예요?"
"네. 왜여?"
"아니 무급인데 주5일이면 좀 그렇죠.
사실 가을 시즌엔 스탭 구하는데가 얼마나 많은데.
다른 곳이면 더 좋은 조건에서 지낼 수 있을텐데..."
"대신 매일 3시간씩만 한대요."
"일하다보면 매 번 그렇게 되진 않을 거예요.
전에 있던 남자스탭은 진짜 고생 많이 하다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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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자의 의견을 소중히 반영해 스리슬쩍 다른 게하 공고를 알아보다가 일기를 썼다. 컴퓨터만 있으면 그렇게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았는데 30분만에 심심해졌다. 밖에 나가볼까 해서 얼굴만 내밀어봤는데 문은 다 잠기고 이곳에 나만 남았다. 멍멍이는 있으니까 얘들을 믿고 잠깐 밖으로 나갔다. 날은 쨍쨍하고 이 동네는 넘나 (뭐가 없고) 조용하기만해서 잔디깔린 근처 초등학교 클라스에 혼자 감탄하고 돌아왔다.
돌아온 게스트하우스는 여전히 조용하다 못해 으으... 적막하다. 소등시간에 임박해 느즈막히 도착한 남자 게스트를 따라 도미토리에서 들어간다. 스쿠터를 타고 오셨는데 오다가 미끄러지셔서 몸에도 마음에도 그리고 스쿠터에도 스크래치가 나셨단다ㅠ (마지막 게 제일 아프다고 하셨다. 보험을 안들었기 때문에...) 넘나 속상한 맘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사람들이랑 맥주 한 잔 하려고 맥주를 사오셨지만 다들 책 보고 컴퓨터하는 분위기에 눌려... 게다가 소등시간은 다가오고 헛헛한 맘에 혼자 길쭉한 칭따오를 3분 만에 들이키셨단다. 이렇게 얘기나 좀 해서 맘이 더 낫다고 하신다. 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착한 일을 한 것 같아 기뻤다.
아 내일 또 짐을 끌고 남쪽으로 갈 생각을 하니 다시 유배생활을 시작하는 기분이라 설렌다.